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감정왜곡의 새로고침
‘괜찮다.’ _ 지혜가 필요한 감정 어휘
남한의 ‘괜찮다’가 북한의 ‘일없다’라고 동등하게 쓰인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감정표현 어휘를 ‘새로고침’ 해야 한다. ‘괜찮다’와 ‘일없다’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남한의 새로운 감정 어휘인 ‘괜찮다’를 새로 배워야 했다. 감정까지도.
어느 날, 그날도 마찬가지로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에 있는 아들과 딸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밥 먹자!”
“엄마, 나 괜찮아요!” 방문이 닫힌 딸의 방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아들은 어슬렁어슬렁 방문을 열고 나온다. 그러면서 오늘 저녁 메뉴는 무엇인가 물어본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
완성된 저녁상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딸이 아직도 식탁에 없었다. 여느 때처럼 행동이 조금 느린 딸이니 이해했다. 그래도 미리미리 준비할 때부터 밥 먹자고 소리쳤는데.
“딸, 밥 먹자니깐, 얼른 나와!, 국이 다 식는다.”
나는 조금 억양을 높여 소리쳤다.
시끄러웠던지 아들이 말을 해준다. “엄마, 누나 괜찮대요!”
“엄마, 나 괜찮다니깐요!” 딸이 방에서 소리쳤다.
“그러니깐, 어서 나오라고!”
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나 하교하면서 친구들과 떡볶이 먹어서. 지금은 배고프지 않아요.”
“그래서? 안 먹겠다는 거니?”
“네에. 괜찮아요!” 딸이 대답한다.
나는 조금 놀랐다. ‘괜찮다.’라면서 왜 안 먹는지?
나는 ‘괜찮다’라는 말은 ‘일 없으니 먹겠습니다.’라고 이해했다. 헛갈렸다.
아들과 딸에게 물었다.
“괜찮다는 말은 먹겠다는 거니? 안 먹겠다는 거니?
내가 밥 먹자고 물어보면 답변은 먹는다, 안 먹는다고 하면 될걸, 왜 엉뚱하게 괜찮다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아들이 담담하게 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대답한다. “괜찮다는 거절의 의미도 있어요. 상처받을까 봐 괜찮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도 이해가 안 되었다. 왜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괜찮다’를 사용하는지.
남한의 문화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내가 아직 ‘괜찮다.’라는 말을 잘 이해 못 했어. 다음부터는 밥을 먹겠다, 안 먹겠다고 대답해 줘!”
...
도대체 ‘괜찮다’라는 말의 의미는 몇 가지인지?
아리송한 언어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괜찮아’라는 어휘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다. 북한의 용어인 ‘일 없다’와 동일한 어휘로 이해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괜찮아’라는 어휘는 위로와 용서, 상태가 좋다, 허용, 가능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물건의 상태가 좋다는 의미로써도 사용되지만, 감정에서 ‘괜찮다’라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북한처럼 이분법적으로 ‘없다, 있다’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딸이 나에게 ‘밥을 안 먹는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수고스럽게 밥을 한 엄마를 배려해서, 엄마가 한 밥이 맛없어서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일(문제)로 하여 못 먹는다는 미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괜찮아’라는 어휘는 좋다는 뜻일까? 우리는 어떤 물건이나 대상에 대해서 ‘여기 처음으로 오는 수영장인데. 괜찮은데?!’, ‘난 이게 괜찮아’ 등 좋음을 표현한다. 이 대답은 ‘어때?’라는 물음에 적당할 것이다. 하지만, 다 좋아서 ‘괜찮아’라는 어휘를 표현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괜찮아는 그래도 조금은 긍정적인 부분으로 더 받아들이기에, 나는 아직도 인간관계 생활에서 오해도 가져온다. 괜찮다고 하니, 정말 일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더 사고할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다.
‘괜찮다’라는 감정 어휘가 ‘좋다.’와 ‘나쁘다.’, ‘없다.’와 ‘이쁘다.’ 등 이분법적으로 답이 명확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것도 좋지만,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진짜 괜찮은지를 판단해야 하기가 정말 어렵다.
‘괜찮아’ 정말 지혜가 필요한 감정 어휘이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