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눈물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장례식장 방문기

by 서울쥐

얼마 전 어떤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랜 연을 이어오고 있는 지인의 부친상이었다.

오래전부터 몹쓸 병고를 앓으셨다는 지인의 부친은

몇 차례 생사의 위기를 거치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 소식은 부친상 단체 문자를 통해 전해졌는데,

문자를 접하자마자 'ㅠㅠ 이런!...'이라는 생각이 (물론) 먼저 들었지만

아직은 장례식에 자주 갈 나이가 아니라 그런지 뒤따라 오는 생각들이

꽤나 부산스러웠다.


1. 흰 셔츠를 입고 가도 되는 걸까?

드라마 보면 뭔가 겉에 검정 재킷 같은 걸 챙겨 입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갔던 장례식을 떠올려 봤다. ㅇ ㅏ. 계절이 달랐다.

글을 쓰는 시점은 걷기만 해도 등에 땀이 맺히는 여름이었고

과거의 장례식들은 우연히도 모두 겨울이었다.

당연히 모두 겉에 어두운 색상의 재킷이나 코트 등을 입었었다.


이렇게 애매할 때는 현대 문명의 지성을 활용해야지.

네이버 창을 연다.


'장례식장 여자 복장' '장례식장 예절'


ok. 흰 셔츠 가능.

흰 셔츠를 입기로 했다. 어두운 바지에 검정 구두를 신으려고 했는데,

? 잠깐.

양말은 무조건 검은색을 신으라굽쇼?

덧신이나 스타킹에 대한 소견도

'.... 쫌 ^^;...'.

이런 느낌이었다.


검정 양말을 신으면 검정 구두를 신지 못한다.

내가 가진 하이힐은 얇디얇은 스타킹을 신어야 꼭 맞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고민을 하다 구두를 포기했다. 어차피 바로 벗고 들어갈 것.

검정 운동화를 신자.


복장 문제는 모두 해결.


2. 가서 어떻게 있어야 하지? 펑펑 울어야 하는 걸까?

밥을 꼭 먹어야 하나? 얼마나 앉아 있다 와야 적절한 걸까?

일단 현대 지성의 복합체이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네이버)에 검색해본 결과,


체류시간은 30분 정도가 적당한데

이것도 케바케.


아주 친한 사이거나/조문객이 별로 없거나/

장지를 돕고 싶다면 장례식장 구석에 머물다가

잠도 자고 발인 날 도우면 된다.

(이거 보고 혹시? 하는 생각에 30초간 잠을 자고

오는 경우의 수도 상상했었다)

이 것 저 것 생각한 결과 나의 예상 체류시간은

20분-30 정도.


식사의 경우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다고 하길래

장례식장에 혼자가 기도 하고, 밥까지 먹을 자신이 없어

집에서 밥을 먹고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눈물은 적혀 있지가 않았다.

(울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거임 ㅇㅇ,

눈가에 약간 맺힐 때까지? 또르르륵 두 방울 이상, 오열을 해도 된다던지..)

장례식장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느 정도 슬픔을 표해야 예의를

지키는 건지도 의뭉스러웠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가...!


얼마간 고민을 하다가

비극에는 응당 눈물이 있어야 하는 게 맞다는 혼자의 결론을 내렸다.

혼자 내린 결론에 세찬 긍정의 위아래 고갯짓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혹시 눈물이 안 나오면 어쩌나

또 다른 작은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무정한 성정은 아니지만(아니라 믿는다)

존함도 몰랐던 지인의 아버지 영정사진을 보고

팡팡- 눈물의 샘이 터질지는 의문..


지인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이니

엄청난 비극임이 틀림없지만,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어떤 어른의 죽음이 눈물 날 만큼 슬플 수 있을까?

혹여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진지한 걱정이 됐다.

<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걱정이었구나 싶은데

실제로 그랬다. 나도 나의 불필요한 걱정이 가끔,

아니 자주 어이가 없다. >


내 부모님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도 하면서

나름의 감정선을 떠올렸는데

앞 서 부담스러운 걱정을 해서 그런가(ㅠㅠ)

슬픔이 파도처럼 넘실대진 않았다.


이런 걱정, 저런 염려를 하다가 장례식장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도 열심히 장례식 예절을 찾고 공부해서

도착 후 조금은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상주와 가족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장례식장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일지 미궁 속에 들어선 장례식장.

미리 안내받은 호수로 찾아가 보니

생각보다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상주인 지인의 얼굴을 보는데

아니, 장례식장 내로 들어가는데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족분들이 모두 웃고 있고

장내에 계신 분들도 박장대소 까진 아니지만

입가에 미소를 띠고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거 아닌가..!


지인 역시 반가운 얼굴을 하고는 한껏 높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 울지 않아도 되는구나. 아니 오히려 울면 이상해지겠다.'

기묘한 안도감이 들었는데, 이 기묘함에 죄책감과 안정을 함께

느꼈던 것 같다.



지인의 아버지는 오랜 지병으로 가족과 본인 모두 어려움을 겪다가

비교적 편안하게 몽중 소천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삶에서 사라진다는 게 어찌

쉽고 '편안'했기만 했을까.


여러 감정의 파도를 타고 지나, 약간의 안정을 찾은 듯한

가족들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다...


어라.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아니 왜, 지금?

아무도 울지 않던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나 몰라...

당혹스러운 눈물샘을 손으로 가리고 훔치니

지인이 더 당황한 듯했다.

우는 나를 달래던 지인은 손님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는 걸 보며 다시 인사를 하기 위해 내 곁을 잠시 떠났다.


잠시 후 훌쩍이던 눈물이 멈추고 나니

너무너무 뻘쭘했다.

깨끗한 비닐이 깔린 4인용 식탁에 홀로 앉아

봉봉 음료를 까먹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화장도 다 지워지고 코는 빨개진 나,

밥도 술도 뭣도 없는 내 상 위 마치 나같이

놓인 봉봉 한 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넘실대는 뻘쭘함을 어찌 섞을 요량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20분도 안되어 도망치듯 나온 장례식장.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올 때 탔던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했던

내가 생각나

눈물 묻은 얼굴로 다시 박장대소했다.



사실 장례식장에서 꼭 울 필요는 없던 것이다.


그리고 꼭 안울어야할 필요도 없으니

오늘 장례식장에서 큰 실례는 없었다.


기묘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무사했던 장례식장 방문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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