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그리고 몬주익 분수쇼
Espanya역에서 내려 에스파냐 광장으로 향하는데 광장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다. 분수쇼를 보려고 모인 사람처럼 보였다.
쌀쌀했던 파리와는 달리 바르셀로나는 반팔에 가벼운 점퍼 하나만 입어도 될 정도로 제법 따스했다. Espanya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큰 분수대 하나가 보인다. 저 분수가 오늘 분수쇼를 하는 그 분수인가 보다.
나와 장섭이는 분수대 옆에 있는 계단에 걸터앉아 분수쇼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분수쇼를 기다리면서 그간 있었던 서로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잠시 장섭이를 소개하자면.... 집은 부산이고 여행에 오게된 가장 큰 이유는 축구 직관이었다. 장섭이는 레알 마드리드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제 (4월 2일) 열린 엘 클라시코 경기를 캄프 누에서 직접 관전했다고 한다. 나는 분수쇼를 기다리면서 장섭이한테 부럽다는 말만 10번 넘게 했다. 호날두와 메시를 한 번에 봤다니... 그리고 파리에선 챔피언스리그 8강 경기 (파리 생제르맹 vs 맨체스터 시티), 런던으로 넘어가서 토트넘 경기를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우디 건축물을 보고싶어서 바르셀로나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 가우디 투어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장섭이가...
"행님. 저도 내일 가우디 투어 가는데요."
"진짜? 가이드 회사는 어디인데? 유로 자전거 나라?"
"네."
"그래? 나도 유로 자전거 나라 투어 신청했어. 혹시 가우디 집중 투어야?"
"네."
"오!! 잘 됐다!!"
그리고 두 남자의 대화는 끝이 났다. 원래 남자 둘이 있으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 정도로 얘기했으면 슬슬 분수쇼가 시작되야 하는데, 분수쇼는 시작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배고프고 졸려서 슬슬 짜증이 난 나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분수쇼 하는 거 맞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I don't know." 하긴 쟤네들도 여기 처음 온 관광객인데 알 리가 없지. 한국이었으면 언제 분수쇼를 한다고 안내 방송을 하는데, 여긴 그런 것도 없다.
기약없는 기다림은 계속되고, 슬슬 분수쇼에 가보라고 내보낸 사장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나 오늘 사장님한테 낚인거 아냐? 왜 분수쇼는 시작할 생각을 안해? 이제 곧 10시 다 되가는데...'
옆에 있는 장섭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행님, 10분만 더 기다려봐요."라고 말한다.
'그래 딱 10분. 10분만 참아보자. 10분만 참아보고 분수대에 물이 안 나오면 밥 먹으러 가야지.'
그리고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다리기로 한 10분이 지났는데도 분수쇼는 시작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물 소리가 난다. 분수대에서 물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나와 장섭이는 떠나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켰다.
물이 나오고, 그 아래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음악이 나온다.
첫 곡으로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Emotion이 흘러 나왔다. 그 뒤엔 경쾌한 Queen 음악이 나온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 나온다. 그리고 물줄기의 리듬과 함께 나도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오길 잘했네. 오길 잘했어. 분수 장난 아니네. 사장님이 나를 내보낸 이유가 다 있었어. 사장님 감사합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 사장님한테 항의할 기세였는데... 분수쇼 한 번 보더니 사람이 이렇게 확 달라진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었다.
"행님. 옆에 한 번 보세요." 장섭이가 나를 부른다.
옆을 돌아보니 우리가 앉은 계단 옆에도 물줄기가 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그냥 화단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뒤에도 분수가 있었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시작된 분수가 저 뒤편 카탈루냐 미술관까지 이어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로 카탈루냐 미술관이 있는 언덕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어떤 양아치 같은 놈이 장섭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길은 굉장히 넓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어깨를 부딪힐 곳은 아닌데 말이다.
"장섭아. 니 뭐 털린거 없어? 주머니 한 번 확인해봐."
"네. 형님. 폰이랑 지갑은 다 있네요."
그 녀석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 순간 우리는 그 녀석이 소매치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바르셀로나 소매치기를 몬주익 분수쇼에서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잠깐의 언짢음을 뒤로 한 채, 카탈루냐 미술관 아래에 펼쳐진 분수를 보러 힘차게 올라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고, 몇몇 연인들은 난간에 걸터 앉아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누런 조명에 비친 카탈루냐 미술관을 보며 내가 진짜 바르셀로나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수많은 분수들을 보면서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바르셀로나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분수쇼를 다 본 후 우리는 햄버거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온 우리를 보며 사장님이 "분수쇼 어땠어요?"라고 물으시길래 "좋았어요! 가길 잘했어요." 라고 나는 힘있게 대답했다.
"왜 햄버거를 먹어요? 저녁 맛있는거 좀 먹지..."
"감기 걸린 것 같은데... 여기 꿀물차 마실 수 있으니까 물 끓여서 챙겨 먹어요."라며 커피 포트에 물을 받아 끓여주신다.
사장님의 이 말과 행동 덕분에 체크인 할 때 다소 멀게만 느껴졌던 사장님과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