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생각하다가 문득
엄마는 뜨개질을 무척 잘하셨다. 대바늘이고 코바늘이고 휘리릭 뚝딱 움직여서 여러 가지 색의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옷 한 벌이 나오기도 하고, 큼직하게 꽃이 달린 모자가 나오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젊은 시절에는 동네에서 뜨개질 강습도 하셨다고 했다. 나도 뜨개질을 배워서 옷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가난한 티 나"
요즘에야 취미로도 하고 수제 물건이 더 가치가 높다지만, 당시에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한 푼 한 푼을 아끼고, 돈을 들여 새 옷을 사는 대신 시간을 엮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찰나를 아껴 저축이라도 하듯 뜨개질하는 엄마의 손은 늘 몹시 바빠 보였다. 엄마의 날랜 손짓은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이전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반복하고 반복한 결과이기도 했다. 아주 많은 시간을 털실과 함께 보냈을 것이다. 뜨개바늘이 서로 교차하고 실이 감기는 동안 그 사이로 시간이 한코한코 쌓여왔던 것이다.
"자. 오른쪽 바늘을, 요.. 요기, 요 고리에 끼워 넣어. 아래에서 위로! 그렇지! 그다음에 실을 뒤에서 앞으로 걸고! 요기, 요거 보이지? 요렇게 빼... 면 성공.... 아니, 당기지 말고, 힘 빼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 아이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주었다. 올해도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인데, 캠페인의 취지와 별개로 첫 시간에는 좌절과 탄식이 주를 이룬다. 내 인내심의 한계도 체감하게 된다. 학생들도 나도 숨을 죽이며 두 눈을 부릅뜨고 앉아 겨우 한 코를 만들어낸다. 제 손인데도 불구하고 제 맘대로 안되어 대나무 바늘에 털실 고리 하나를 끼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애처롭다.
"하, 이걸 어떻게 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뜨개질 첫 시간에는 여기저기 한숨 섞인 푸념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 모습이 무색하게 시간이 흐르면 어느샌가 아이들이 완성된 털모자를 들고 와서는 별거 아니라는 듯 툭 올려놓을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아이는 실을 구해 추가로 더 만들어 두 손 가득 들고 오기도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겪는 일이다.
완성해온 모자를 받아 들 때는 오랜 시간 써온 두꺼운 필사 노트를 만나거나, 선이 가득 채워진 만다라를 만났을 때처럼 묵직한 감정이 생긴다. 어색하게 뚫려있는 구멍을 보면, 잠시 옆 친구와 재미있는 농담을 나누었을 시간이 보이기도 하고, 까맣게 때 묻은 부분에서는, 어느 한코의 실수에 탄식하며 주르륵 풀었다 다시 뜨는 과정을 반복한 시간이 보이기도 한다. 고불고불 털실이 꼬여 모자가 되었는데, 사실 그 안에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셈이다. 눈을 치켜뜨고 몰입했을 시간들이 얽히고설켜 형태를 이루어가는 동안, 아마도 손놀림은 조금씩 빨라졌을 것이고, 잔뜩 웅크려 힘을 주고 있던 어깨는 점차 펴졌을 것이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시간을 거쳐 성취감을 향해 달렸을 것이다.
완성된 털모자를 담아 기부단체로 보내는 봉투에는 아이들의 정성과 마음이 함께 담긴다. 시간을 들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기계로 정교하게 짜낸 니트 옷에서 느끼지 못한 것을 아이들의 어설픈 털모자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털실 사이사이에 바로 그 순간의 힘이 함께 짜여 있기 때문이었다.
내 어릴 적 사진 속에는, 엄마가 떠준 옷을 입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가 서 있다. 흰 눈밭이 배경이 되어 실의 꼬임과 색깔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엄마는 어린 딸을 위해 털실을 고르고, 아이의 치수를 재고, 코를 하나하나 세서 부지런히 손을 놀려 옷을 지었다. 가난한 티가 난다고 했던 엄마의 말과 달리 내가 그리 밝게 웃고 있었던 이유는, 그 두툼하게 짜여있는 시간들이 무엇보다 따뜻했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