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깊게 그러나 짧은 시간에 고른 방법으로 죽음 앞에 섰다. 그는 겁이 많다. 중요한 순간 두려움이 온몸을 덮칠 것이라고 어렴풋이 상상한다.
그는 분명 죽기 직전 무너질 것이다.
추억이 유일한 생명줄 인양 간신히 붙잡고, 추억은 그를 꽉 잡아 올린다. 두려운 것을 알아차렸을 땐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는 후회에 사무쳐 시퍼런 멍이 든 팔을 벅벅 문질러야 한다. 생명은 이미 그를 애절함과 질책으로 감싸 안아버렸다. 그는 결국 생명 속에서 죽는다.
되새겨보니 모든 순간이 그를 말렸다. 그는 누군가의 꿈에 끌려가 끔찍함을 경험했다. 진짜 그 자신으로 돌아온 순간 그는 태어난 후 섭취한 것들을 모두 토해냈다. 그의 몸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치 심장도 토해낸 듯 아무런 박자감도, 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꿈에서 깬 그는 기지개를 켜는 대신 계단을 올랐다. 몇 번이나 계단 손잡이에 머리를 박았다. 해를 볼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빛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손잡이를 더듬거리며 기어가듯 올랐다. 힘 빠진 손으로 느낀 벽은 뭉친 페인트 자국으로 오돌토돌했다. 그가 고개를 들자 흘러가는 구름이 해를 가렸다. 마지막까지 그는 빛을 볼 수 없었다.
공포만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건 그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어느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이 되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가시 박힌 방망이가 되었다. 원하지 않아도 방망이는 휘둘러질 것이고 사람들은 분명 저 가시에 찔릴 것이다.
그래, 가시 위에 몸을 굴리는 건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