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절실했던 SK의 업셋 우승
이번 정규시즌에서 두산 베어스는 일치감치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은 후 2위였던 SK 와이번스를 14.5 게임차로 벌린채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6년 자신들이 보유한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승과 타이기록인 93승을 거두었고 10승 이상을 거둔 선발 투수가 5명이나 나오는 등 시즌 내내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어느 누가 올라오던 두산이 한국시리즈를 손쉽게 우승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어우두'
반면 SK와이번스는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탓에 내상을 입은채로 한국시리즈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팀의 원투 펀치인 김광현과 켈리를 5차전에 모두 소모한 탓에 1, 2차전 선발은 어쩔 수 없이 3, 4선발급인 박종훈과 문승원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박종훈과 문승원 모두 포스트시즌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선수들이었다. 5차전에서 믿었던 켈리가 9회초에 무너졌던 것도 SK에게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김태훈과 정영일이 정규시즌과는 달리 포스트시즌에서 불펜 원투펀치 역할을 하며 대반전을 이뤘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김강민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나고 완전히 방전되었고 한국시리즈에서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자신이 힘든걸 눈치채지 못하게 할까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몸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강민은 전경기 출전을 할 수 있었지만 최정은 팔꿈치 부상으로 1차전에 결장했다. 어쩔 수 없이 3루수 출전 경험이 적은 강승호가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 3루수로 출전하는 모험을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두산은 정규시즌이 끝난 후 서울보다 따뜻한 미야자키로 이동해서 여유있게 한국시리즈를 준비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펼쳐졌다. SK는 두산의 에이스 린드블럼을 상대로 1회초에 한동민이 선제 투런홈런을 기록하며 기선을 제압했고 SK의 1차전 선발 박종훈은 4와 1/3이닝 동안 2자책점만을 허용하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즌 내내 고전했던 김강민과 박정권은 자신들의 왕조의 산증인임을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증명해냈다. 뿐만 아니라 최정을 대신해 3루수 수비를 맡은 강승호는 연달아 호수비를 선보이며 경기 분위기를 SK 쪽으로 끌고왔다. 단기전에서 예상치 못한 선수가 공격과 수비 면에서 맹활약을 펼치면 상대편에서는 경기가 꼬인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인데 1차전과 6차전에서 강승호가 그런 역할을 해낸 것이다. 결국 SK는 박종훈과 문승원으로 원투펀치 린드블럼과 후랭코프가 나온 두산을 상대로 원정에서 1승 1패를 기록하며 홈 3연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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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전이 끝난 후 그 다음날 우천으로 경기가 순연되었다. 비 때문에 이영하에서 린드블럼으로 4차전 선발투수가 바뀐 것은 분명 4차전에는 두산에게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시리즈 전체를 봤을 때는 SK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원래 등판 간격이라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켈리와 김광현을 선발투수로 한 번 밖에 쓸 수 없었다. 그런데 휴식일이 하루 생기면서 6차전에 켈리가 문승원 대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정규시즌만 놓고 봤을 때 수비에서 우위가 있었던 팀은 두산 베어스였다. 하지만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총 7개의 실책을 범했고 특히 5차전에서 김재호가 내야 팝플라이를 놓친 실책은 경기 흐름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결국 흔들린 수비 집중력은 타석에서도 안 좋은 흐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 동안 두산이 기록한 병살은 7개. 시리즈 동안 유격수 김재호의 타율은 0.167, 박건우는 0.042를 기록하며 패배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한국시리즈에서 어짜피 우승하는 팀은 어디에도 없었다.
좀 더 절실했던 SK가 마지막에 웃었고 자만했던 두산은 SK가 우승컵을 드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