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로 감정이 없는 '외계인'이었을까?

1-1.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by 소수지

나는 정말로 감정이 없는 ‘외계인’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나를 보면서 말한다. ‘뭐? 어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나 저기가 이 세상 하늘 아래 인간의 본능은 같다는 얘기,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인간은 다 똑같다는 얘기, 사람 사는 곳이라서 너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그런 사건이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는 듯, 그래서 조금 위안이 되라고 말해주는 듯.

정작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가치관과 특별한 감정표현으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다름과 특별함을 거부하기도 하고 ‘외계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외면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남한에 와서 첫 회사에 입사한 곳이 공무원들이 일하는 기초자치단체였다. 북한 주민을 공직사회에 진입시키려는 정부 정책에 의해 제한경쟁으로 첫 회사를 기초자치단체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낯설다. 시스템 문제는 배우면 되지만, 더 힘든 것은 함께 일을 하는 사람과의 문제 즉 직장 문화이다. 며칠 동안 함께 일하던 상사는 나를 보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 ‘외계인’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는 ‘외계인’이 무엇인지 몰랐으니 그냥 덤덤히 듣기만 했다. 한자로 따져보면 ‘외계인’에서 ‘인’자는 ‘사람 인 人’이다. 나는 자신을 ‘외계인’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사는 사회라고 인간의 감정, 느낌도 같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 본능적인 욕구는 있지만,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변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얘기이다.

하지만, 어릴 적 배운 감정을 성인이 되어도 느끼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긍정적인 감정들이다. 고마움, 감사, 기쁨, 희망, 기대, 책임, 행복 등의 감정들은 느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느끼지 못하도록 단어 자체를 왜곡하여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다양한 개인의 감정, 인간의 감정들을 왜곡하여 김 씨 삼부자의 숭배 정신과 체제 유지에 활용하였다. 교육을 통해 배운 거짓 감정들이지만, 불쌍함과 안쓰러움, 부끄러움 등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교육할 수가 없었다.

남북한 용어 차이로 하여 오해가 많다. 그런데 감정 어휘로 인한 오해는 더 마음을 상하게 한다. 나는 무엇이나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틀렸다’라는 어휘보다도 ‘다르다’라는 어휘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북한의 감정 어휘만큼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강하게 부정하고 싶다.

남한에 와서 어려운 것이 문화이다. 감정표현에 따른 문화이다. 어휘 하나하나가 감정이 생기고, 행동과 말에 감정의 표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문화에서 동질성을 찾아보지만, 현재 현대사회에서 남북한의 문화는 달랐다. 문화가 다르니 감정을 표현하는 형식도 다르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도 다른 방식이었다. ‘우리,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등의 어휘는 남북한주민이 일반적으로 표현이 같다. 하지만 ‘도전하다, 미안하다, 자유, 기분이 좋다.’ 등의 어휘는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고 오해도 생겼다. 오해가 생기니 감정이 이입되었고 갈등이 생겼다. ‘다음에 만나 식사 한번 합시다.’라는 일반적으로 ‘오늘 만난 것이 즐거웠으니 다시 또 만나면 이야기합시다.’의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음에 만나 식사 한번 합시다.’는 약속을 잡고 식사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면서 남한 사람들은 약속을 하고 왜 약속 시간은 안 잡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 약속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남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는 오해 아닌 오해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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