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점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Sep 02. 2020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오늘 기분 안 좋았는데, 너랑 이야기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어.


고등학교 때 지루한 야자를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가는 길, 같이 걷던 친구에게 평소와 같이 미주알고주알 열심히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특히나 당시 나는 남을 웃기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가득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손짓 발짓을 섞고 목청껏 성대모사도 하며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깔깔거리던 친구가 잠시 멈추더니 진지하게 했던 말이 바로 '너랑 이야기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어'였다. 


우와아. 가슴속에서 무언가 크게 피어올랐다. '좋다', '기쁘다'라는 표현으로는 좀 모자란 감이 있다. 내 몸이 순간 커다랗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그렇게 절친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고마움이 일면서 이 친구는 정말 친하고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정작 지금은 그 친구의 생존 여부도 모르니, 거참). 세상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고, 행복감으로 충만하다는 것이 그럴 때 쓰는 것인가 싶다. 그리고 그 말은 내 평생 마음에 간직한 말이 되었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 이렇게나 강한 것이다. 그 뒤로도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면, '재미나게 해야지' 하는 마음이 한편에 있고, 사람들이 웃거나 반응을 하면 그렇게 보람찰 수가 없다. 그리고 글을 쓸 때도 그런 마음이 뭉근하게 녹아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인가.

남들한테 보이려고. 허허!


자기 해방을 위한 글쓰기 등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왜 하필 공개되는 글을 쓰는 것이냐. '네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와 같은 말이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 별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일상 이야기인데, 페이스북에 글을 좀 길게 썼더니 사람들이 '좋아요'를 연타하며 댓글에 이런저런 말을 달아주었다. 그게 꽤 기분 좋았다...... 


아니다. 사실은 내가 내놓은 이야기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 되게 재밌죠, 내 이야기 되게 특이하죠, 흥미롭죠, 사실은 나랑 비슷한 생각 하죠, 공감되죠, 이런 마음으로 썼다. '좋아요'의 개수와 인정의 말들을 통해 다시 내 몸이 부아앙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나의 욕구에 기름을 붓고 불길을 댕기고 부채질하는 모든 것을 동시에 해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웬걸 '작가'로 인정을 받으니 또 내가 좀 능력 있는 사람같이 느껴지고(일단 '작가'라는 말 자체가 주는 인정이 엄청나게 크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이 되게 중요해지는 일련의 일들이 내 인생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솔직히 남들한테 보이려고 글을 쓴다.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고 내 일상과 내 생각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사실은 특별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쓴다.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채워갈 수 있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아직 범부중생이라 내공이 부족한지 여전히 타인의 인정으로 붕붕 떠오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타닥타닥 써낸 글이 밤늦은 시간 누군가에게 도착했을 때, '오늘 기분 안 좋았는데, 괜찮아지네'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운을 전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기운이 담긴 반응을 얻고 싶어서 괜히 이 단어 저 단어 바꿔 끼워가며 쓰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며, 읽으며, 우리 모두 행복하길....


덧) 그런 의미에서, 구독과 좋아요는 작가를 신명 나게 합니다. (찡긋)

매거진의 이전글 말 걸지 말아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