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날 아니고 스승의 날
네가 내 스승인 셈이야
스승의 날이면 나에게 늘 문자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공부하던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인데,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어쩌다 오래간만에 만나면, 이런저런 학교 생활의 고충을 나누며 수다를 떨다, 친구에게 생소할 법한 대안학교의 일상과 고민을 공유해주곤 한다. 스승의 날이 되면 어김없이 문자가 온다. 많이 생각하고 배우게 된다며, 무려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가슴이 웅장 해지는 문자를 나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민망했다가, 그다음 해에는 좀 자랑스러웠다가, 요즘 들어서는 그 문자에 오히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치다 타츠루는 <스승은 있다>에서 좋은 선생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훌륭하다'라고 생각하며 '선언'할 뿐이다. 그 선언은 스스로가 성장하지 않고서는 그 진리성을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가능한 많은 사람을 향해 '선생님은 훌륭하다' 선언하라고 하며,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이때 '선생님'이란 당연히 직업으로서의 '교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왠지 모를 무림 고수의 기운을 알아채 옆집 아저씨를 스승으로 인정하게 될 수도 있다. 수다를 떨던 중에 가르침을 얻어 친구에게 '스승'이라며 감사를 표하는, 오랜 벗의 성찰이 얼마나 깊은지 해마다 느끼고 있다. 덕분에 나도 괜히 기회삼아 여기저기 감사 표현을 한다. 많이 배웠습니다, 하고.
아이들에게 내 친구의 스승의 날 기념 문자를 이야기해주었다. 스승은 내 삶의 어느 곳에나 있다는 말과 함께, 각자 학교생활을 하며 누구에게서 어떤 배움을 얻고 있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친구에게서 친절과 배려를 배웠다는 이야기, 숙제도 해야 되고 바쁜데 학교 일을 나서서 하는 친구를 보며,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는 이야기, 선배들의 모습에서 리더십을 배웠다는 이야기,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뿐만 아니라 또래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시비 걸고 장난치는 친구에게 짜증을 내면서도 한편 그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배우는 것도 있다.
수업시간에 자료로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시를 함께 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할머니들의 삐뚤빼뚤 글자 속에서 '배우는 것에 대한 기쁨'을 마주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그 진지한 표정에서 정작 내가 많이 배웠다. 가르침이 있기 이전에,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 스승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이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 자리가 참 복된 일이구나 싶었다.
어릴 적 스승의 날 아침이면 교탁 위에는 아이들이 각자 준비해온 선물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촌지와 뇌물 이야기로 시끌 거리는 시절을 지나고 보니 그 장면이 참 희한하긴 하다. 이제는 학교마다 재량휴일로 정해 그냥 서로 모르는 날처럼 지나기도 한다. 교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자축'의 메시지가 뜨는 것을 볼 때는, '축하'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인가 잠시 의문스럽다.
스승의 날을 '교사'의 날이 아니라, '배움'과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는 날로 해보면 어떨까 싶다. 자녀의 담임 선생님께 어떤 표시라도 전해야 되나 전전긍긍하는 그런 날이 아니라, 부모님들도 지금 현재를 살며 어떤 배움을 얻어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지 아이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마음에 담고 있는 스승을 찾아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배움의 중요성과 감사를 배우고, 진솔하고 공손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익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혹은 주변에 힘든 상황으로 배움을 이어가지 못하거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활동이 이어지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