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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ul 16. 2021

'...읍니다'를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재미로 쓰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엄마 내 교과서가 잘못된 것 같아요!!"


어린 시절, 교과서를 새로 받아오는 날이면 국어 책을 펼쳐서 그 안에 담긴 소설이며 짧은 글들을 그날 하루에 몰아서 읽어버렸다. 마치 새로 출판된 소설책처럼 안에 담긴 것들이 싱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9살이 되어 국민학교 2학년 새 학기를 맞이한 그날도 어김없이 방바닥에 늘어놓은 교과서들을 차례대로 펼치며 기대에 들떠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 가히 심했다. 내가 받아온 교과서가 잘못 인쇄되기라도 한 것인가!


'...... 습니다.'


입 밖으로 ㅅ 소리가 나더라도, 글을 쓸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신통하게도 그 어린 시절의 나는 깨우쳐버렸다. 어린 나는 틀리지 않고 '읍니다'를 잘 써내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읍니다'를 제대로 쓰는 것으로 보아 국민학교 입학 후 나의 학교생활은 탄탄대로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받아쓰기를 할 때면, 어떤 낱말은 앞쪽에 있는 받침이 뒤쪽 모음에 붙어서 소리가 난다는 것을 유념했다. 괜히 더 앞서서 똘똘하게 머리를 굴리다가, 가끔은 그렇게 쓰지 말아야 할 것도 그렇게 쓰고는 틀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꿔 쓰라니,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애씀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듯하였다. 소리 나는 대로 쓰지 않으려고 꼬박꼬박 노력하며 썼던 '읍니다'인데! 그걸 틀리지 않고 잘 해내며 얻은 칭찬과 인정들은 무엇이었나. 신경이라고는 쓰지 않고 늘 소리 나는 대로 쓰던 친구들이 맞은 것이 되었고, 오히려 마음 쓰며 열심히 열심히 '읍'을 적었던 나는, 되레 그동안의 습관마저 고쳐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교과서가 잘못 인쇄된 것 같다며 달려갔을 때, 엄마도 한 번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게...? 그런데 여기도, 여기도, 또 여기도... 다 '습니다'로 되어 있는데? 아. 판사의 방망이처럼 나에게 결정타를 날려주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고 하였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날 이후로는 그냥 '습니다'가 세상을 평정해버렸다. 



'...... 읍니다.'


고릿적 단어가 카톡 창에 떴다. 문장에 오타가 있거나, 맞춤법 틀린 낱말이 등장하면 숨을 고르게 쉬다  들숨과 날숨에 뜬금없는 엇박이 생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다 숨쉬기 불편하지 않게끔 조심해서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읍니다'는 심장을 때린다. 갑자기 시공간을 뒤바꿔놓는 듯한 그 글자에 '쿵' 하고 잠시 멈추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손으로 그린 영화 포스터 간판이 걸려있을 것 같은 글자이고, 종이 신문에 연탄가스 중독 사망 뉴스가 실려 있을 것 같은 글자이고, 아이들이 도시락 가방을 들고 등교를 할 것만 같은 글자이다. 


'읍니다'를 당차게 써서 보내온 누군가를 대하며 여전히 건널목을 건너지 않고 건너편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세대를 다 드러내는 그 글자를 보며 한편 나의 연배도 다시 깨닫는다. 글자를 익히는 길의 초입에서 아주 잠깐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했던 그 한 글자가 이렇게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재미난 말놀이처럼 '읍니다'가 뜨고 있던데, 옛날 느낌 내거나 옛날 사람이 말하듯이 표현하고 싶을 때 쓰면 된단다. 괜히 맞춤법 운운하면 트렌드에 뒤떨어진 옛날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상황 봐가며 놀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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