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그 첫째날 저녁 이야기
내 방은 2층에 있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2층까지 올라가느라 고생을 좀 했다.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눈에 띈 것은 침대마다 설치된 커튼이었다. 다인실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사장님이 설치하신 것 같았다.
짐을 내려놓고 매니저를 만나러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엔 다른 게스트 친구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매니저는 런던언니 생활에 필요한 안내 사항들을 알려줬다. 그리고 사장님이 직접 그리신 지도가 있으니 참고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숙소에서 수건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틀에 한 번 수건을 교체해준다는 것이었다. 여행 다니면서 수건에 냄새나기 시작하면 찝찝했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런던언니 민박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호스텔은 수건 이용료를 받는데 말이다.
빨래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런던언니는 월, 수, 금요일에 빨래를 한다고 한다. 빨랫감이 너무 많지만 않다면 빨래에 대한 비용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숙소엔 다양한 차 종류들이 있고, 마시고 싶을 땐 언제든 마셔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냉장고엔 냉동시킨 밥이 있으니 저녁 때 라면과 같이 먹으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컵라면도 있고, 봉지 신라면도 있었다. 신라면은 11시 이후엔 끓여먹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재밌는 사연이 있었다.
런던언니 민박집에 있는 봉지라면은 수출용 신라면이다. 수출용 신라면은 한국에서 유통되는 신라면보다 스프 냄새가 훨씬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라면을 끓이면 스프 냄새 때문에 기침을 심하게 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라면을 끓여먹고 싶으면 되도록이면 일찍 끓여 먹고 환기를 시켜달라는 뜻이었다.
매니저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갈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 꺼냈다.
"저... 매니저님. 제가 아직 파운드 환전을 못했는데요. 남은 방 값은 내일 환전해서 드리면 안될까요?"
숙박비는 체크인 할 때 지불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나는 무거운 캐리어를 짊어지고 정신없이 다니다보니 환전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매니저가 간절함과 피곤에 쩔어있는 눈빛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일 꼭 달라고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런던에서 환율이 가장 좋은 환전소나 찾아봐야지...
좀 지나니까 저녁시간이 됐다. 내가 위에서 내 짐을 정리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 아까 식당에 있던 그 친구들은 밖에서 피쉬앤 칩스를 사서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식당에 있던 친구들 중 가장 막내인 재혁이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했고, 나는 본의 아니게 무임승차를 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까 하지 못했던 통성명을 하기 시작했다.
신영, 다정, 재혁... 런던언니 민박집에 온지 이틀째라고 한다.
신영이와 다정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다. 그리고 다정이와 재혁이는 남매 사이다. 런던 근교 브라이튼에서 유학 중인 재혁이는 easter holiday 기간에 유럽 여행 중인 신영이와 다정이를 만나기 위해 런던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런던은 신영이와 다정이의 유럽 마지막 도시였다.
밥을 먹다가 내일 어디갈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틈바구니 가운데 매니저의 런던 소개가 시작된다. 주말에 여는 여러 마켓이야기, 피커딜리 서커스에서 가면 좋은 가게들 등등... 그 중 가장 솔깃했던 이야기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였다.
애프터눈 티는 오후 3~4시에 영국인이 갖는 티 타임을 의미한다. 매니저는 애프터 눈 티를 즐기고 싶다면 오후 2시쯤에 Wallace Collection을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그 이유는 Wallace Collection에선 애프터 눈 티 뿐만 아니라 화려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 감상을 좋아하는 나는 설명을 듣고 나서 당장 내일이라도 Wallace Collection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신영, 다정, 재혁 이 세 친구들도 내일 Wallace Collection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환전. 나는 매니저에게 런던에서 환전율이 가장 좋은 환전소가 어디인지 물어봤다. 답은 Thomas Exchange Global이었다. 런던에는 Thomas Exchange Global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빅토리아에 다른 한 곳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환전율이 가장 좋다는 점 외에도 Thomas Exchange Global의 장점은 그 곳에서 한국 돈도 환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국 돈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돈을 환전할 수 있어서 체코 코루나도 환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을 먹고 부엌에 있는 드립 커피까지 내려서 마시다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 아침 조식과 Wallace Collection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