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담임을 하던 해, 가을빛여행으로 가야산 심원사에 템플스테이를 갔다. (우리 학교는 중등과정이 6학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가장 어린 학년의 아이들을 맡아 이전까지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많이 겪었다... 고 생각한다)
절에서 머무는 그 며칠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의 종운이는 자주 화가 나 있었고, 툭하면 싸웠으며, 종종 토라져 개인행동을 하는 바람에 꽤 많은 사람을 열 받게 했다. 고요한 산사는 종운이와 벌이는 실랑이로 조용한 때가 없었다. 오가는 스님과 보살님들 눈치도 보였고, 절간의 분위기상 안 그런 척했을 뿐, 나는 많은 시간 상당히 열 받아 있었다. 절에서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준 모닥불과 재미있는 놀이 시간도 뭔가 심술이 잔뜩 나 있는 종운이를 달래지 못했다. 나는 저쪽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는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구시렁 거리고 있는 종운이를 데리고, 바로 그 얼르고 달래는 것을 하느라 꽤 고생을 했다.
아이들과 백팔배를 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했다. '언제 끝나요', '아, 힘들어', '내일 걷지도 못하겠네' 하며 툴툴대는 종운이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백팔배 시간 끝나고 저 녀석 혼쭐을 내줘야지 했다가, 아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었다가, 다른 아이들은 군말 없이 땀 뻘뻘 흘리며 절하고 있는데 굳이 저렇게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야 하나 생각하며, 화를 냈다 가라앉혔다를 반복했다. 백팔번뇌였다.
스님과의 대화 시간에는 뭔 질문을 그렇게 장난스럽게 하는지, 아주 민망했다.
"스님도 콜라 먹어요? 스님도 애니팡 해요?"
"스님도 고기 먹는다면서요! 비빔밥 밑에 고기 깔아달라고 한다던데요? 사람들 없을 때는 고기 먹죠?"
"스님도 군대 가요? 가면 총 쏴요?"
장난을 하는 것인지, 시비를 거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질문들에 스님은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셨다. '부처님보다 스님한테 관심이 많구나' 하며 답해주시는 모습에 고수의 내공은 과연 다르다고 생각했다.
종운이의 결정적인 한방은 마지막 날에 벌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마지막 공양은 발우공양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방을 나서면서부터 절간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발우공양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그릇 씻은 물을 마시면 토가 쏠린다더라, 어차피 토할 거니까 밥을 조금만 먹을 거다, 하며 저들끼리 수많은 말을 나눴다. '우웩! 우웩!' 하는 의성어의 남발도 잊지 않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다른 종류의 근심 걱정을 가득 안고 공양간에 들어섰다. 다행스럽게도 가지런히 놓인 발우와 스님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정작 공양간에서는 다들 숨죽이고 발우 앞에 앉았다.
조용한 가운데, 스님이 이런저런 절차를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이윽고, 식사의 마지막에 그릇을 물로 헹굴 것이고 위에 뜬 맑은 물만 양동이에 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가라앉은 건더기(!)들은 먹어야 한다는 소리. 아이들이 '히익!' 하며 놀라는 숨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스님은 '아귀' 이야기를 해주셨다. 양동이에 모은 맑은 물을 내다 버리면 아귀가 받아 마시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아귀는 목구멍이 바늘 끝보다 작아서, 만약 그 물에 고춧가루 한 점이라도 들어있으면, 아귀는 목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낄 것이라고, 그러니 아주 맑은 물만 남도록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야 한다고 했다. 내용에 비해 꽤 담담한 목소리로 말씀을 해주셨다.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는데, 종운이가 대뜸 목청껏 외쳤다.
"그 아귀는 착한 놈이에요, 나쁜 놈이에요!!??"
아 이런. 종운이가 어떤 이야기로 전개시킬지 뻔했다. 분명, 아귀는 지옥에 떨어진 존재이고 나쁜 놈이니까, 목이 활활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게끔 벌을 줘야 되지 않냐며 큰소리 빵빵 칠 것이 예상되었다. 그러니 그릇을 깨끗하게 비울 필요가 없잖아요! 하며 소리칠 것이고, 그걸 들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며 웃게 될 상황들이 상상되었다. 나는 순간 너무나 당황해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귀가 착한지 나쁜지 걱정하는 걸 보면, 네가 착한 아이지"
아-
종운이의 짧은 감탄사. 더불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댕~ 하고 새벽종이 울린 듯한 감동...(일단, 한마디 말로 종운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자체가 감동) 흔들고자 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큰 자비와 은혜로움을 눈앞에서 마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며칠간 나를 흔들고 있었던 것은 종운이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퍼뜩 눈이 뜨였다.
교사라는 직업은 까딱 잘못하면 별것 아닌 것에 평가질 하는 습관을 갖게 되기가 쉽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를 가지고 일하는 일상을 사는 동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분별심이라는 마음의 지옥에서 살게 될 확률이 높다.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절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 어떤 것이 맞는 것이고 어떤 것이 틀린 것인가. 새소리 나는 조용한 절간에 대한 '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나는 아이들 행동을 단속하느라 평소보다 더 심하게 마음을 썼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되는 것', '안 되는 것'을 나누느라 머릿속이 정신없이 바빴고, 나도 모르게 열심히 잔소리를 해댔을 것이다. 눈치 빠른 종운이는 그 무의미한 잣대질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을 한 것일 터였다.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따지고 있었던 것은 종운이가 아니라 나였던 것이다.
열심히 판단질을 하고 있다 보니, 역으로,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넘쳐 있었다는 생각도 훅 올라왔다. 아이들의 모습으로 내가 어떤 선생님으로 비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내내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실은 나에게 자비란 없었던 것이다. 저녁마다 방에 돌아와 피곤에 쩔은 한숨을 쉴 때 깨달았어야 했다. 절에 머물면서도 나는 도리어 지옥에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시작할 때는 삐딱하던 종운이가, 자세를 고쳐 앉고 그릇 헹군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사실 그 모습에 또다시 '바른 자세', '잘하고 있구나'와 같은 번잡한 판단들이 샘솟는 것도 보게 되었다. 평가와 판단, 비난이 오가는 수많은 말잔치를 늘 보며 사는 일상.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연민과 자비심을 갖기가 무척 어렵다.
그야말로 수행이 괜히 수행이 아닌 건가.
덧) 물론, 그 순간은 그 순간일 뿐.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다사다난 백팔번뇌와 함께 마음 안팎은 쉴 새 없이 시끌벅적했다. 아직 멀었다.
어느 맑은 봄날, 제자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람이 흔들리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은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