보라카이 여행기 DAY 5-2
놀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포트로 갈 시간이었다. 우리는 저녁 6시까지 탈 수 있는 샹그릴라 보트를 타기로 했다. 보라카이 섬에 들어올 때는 언제 뒤집혀도 이상할 거 없는, 파란 페인트가 칠해진 그런 배를 타서 그런지 샹그릴라 보트는 세련 그 자체였다. 흰색의 매끄럽고 우아한 모양의 보트였는데, 속도도 매우 빨랐다. 보라카이 섬의 끝에서 끝까지, 그리고 포트까지 20분 정도에 주파했다. 우리는 이때 한번 또 샹그릴라를 선택한 것에 감사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안 그래도 피곤한 여행 마지막 날 긴 시간 이동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혼란의 카티클란 포트지만 우리는 샹그릴라 직원들에게 세심한 케어를 받으며, 카티클란의 라운지에서 쉴 수 있었다. 샹그릴라 라운지 안은 고급 리조트의 분위기 그 자체였지만, 유리문 하나만 열면 호객꾼과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횡행하는 혼란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샹그릴라의 픽업 서비스를 요청하지 않아, 카티클란 포트에서 칼리보 공항까지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샹그릴라 직원이 택시도 대신 잡아주겠다고 하여 아주 편하게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여행 막바지까지 호객과 흥정에 시달리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돌아가는 길은 어두운 밤이어서 더욱 위험하게 느껴졌다. 가로등이나 조명이 거의 없어 앞차의 경광등에만 의지해야 했다. 저녁 6-7시경인데도 매우 깊은 밤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주로 오랜 시간을 가야 하는 택시 안에서 그 나라에 대해 받은 인상이나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점들을 이야기한다. 필리핀 그리고 보라카이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보니 칼리보에 도착했다.
우리는 칼리보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라운지를 예약했다. 공항에 쉴 곳이 없어 많은 한국인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시설은 그저 그랬다. 식사를 하려면 현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현금을 많이 남겨오지 않아 이용하지 못하고, 근처에 편의점에서 한국 라면을 사 먹었다.(편의점도 중국인들과 자리 전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영화 감상실처럼 마련해 놓은 곳에서 쥐라기 공원과 어벤저스를 보면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이곳의 서비스 중 하나는 캐리어를 모아 공항까지 옮겨주고, 공항세를 대신 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자 우레와 같은 스콜이 쏟아졌고, 이 얼기설기 지어진 건물들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공포에 시달리며 우리의 캐리어가 비 맞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워터파크가 개장한 칼리보 공항 근처에서 겨우 공항 내부로 진입했다. 그런데 더 황당스러운 일이 펼쳐졌다. 수하물 검색 기기가 정전으로 인해 고장 났으니 사람이 하나하나 검사하겠다는 것. 직원이 내 캐리어를 열고 짐을 하나하나 들춰보는데 이게 참 무슨 일인지 싶었다. 속옷을 들추는 순간엔 그도 민망하고 나도 민망하고... 공항 안에는 어떠한 안내 모니터도 없고 직원들의 육성에 의존해야 한다. 공항 화장실도 시원치 않았다. 정말 이 순간만큼은 내가 보라카이에 온 것을 후회했다. 그 많은 후기에 칼리보 공항을 욕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계속 보라카이에 온다니. 이건 무슨 심리일까.
밤 비행기라 걱정했지만, 아주 적절한 실신 상태가 되어 수면을 취하고 인천에 도착했다. 사실 좀 그리웠다 한국의 차갑고 건조한 이 공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