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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Feb 01. 2020

이십 대 후반에 새로운 세상에 눈 뜨는 법

나의 운전면허 취득기

요즘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생 노잼 시기"라는 말. 나도 체감하던 바였다. '네 나이에 벌써 노잼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 믿는다. (아직 물론 모르는 게 많지만) 직장에서 내가 맡은 현재 직무는 익숙해서 다소 매너리즘에 빠졌다. 주변 인간 관계도 안정적이고, 큰 고민은 없다. 서두가 길었다. 그래서 내가 도전한 것이 운전면허다.


사실 운전면허 학원 등록비가 꽤나 나가는 편이라, 항상 생각은 해왔어도 손쉽게 결단을 내리진 못했다. 그렇게 미뤄오던 차에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모두 생겨 이제는 그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학원으로 향했다. 내 남동생 손도 함께 붙들고.


전반적인 절차는 이랬다. 학과 강의를 3시간 이수 후 필기시험, 장내기능 수업 4시간 후 기능 시험, 도로주행 수업 6시간 후 도로 주행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 이게 간단해 보이면서도, 수업 스케줄도 잡아야 하고, 시험을 미끄러지면 시간과 돈을 더 써서 다시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에 은근 스트레스다.


우선 필기시험은 종이 책을 구입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요즘은 앱으로 공부하면 된다. 아 나는 참고로 2종 보통으로 쳤는데, 처음에는 1종 보통으로 하려다 바꾼 건데 바꾸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2종 따는 것도 힘들었단 말이다. 아무튼 필기시험은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다만 필기 시험장이 집에서 30-40분 거리에 있어서 그 점이 번거로웠다.


드디어 두근두근 차를 몰아보는 순간이 다가왔다. 장내 기능 수업을 할 때는 도로 주행 때보다 더 단순화된 차를 몬다고 해야 하나? 차를 타는 순간 이 차는 굉장히 정교하지 않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사실 장내 기능은 아주 쉽다. 오르막, 우회전, 좌회전, 신호, 돌발 상황, 주차 등의 코스를 거치는데 사실 상 주차 빼곤 그렇게 까다로운 게 없다. 주차도 어떤 공식대로만 하라고 알려주는데 그대로 하면 어렵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거의 10년 전에 면허를 땄는데, 그때는 거의 직선 주행만 있었다고 한다. 대체 왜..? 난 이 정도도 부족하고 너무 쉽다고 생각했는데. 장내 기능도 높은 점수로 한 번에 합격했다. 내가 시험칠 때 떨어진 사람이 50%는 넘었던 것 같다. 내 동생은 1종 보통이었는데 장내 기능을 한 번 떨어졌다.


진짜 본 게임은 도로 주행이다. 나는 교관님이 한번 시범이라도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그냥 타자 마자 도로로 내던져진다. 학원 쪽 골목에서 드디어 큰 도로로 빠져나가는데 패닉 상태에 빠질 뻔했다.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요!!!'


하루에 2시간씩 교육을 받았는데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첫째 날에는 온몸에 긴장이 들어가 피로감이 상당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로 가면서 운전을 즐기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수강생 관리 차원인지는 몰라도 이만하면 운전 잘하는 편이라는 칭찬도 듣는다.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조금 붙기 시작한다.


결과부터 말하면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에 붙었다. 이 운전면허 취득 시스템은 대체 누굴 위한 것이란 말인가. 이건 학원가의 작당모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으나 세 번째 쯤되니 시험 감독이 조금 너그러워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돈 쓸 만큼 썼다는 건가?! 정말 6시간이라는 교육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고, 추가 수업을 받는 사람도 꽤 됐다. 내 동생도 10만 원가량을 내고 추가 수업을 들은 후 시험을 쳤다. 나도 사실상 두 번을 떨어졌으니 추가 수업받은 것과 비슷한 꼴이 됐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도로주행 떨어진 스토리들이 아주 수두룩하다. 심지어 더 쉬운 코스를 찾아서 학원을 옮긴 사례도 많다.


또 하나의 신분증을 취득했다는 뿌듯함이 몰려온다. 고3 때 찍은 내 주민등록증 사진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는데. 운전면허증 사진을 위해 사람다운 모습을 하고 새 증명사진도 찍었단 말이다. 사실 자격증 취득에 대한 성취감도 있지만, 이번 도전을 통해 얻은 큰 소득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바로 도로 위의 세상. 맨날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탔을 때는 몰랐는데, 직접 차를 모는 주체가 되어보니 많은 것들이 달리 보인다. 차에 1도 관심 없었는데 이제 좋은 차가 왠지 모르게 탐난다. 길에 대한 감각도 새로 정립된다. 운전자와 보행자에 대한 개념도 아예 달라진다. 가장 결정적으로 도로 위 자동차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또 얼마나 무법자들이 많은지 알게 된다.


운전을 하고 싶고 차를 사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여행이다. 차가 있으면, 더 많은 곳을 더 효율적으로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은 세상을 탐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차로 해안가 드라이브를 하며 성공의 맛(?)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차를 사는 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그때쯤이면 시동 켜는 법도 까먹어서 다시 돈과 시간을 들여 저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떠리.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건 언제나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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