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감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감정이 무엇이기에 나의 삶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까?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인간을 이성의 동물로 보는 모더니즘과 감정의 동물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있다. 하지만 감정의 동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만큼 감정이 인간의 생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은 본능적이며 학습이나 경험으로 형성될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표현된다.
나는 과거 선조들의 전통과 민족은 같은 사회이면서도, 현재는 음극과 양극처럼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살아 봤다. 나는 북한 사회에서 고등 교육을 받았고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고 있다. 후자 사회에서는 적응으로 교육과 경험을 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 과정에서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이성(理性)은 배우면 되었다.
감정도 그러할까? 이성만을 배우면 인간의 삶이 정답으로 될까?
우리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삶이 어떻게 되기를 원할까? 보통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행복한 인간의 삶, 인간의 삶은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인간의 삶을 감정의 어휘와 연계시키려고 한다. 요즘은 개인의 삶이 문화 예술의 컨텐츠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태어난 삶, 지금의 삶,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잘 보내겠는지에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가는지가 삶의 목표가 된듯하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눈을 보면서 첫사랑을 생각하는 것처럼, 길가의 피어있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외롭다고 표현되는 것처럼 감정은 소소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과 삶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감정은 인간 존재의 핵심 요소로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은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인간이 누구인지 정의하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다리 역할을 한다.
나에게 감정은 북한에서는 생존의 도구였고, 남한에서는 적응의 도구가 된다. 생존의 도구로 감정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다양한 감정을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다. 제한되고 억제된 감정에서 김 씨 삼부자와 당에는 긍정적 감정을 쓰려고 하였고, 체제 유지를 위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정적 감정을 더 사용하였다. 감정의 위선이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감정은 적응의 도구, 이 사회에서 정착하려는 동기 부여와 함께 온전한 나를 위해 살아가고 성장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감정이 잘 사용되면 남한 사회가 편한 사회로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될 것이고, 감정이 잘 사용되지 못하면 북한 사회를 ‘안전지대’로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등 ‘독재체제의 향수병’에 걸릴 것이다.
나의 감정 요소로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은 당면 과제이지만, 장기적인 과제는 내 삶을 어떻게 잘, 행복하게 보내는가인 듯싶다. 나의 삶에서 감정의 역할은 두려움은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경고하는, 기쁨은 긍정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만들도록, 슬픔은 상실을 받아들이고 회복 하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감, 사랑, 우정, 신뢰라는 감정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잘 유지하도록 하여 삶의 의미와 만족감 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고 기쁨과 행복으로 삶을 살아 가는데 중요하고 필수적인 역할을 감정이 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자녀에게도 훌륭한 ‘자산’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