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안 된다는 건 많으면서...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 앞에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떡볶이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굣길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사먹는 게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와 함께 지내고 있는 학생들은 좀 다른 경우에 놓여있다. 일반학교 주변엔 으레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형성될 수 있겠지만, 많은 대안학교가 지역 외곽 산골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도시에 있더라도 소수의 아이들을 위한 상권이 만들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들만의 먹거리 문화를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아이들과 함께 인근 공립초등학교 주변의 분식집을 찾아가 와글거리는 일반학교 초등학생 틈에서 떡볶이 국물에 삶은 달걀을 으깨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른들만 먹을 수 있는 것은 많은데, 어린이들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른들은 일상적으로 먹고 마실 수 있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은 안 되는 그런 음식들을 이것저것 떠올릴 수 있다. 반대로 어린 사람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그야 신체적인 성장의 정도가 다르니 그럴 수 있다 하면서도, 아이들이 느끼는 차별감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이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가게를 연다면, 미성년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행사를 연다면 어떤 메뉴를 준비할 수 있을까 낄낄대며 이야기를 나눠보았지만, 언급된 것들이 '어린이만', '미성년자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1박 2일로 진행된 학교 행사 때의 일이 떠올랐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다 함께 모여 치르는 한 해의 큰 행사였다. 천막 아래에서 파전을 부쳐 나눠먹고 어른들과 학생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 축구나 족구를 하며 어울렸다. 행사 막바지에는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했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원을 만들고 즐겁게 운동장을 돌았다. 동그랗게 모여 손을 잡는 것은 우리 모두의 평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을 의미했다. 다들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았고,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이어진 뒤풀이에서 어른들은 술 한잔을 곁들이며 큰소리로 웃었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었다.
하지만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술렁술렁 분위기가 묘했다. 어른들이 남겨놓은 술병에 아이들이 손을 댄 것이었다. 밤 사이 술기운에 들뜬 어른들은 뒷정리를 소홀히 여겼고, 축제의 여운에 쉽게 잠들지 못한 아이들은 운동장을 배회하다, 남겨진 술병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였다. 늦은 저녁 기숙사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더라, 복도를 뛰었다더라 하는 일화는 모두 술에 취한 행동으로 해석이 되었다.
교사회에서 그 일을 가지고 어떤 논의를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아이들이 술을 마신 것 때문에 회의가 이루어졌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술을 마신 것이 문제인지, 술을 마시고 정리를 하지 않은 어른들의 문제인지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학교는 나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고려하는 교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성평등을 이야기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평등과 인권을 공부했다. 심지어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댓말을 하며 지낼 만큼 평등에 대한 감수성에 자부심도 있었다. 채식을 하는 학생을 위해 매 끼니마다 채식 반찬이 준비되었고, 미역국 한 그릇도 고기를 넣지 않고 따로 끓인 것이 준비되었다. 하지만, 어른과 어린이, 어른과 청소년의 관계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힘의 불균형을 알아채지 못했다.
미성년자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을 놓고, 술에 손을 댄 아이들을 문제 삼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어른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그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펼쳐놓았고,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아이들만을 위한 것을 따로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연말 발표회 날 뒤풀이며 마을 잔치를 할 때에도 어김없이 술자리가 만들어졌고, 함께 있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안된다'라는 암묵적 메시지만 전달되었을 뿐이었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어릴 때 마시면 키가 안 자란다는 커피까지. 혹은 이런 것들을 넘어서 아이들의 먹거리 선택에 대해 과도하게 제한을 두고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애들도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도 평등하게 다 허용해야 한다'라는 생각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신체 상황과 성장에 따라 해로운 정도가 어른들과는 다를 것이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지점에 대해 어른들의 지혜로운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수많은 차별과 배제가 일상에 펼쳐져있고, 그것을 깨달아 스스로를 바꾸기까지 참 많은 노력이 든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배제는 우리 사회의 나이권력과 맞물려 있어 그런지 더욱 알아채기가 어렵다. 모임을 준비할 때, 채식자를 위해 채식메뉴를 준비하는 것처럼, 더 나아가 고기 파티는 지양하기로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하는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그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는 먹거리는 제외하고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하면 좋겠다. 아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행사의 먹거리 메뉴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을 것 같다.
이참에 어른들은 술 없이도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함께 키워보면 어떨까 싶다.
*이미지출처 : gettyimagesb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