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만난 마이웨이 삼대장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게 흥미로운 존재로 다가온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의 특징을 짧게 요약해보자면, 첫째,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는 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둘째, 상사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는다. 셋째, 업무 시간과 개인 시간을 철저히 나눠서 지킨다. 이들이 내게 흥미롭게 다가온 이유가 뭘까.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한 마이웨이에 대한 동경이 저절로 그들에게 이끌리도록 한 걸까. 나는 조금 음흉할 순 있지만, 조심스레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캐릭터 1 : 성별 남자. 나이 20대 후반 30대 초반 추정(우리 회사는 나이를 그렇게 따져 묻지 않는다. 대충 추측할 뿐). 운동과 음악을 좋아함.
나는 그를 신입사원 교육 때 처음 보았다. 우리는 한 달여 동안 좁은 공간에서 계속 같이 교육을 받았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를 지어 어울리거나 쉬는 시간에 서로 잡담을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는 남달랐다. 나는 한 달 동안 한 번도 그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키도 크고 진한 인상을 소유하고 있는 그가 마치 무리 속의 고고한 학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으레 그렇듯 신입사원 때는 동기들 간 잦은 회식 자리가 있었고, 전체 회식 중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에겐 나름의 반전이 있었다. 나는 그가 도도한 척 굴거나 젠체할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 테이블 속에서 사람들과의 대화가 끊이지 않도록 먼저 질문도 하고, 무에타이 선수 닮았다는(?) 다른 동기의 농담에 웃어 넘기기는 아량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나플라와 루피를 좋아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으며, 클라이밍 센터 1년 회원권을 끊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회식 자리가 끝나자마자, 시끄러운 단체 채팅방 속 그의 기본 이미지 카톡 프사 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교육 이후 그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캐릭터 2 : 성별 여자. 나이 20대 중반. 중국어 전공. 학벌로 인해 회사 내에서 유명함.
캐릭터 2는 한동안 나와 같은 부서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꽤나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녀의 사적인 것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녀가 중국어를 전공했고, 그때 당시 최근에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우선 그녀는 남에게 절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먼저 말을 걸면, 예를 들어 중국 여행 어땠냐고 물어보면, 자신의 중국 여행에 관한 소회를 약 5-10분가량 설명해준다. 그러곤 대화가 어색하지도 않지만 뭔가 친근한 것 같지도 않은 느낌으로 끝이 난다.
그녀는 역시 그녀의 동기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는데, 먼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기라도 하면 모두가 놀랄 정도였다. 그녀는 특히 퇴근 시간을 아주 칼 같이 지켰다. 우리 회사 분위기 상 퇴근 시간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데, 그녀는 그 방면에서 아주 당당했다. 가장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해서 삽시간에 유명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한 번은 멘토 지정인 어쩌니 하며 회식 자리가 있었는데, 그녀는 회식을 할 거면 수당을 달라고 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 회식 자리에 가지 않게 되었다. 드라마에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녀의 그런 행태에 윗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지만, 비슷한 직급이나 동년배들은 대단하다며 박수를 쳤다는 후문을 들었다.
아, 또 하나 생각났다. 그녀는 점심시간에 맛집 찾아가는 걸 매우 좋아해서 혼자서도 택시를 타고 맛집 탐방을 잘 다녔다.
#캐릭터 3 : 성별 남자. 나이 20대 후반 30대 초반 추정. 27살-28살 즈음에 결혼한 것으로 추정. 자식은 없음.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함.
그는 현재 나와 같은 부서인데, 그도 남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이렇게 적고 보니 세 명의 공통점이구나.) 그는 요즘의 기준에서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듣기로는 아내와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직접 들은 게 아니다...) 대화 당시 최근에 괌에 갔다 왔는데, 그는 여행 소감을 단문으로 밖에 답해주지 않아 내가 계속 질문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는 특히 회식을 매우 싫어한다. 어느 회식 날 그는 아내 생일이어서 집에 일찍 가고자 했는데 그의 이유가 통하지 않았다. 진짜인지 거짓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웬만하면 사정이 있다고 빠지는데, 그날은 어쩔 수 없이 끌려오게 된 것이다. 그날 내가 살펴본 그의 표정은 말 그대로 '똥 씹은 표정'이었다. 우리 부서 상사들은 자기 말을 하고 나서 아랫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쪽을 쳐다보는 것을 포기하는 상사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일하다가 민원인에게 해코지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 같았으면 이 사실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을 텐데, 그의 목소리는 매우 침착했고, 내가 이것저것 캐물어야 사건의 개요를 대답해주는 수준이었다. 그는 상사나 주변 동료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다. 그는 "경찰에 넘겼는데 ㅇㅇ라서 가중 처벌되겠죠."라며 (전화상이었지만 내 추측으론) 미소를 띠며 답했고,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