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멀리 떠날 수 없는 아이들이 모험을 떠날 때 어디로 갈까? 나의 경우는 익숙한 공간의 뒤편으로 향했다.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될 때까지 서점가는 "ㅇㅇ에서 살아남기"시리즈가 유행했다. 주로 주인공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사막이나 남극, 정글, 무인도 같은 곳에 떨어져 고군분투하며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시리즈에 매료되어 전 권을 완독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버전은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였다. 다른 곳들과 다르게 어떠한 사전 정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 척박한 환경에서 주인공이 어떤 시련과 위기를 거치고 어떤 혜안으로 그곳에서 끝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모험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쳤다. 그러나 혼자서 동네를 멀리 벗어나 본 적도 없는 어린이가 어느 날 갑자기 무인도로 떠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내가 원래 속해있던 세계를 다른 곳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먼저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몇 시까지 아파트 단지 앞 화단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그 뒤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발길을 재게 옮겼다. 그러다 어느 날은 단지 내 테니스장 뒤편이 아지트로 삼기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니스장은 공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물 모양의 벽이 쳐져 있었고, 바로 그 뒤의 풀밭에서 은신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는 그곳을 우리의 본거지로 삼고 가상의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약초를 캐거나, 맹수를 만났을 때 싸우기 위한 무기를 구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미리 챙겨 온 종이에 기록했다.
그런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테니스장의 그물 사이로 그 안에서 테니스 게임을 하던 한 어른이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것저것 가상의 살림살이를 차려놓은 우리를 보고 웃으며 너희들 여기서 뭐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도 모종의 수치심을 느꼈던 것 같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들켰다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들이 유치하고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저녁 시간이 되자, 나는 지도를 접어 친구 손에 쥐어주고 집으로 돌아가 평소와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내 기억에 나는 그날 이후로는 가상의 모험 놀이를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미술 공부를 하러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나는 나와 내 인생을 정면으로 밀고 나간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이 궁금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내가 모르는 것들을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싶었다.
미술 공부를 하며 느낀 것은, 남들과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다르게 보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런던에서 보았던 수많은 전시에서 각각의 아티스트 고유의 시선을 담은 작품들을 감상했다. 어떨 때는 전시장을 나오면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자 나는 모험 놀이를 끝낸 그날 뒤로 어떤 것도 가정하거나 상상하지 못하고 일상의 공간을 그저 일상을 보내는 장소로만 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내 인생을 앞으로 쭉쭉 밀고 나가는 것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