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을 흘려듣고 있지는 않나요?
휘낭시에를 굽던 날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달걀을 사러 가기 귀찮아서 굽지 않았을 터이지만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해서 큰맘 먹고 굽기로 했다. 그날은 아침 뉴스에서 최강한파라며 되도록이면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그래도 집에 달걀이 똑 떨어져서 한파를 뚫고 걸어서 마트에 갔다.
달걀 코너에 가서 동물복지란을 찾았다. 매번 장 볼 때 엄마가 사주었기에 몰랐는 데 생각보다 동물복지란은 일반달걀에 비해서 비쌌다. 그래도 이런 소비가 계속되어서 모든 닭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날을 꿈꾸며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의 동물복지란으로 하나 골랐다.
우리 가족도 처음부터 동물복지란만 먹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별 생각이 없던 꼬맹이 시절만 해도 우리는 난각번호 4번의 일반 달걀을 먹었다. 하지만 내가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을 읽은 날부터 우리 가족의 달걀 소비는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산란계 농장의 끔찍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읽기 불편한 책이었지만 그게 끔찍하게도 현실이었다.
우리가 일반 달걀이라고 부르는 난각번호 4번 달걀은 한 마리의 닭이 A4용지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낳는다. 나는 예전에 달걀에서부터 닭을 키워본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건 닭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그 작은 달걀에서 나온 병아리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커졌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닭은 A4용지만 하면 만했지 A4용지보다는 작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닭이 자신의 몸보다 작은 케이지에서 산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달걀을 낳을 때만도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런 케이지에서 다른 닭들과 끼여 사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동물권은 단순히 동물을 사랑해서 주장하는 게 아니다. 현실은 동물을 생명으로 보지 않았고 계란 만드는 기계, 고기 만드는 기계보다도 못한 취급을 했다. 동물권은 정말 생명으로써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그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조금 비싸도 최소한 난각번호 2번 이상의 달걀을 먹자. 닭이 너무 불쌍해."하고 말이다. 엄마는 지금까지 그렇게 먹었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라던지, 그 달걀은 너무 비싸다던지 그런 말없이 다행히 그러자고 했다.
사실 동물복지란이 비싼 건 사실이었다. 이 글을 쓰며 엄마께 여쭤보았다. 그때 내가 동물복지란 처음 사자고 했을 때,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어땠는지 말이다. 엄마는 "으음, 사실 굳이 동물복지란까지 먹어야 할까 생각하기는 했어. 근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닭이 불쌍하기도 했지. 근데 그냥 비싸도 네가 먹고 싶어 하니까 내가 커피 한잔 정도 안 사 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먹기 시작한 거지."라고 했다.
항상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어떤 일을 결정할 때면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우리의 의견도 선택에 한 부분을 차지했다. 언제나 우리의 말이 의견이 존중받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를 존재 그 자체로 존중해주고 있었다. 근데 나는 그걸 다 커서 깨달았다.
이 글에서 말하는 난각번호는 사육환경을 나타내는 마지막 끝자리 숫자이다. 원래 난각번호는 달걀껍데기에 쓰인 숫자로 총 10자리 숫자이다. 앞의 4자리는 산란일자를, 중간 5자리는 생산자 고유번호를, 마지막 끝자리는 사육환경 번호를 의미한다. 사육환경 번호가 1번인 달걀은 자유방목으로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이다. 2번인 달걀은 축사 내에서 자유롭게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이다. 3번 달걀은 개선 케이지에서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이다. 한 마리당 공간이 A4용지보다 조금 큰 정도로 1 마리 당 0.075제곱미터 정도의 공간이 있는 케이지이다. 4번 달걀은 아주 작은 케이지에서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이다. 아주 작은 케이지는 1마리당 공간이 A4용지보다도 작은 0.05제곱미터 이하의 케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