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둔 겨울에 스페인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가게 되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다양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을 선발해 창작자들의 작업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공간이다. 창작자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창작자들을 만나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자극을 받아 장소 특정적인 작업을 하기도 한다. 나는 석사 과정 중 신청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일주일 동안 스페인에서 지냈다.
내가 갔던 레지던시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가야 나오는 산속의 작은 동네에 있었다. 호스트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곳에 도착하니 사방은 이미 해가 막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레지던시의 호스트는 영국인 아내와 남편이 직접 건축하고 꾸민 곳으로,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기 위해 태양열을 사용하거나 산에서 나무를 떼 와 생활하는 곳이었다. 나를 마중 나온 호스트는 아내의 할아버지가 스페인 출신이어서 아내의 뜻에 따라 영국에서 스페인으로 이주해 함께 터를 잡고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의 트럭을 타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마침내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차에서 내리니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져서 고개를 어느 쪽으로 돌려도 새카만 어둠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심과 멀찍이 떨어져 인공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밤하늘의 별 만이 높은 해상도로 어둠 속에 자리를 잡고 콱콱 박혀 있어서 그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 내 또래의 아티스트들이 벽난로를 가운데 두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반겨 주었다. 그들의 성별과 국적, 그리고 전공은 각기 달랐다. 간단히 인사와 악수를 나눈 뒤 내 방 키를 받아 짐을 풀었다. 곧이어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안내를 받고 부엌으로 향했다.
호스트 부부는 새롭게 합류한 나와 중국인 예니를 위해 첫날 쌀로 만든 요리를 준비했다. 우리는 거기에 와인을 곁들여 마시며 돌아가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뒤 옆에 앉은 사람과 담소를 나누며 첫 날을 보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예니는 영상을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는 아티스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지원금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고, 근처 자연 풍경을 영상으로 찍은 뒤 스스로 쓴 글을 내레이션으로 담은 영상 작품을 하나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당시의 관심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곳에 묵는 동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리는 사람마다 각자 방 하나씩을 배정받아 묵었는데, 호스트가 첫날에 방마다 문을 열고 잠글 수 있는 개인 열쇠를 나눠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내가 문밖에 열쇠를 돌려서 꽂아 놓고 안에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처해 방 안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낮잠을 자거나 내 방과 멀리 떨어진 부엌에 있거나 나무를 하러 산에 갔을 터였다.
그때, 문 너머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헤이, 플리즈 오픈 디스 도어. 그러나 평소에도 목소리가 작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내 목소리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탓일까? 발자국 소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듯했다. 나는 이번에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헤이. 플리즈 스탑. 오픈 디스 도어. 그러자 목소리가 들렸다. 썸 원 히어? 유 오케이? 목소리를 들으니 예니였다. 아임 오케이. 오픈 디스 도어 플리즈. 이내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예니가 나를 보고 놀란 듯이 웃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멋쩍게 웃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예니는 이제 이해가 간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 나서 덧붙였다. 나는 또 네가 행위 예술을 하고 있는 줄 알았어. 예전에 비슷한 작품을 본 적이 있어서 혼자 방 안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줄 알고 방해하지 않으려 했지.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예니의 상상력에 놀라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동시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나서 내가 대답했다. 땡큐, 유 아 마이 라이프 세이버.
그날은 저녁을 먹고 나서 다 같이 와인을 몇 잔씩 더 마셨다. 그새 조금 더 친밀해져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편해진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예니는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자신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18살 이후로는 여러 나라를 거치며 창작 생활과 학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내가 그중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물으니 뉴욕이라고 대답했다. 또,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이 미국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봤지만 그렇구나, 했다. 내가 모르는 삶의 방식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나는 중학교 시절의 일화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였지만 왠지 예니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하루는 미술 시간에 데생을 배웠는데, 컵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이 과제였어.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컵을 그렸지. 그런데 선생님이 지나가시다가 내 그림을 보시더니 무심하게 한 마디 하시는 거야. 구도가 틀렸네. 물론 딱히 악의를 가지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겠지만 그 뒤로 한동안 혼란스러웠어. 그림을 그릴 때 뭐가 맞고 틀렸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 나는 민망한 듯이 웃으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예니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틀린 게 어디 있어? 네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지.
예니는 잠시 테이블 위를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이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이미지는 없어.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 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여기 보이는 이 컵의 형태도, 색도, 텍스쳐도 말이야, 이 컵을 만든 사람은 그 모든 것들의 존재의 이유를 고심해서 정했을 거야. 예니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손에서 컵을 굴리며 바라보다가 나에게 눈 맞추며 조용히 읊조렸다. 너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중요한 건, 너만의 정의를 내리는 거야.
해가 지면 거실에 있는 벽난로에 낮에 산에서 해온 나무를 넣고 불을 때었다. 오랜만에 타닥타닥 타는 큰 불을 보고 있으니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낯선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코가 전통 악기를 불고 있었다. 악기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생김새와 소리는 또렷이 기억난다. 성인 남자의 키보다 조금 더 짧은, 기다란 나팔처럼 생긴 악기였다. 마르코는 의자에 앉아 악기를 두 손으로 잡고 악기의 끝 부분을 바닥에 비스듬히 놓았다. 그리고 입으로 다른 끝을 물고는 힘껏 숨을 내쉬었다. 부우 우- 울리는 소리가 공간으로 퍼졌다. 의자에 앉아 바닥에 대고 있던 발바닥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부우 우- 부우 우-. 발바닥으로도 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예니가 그 소리를 녹음해 그곳에 머물면서 만든 영상 작품에 넣었다. 누군가가 만든 이미지에 또 다른 누군가가 만든 소리가 얹어졌다.
마지막 날 우리는 작은 스크린이 있는 방에 다 같이 모여 예니의 작품을 감상했다. 영상에는 레지던시 주변의 강물과 동트는 풍경, 나무와 나무 사이로 비치는 빛들이 차례로 담겨 있었다. 영상 속 화자는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그 풍경에다 대고 무언가를 나직하게 부르며 찾고 있었다. 예니는 마지막 장면이 끝난 뒤 모두에게 과연 그게 무엇일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재미있었던 점은 모두가 다 다른 답을 내놨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녁을 나눠 먹으며 서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각자 자기 몫의 앞날을 걱정했다. 다음 날, 우리는 산 한가운데 있는 작은 집에서 인생의 한 순간을 나누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 우리는 한 명씩 포옹하고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때로 인생에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에, 상대가 내게 했던 말보다 나를 보며 지었던 표정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살면서 말없이도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만나 밝은 대낮에 헤어져 서로 다른 것들을 찾으러 각자의 길로 떠났다.
살면서 처음으로 보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또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일까, 외국에 다녀온 뒤로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머릿속에 사유의 방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거기에 이면의 공간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내가 확신했던 것들에 대해 문을 하나씩 더 열고 들어가 찬찬히 재고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경험해봐야만 아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문고리를 열고 들어갈 때마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예전처럼 두렵고 싫지만은 않았다. 잘 모르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는 사고의 폭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어떨 때는 은근히 내가 틀리기를 바라기도 했다. 재밌는 일은 주로 그럴 때 생겨났기 때문이다.
런던으로 돌아오자 길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렸다. 한 상점으로 들어가자 아카펠라 그룹이 상점 한가운데에 모여 공연을 하고 있었다. 분주히 상품을 구경하고 가족이나 지인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던 사람들은 노래가 시작되자 발걸음을 멈추고 다 함께 그들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 주변을 잠시 둘러보자 상점 안의 사람들의 외양은 제각기 다 달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이면 너 나할 것 없이 아카펠라 그룹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에 집중했다. 순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그 순간 내가 모르는 일상을 살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그들로부터 떠나와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가 각자 새롭게 배운 것과 느낀 것, 새로 만난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런던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두고 온 것과 내 앞에 놓인 것들, 그리고 그 경계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