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_촛불이 계속 타오르는 것은 촛물때문이 아닐까?

2-4. 감정왜곡의 새로고침

by 소수지

과거의 감정들이 지금 보면 에피소드이지만, 그때에는 오해와 함께 자신을 혐오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없는 나’에서 ‘괜찮은 나’로 산다는 것은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었던 감정들을 정리하는 것과 왜곡된 감정 어휘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슬픔 _ 촛불이 계속 타오르는 것은 촛물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가 ‘총량의 법칙’에 대해 얘기해준 기억이 있다. 슬픔의 눈물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 듯하다. 북한은 주체사상 우월주의, 조선 민족 제일주의로 하여 ‘내 나라가 제일로 좋아’,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노래를 김 씨 삼부자가 있는 북한 사회가 좋다고 찬양한다. 이런 ‘살기 좋은 나라, 부럼 없는 나라’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반역적인 행동이다. 가족이나 개인의 슬픔보다도 집단이나 김 씨 삼부자에 대한 충성의 눈물은 충성과 애국심으로 표현된다. 없는 눈물과 슬픔으로 충성심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다. 또한 개인적인 슬픔,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을 자기 내면적으로 처리한다는 것도 고통스럽다.

나는 어릴 적 부모가 우는 모습을 경험한 적이 있다. 2004년, 부모님과 가만히 숨어서 본 남한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다.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인데, 마지막에 배우 한정서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는 회차에서이다. 부모님이 훌쩍훌쩍 우시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또 무슨 ‘눈물’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녀의 사랑은 ‘슬픔’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런 본능적인 슬픔이 반응한다는 것은 김 씨 삼부자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없었다. 김 씨 삼부자가 아무리 통제하여도 인간의 감정적 상태인 슬픔을 막지 못했다.

그때 부모님의 슬픔의 눈물은 단순히 남녀 사랑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참고 참았던 슬픔이 헤아릴 수 없이 터져 나왔던 것일까?

부정적 감정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통제하고 억제해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된다. 스트레스, 불안 등으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북한에는 스트레스라는 용어가 없다. ‘화병’은 있지만, 일반적인 어휘가 아니다. ‘사춘기’, ‘스트레스’라는 어휘도 없다. ‘스트레스’가 없는 사회가 분명히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은 초가 타면서 흘러내리는 촛물을 눈물로 표현할 때가 있다. 초가 탈 때에는 촛물(촛농, 기름)이 있어야 한다. 촛물이 없으면 심지는 금방 타버리고 만다. 심지가 지탱할 수 있는 이유가 촛물 때문이다. 인간도 심지와 촛물처럼,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함께 반응된다. 균형을 잘 맞추면 초는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잘 연소 된다.

나는 남한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긍정적인 감정인 사랑에도 부정적인 감정인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 두 감정이 모두 공존하고 있었다. 인간은 슬픔으로 하여 현재의 마음 상태를 알게 한다. 슬픔을 부정적 감정이라고 하여 억누르지 말고 부정하려고 하지도 말고, 현재의 감정 상태인 슬픔에 솔직해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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