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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n 03. 2022

<가자의 기도>

가자지구에 평화를

        

나의 이웃에게 고요를 주세요

안녕을 비는 인사 사이 총성이 스며들고

제 모습 잃은 생명이 절규합니다

지루하고 잔잔한 하루가 그립습니다 

나의 나라에게 하늘을 주세요

흩뿌려진 포탄에 삶의 부스러기만 남아

흙바닥에서 먹구름이 피어오릅니다

우리의 하늘은 땅에서 혼돈하게 부서집니다
     

나의 밤에게 어둠을 주세요

달빛에 의지할 새 없이 터지는 불꽃이

놀란 젖먹이를 달래는 어미의 눈을 멀게 합니다

망가진 어둠은 온전한 어둠보다 더 어둡습니다     


나의 아이에게 꿈을 주세요

야윈 손에 인형을 꼭 쥔 채 잠이 든 아이는

형제를 죽인 자에게 돌 던질 손아귀 갖기를 꿈꿉니다

내일을 가장 바라면서도 바라지 못합니다     


나에게 목소리를 주세요

그럼에도 살아가는 우리의 노래가

장벽을 넘어 저들의 마음에 울려 퍼지게 해 주세요

어리석은 총구에도 꽃이 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모든 것인 이 평화의 마을은

추악한 믿음과 순수한 욕심이 섞여 찬란하면서도 끔찍합니다

활기찬 자는 총을 들고 느른한 자는 종을 듭니다

서로의 생을 파괴해 승리를 쟁취한 우리는 스스로 깨어날 수 없습니다     


자유를 소망하는 것이 고통인 이 평화의 마을은

맨발로 건물 잔해를 헤쳐 키우던 물고기를 찾고

벽돌에 깔린 책더미 위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지난밤 고꾸라진 철골에 빨래 마친 옷을 널며

무성한 비극에도 일상을 되찾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구김살 없는 축복으로  하루가 우리가 아닌 당신의 뜻으로 일렁이게  주세요     



이 시로 시작된 기획 프로젝트 <누구 한 사람도 평화의 서사시를 노래하지 못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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