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벗어나는 아이들의 원래 마음은 뭘까
제가 젊은 시절, 아이 둘이 가출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천 앞바다로 찾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에 그 애들을 찾아서는 근처 여관방을 잡고 라면을 끓여먹였어요. 애들 가방을 열어서 이 녀석들이 뭘 들고 나왔나 봤더니, 아 글쎄, 산수책이랑 공책이 들어있었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집 나간다는 놈들이 산수책은 왜 들고 나왔어!?’ 하고 물으니, 아, 그 녀석들이 우물쭈물하면서 답하는 겁니다.
‘숙제하려고요...’ (웃음)
아이들은 그런 것 같아요. 공부하기 싫어요 숙제하기 싫어요 하면서도 아이들은 학교를 원하고 학교로 모이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초등학교에서 40여 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임을 하셨다.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학교에서 교사로 살아온 셈인데, 그 마지막 날, 퇴임식에서 한 이야기가 가출한 초딩들의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학교를 원하고 학교로 모이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뭉클했다.
“쌤!! 연수가!! 학교 어디에도!! 없어요!!”
원준이가 무슨 연극 대사를 하는 듯이 격정적으로 외쳐서 아이들 몇몇이 그게 뭔 말이냐며 키득대며 웃었다. 그런데. 정말로. 연수가. 학교 어디에도. 없었다! 기숙사의 연수 짐가방도 함께 사라져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고, 말 그대로 연수가 증발해버린 것이었다.
알고 보니, 연수는 이미 엄마에게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한 뒤였다. 아마 엄마와 통화 후 바로 짐을 챙겨 기숙사를 나선 듯했다. ‘얘가 정말 학교를 그만두려는 것일까요?’하는 어머님 말씀에 걱정이 잔뜩 묻어났는데, 사실, 좀 쉬고 오면 연수 마음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통화를 마치고 잠시 딴 일을 했다. 하지만 스물스물 다른 생각이 올라왔다.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택시를 타고 내달려 잠시 후 나는 서울역을 헤집고 있었다. 식당과 카페를 둘러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보고 온 데 다 휘저으며 연수를 찾았다. 드넓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이 잘못이지. 그러다 문득 기차 출발시간을 표시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연수가 기숙사에서 출발한 시간을 추측해본다면, 지금 저기 대기 중인 기차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망설여지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대기 중인 평택행 기차에 결연한 마음으로 올라탔다.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 10분. 10분 안에 연수를 찾지 못하면 어쩌지? 아마 앞으로 연수를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우편으로 날아온 자퇴 신청서 한 장을 받게 될 것 같았다. 1호 차 끝으로 올라타 자리를 하나하나 훑어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뒤통수와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며 한 칸 한 칸 넘어가던 중, 화장실 옆 짐칸 캐리어 뒤로 언뜻 비치는 샛노란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연수는 짐칸 안쪽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묻고 있었다. 하. 참았던 숨이 탁하고 나왔다. 캐리어 앞에 서서 말없이 잠시 내려다보았다. 이름조차 부르기 힘든 기분. 연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슬로모션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놀란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손을 내밀어 손목을 잡았는데 연수가 말없이 일어났다. 삐거덕대며 짐칸에서 빠져나온 연수와 함께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문이 닫히고 기차가 출발했다.
“밥은 먹었어?”
어색한 첫마디를 날렸다.
역사 내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이고, 마주 앉아 레모네이드 한 잔을 마시는 동안 별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에 평소 말이 없었던 연수는 묻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었다. 캐묻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게 하려고 조심히 건넨 몇 마디와,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거쳐 더듬더듬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숙제가 어렵고, 선배들의 잔소리가 억울하고 등등. 평소에 들었다면 학교 탈출 이유로 인정해 주기에는 어림도 없었을 내용들이었지만, 서울역 이름 모를 카페에서 캐리어를 옆에 세워두고 마주 앉은 생경함은 나에게도 다른 마음가짐을 안겨주었던지라, 그래, 네 말이 맞다, 힘든 일이다, 연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택시에서도 연수는 조용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짐칸 안에서 나를 딱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 마음먹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짐을 싸서 도망쳐 나와 대차게 기차를 탔는데, 뭔가 싸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님이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상황!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맞은편 창밖을 보고 앉아있는 연수에게 조용히 물었다. 기차에서 내가 손목을 잡아서 끌었을 때 싫다면서 반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냥 순순히 내렸냐고,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연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그냥... 다시 학교로 가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아.
‘다시 학교로 가야지’ 라니.
산수책과 숙제 공책을 가방에 챙겨 집을 나섰던 그 오래전 초딩들은 인천 부둣가에서 선생님을 만났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연수는 짐칸에 쭈그려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에게 손목이 잡혔을 때는 실망을 했을까. 아니면 잡혀서 안심이었을까. 사실은 학교를 잘 다니고 싶다고, 붙잡아주길 원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짐을 챙겨 나섰던 것일까. 그래서 말없이 일어나 기차에서 내렸던 것일까. 한번에 몰아치는 오만가지 생각들과 함께, ‘아이들은 사실 학교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라던 아버지의 퇴임사 한 마디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쉬는 시간에 몰래 교문을 나서는 귀여운 짓부터 시작해서, 사건 사고(!)에 해당하는 학교 탈출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까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와 모양새는 여러 가지다. 지지고 볶는 일상이 흘러가며 학교는 싫은 곳이 되어 있고, 이런 아이들을 꾸역꾸역 다시 데려다 놓으려는 선생님들과 아이들 사이의 밀당이 학교생활에서 은근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꽤나 지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연수의 조용한 한마디는, 학교라는 곳이 아이들에게 어떤 곳인지 진지하게 되묻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나조차도 가끔은 학교에 실망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인데, 학교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뭘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학교 밖으로 뛰어나가는 아이들이 사실 학교 안의 삶을 제대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학교는 칠판과 교과서 밖의 중요한 것들을 다시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상심한 마음을 안고 뛰어나간 아이가 결국 다시 돌아올 곳으로 학교를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연수의 손목을 잡았던 것이, 놓칠 뻔한 무언가를 붙잡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꽤 묵직한 기분으로 지냈다. 사는 동안, 무슨 일인지 캐묻지 않고 맞아줄 곳이 하나 필요하다면, 아이들에게는 그곳이 학교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수는 무사히 졸업을 하였다.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어주었다. 졸업식날 축하의 말을 하는 시간에 기차간 짐칸에서 노란 머리 연수를 찾은 이 일화를 재미있게 말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서 몹쓸 꼴을 보이고 스스로 몹시 당황했다. 나 역시 학교가 버거운 때가 있고, 그때마다 연수가 했던 ‘다시 학교로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는 그 말을 따라 학교로 돌아오는 것을 해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덧) 연수는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