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없으면 나의 감정도 없다.

2-3.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은 없다.

by 소수지

인간의 감정에서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하여 좋은 감정이고,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하여 나쁜 감정은 없다. 감정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있으나 ‘내 감정’이 없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나’가 없으면 나의 감정도 없다.
북한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주어가 없다 .주어는 문장에서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말이다. 주어가 없다는 것은 주체가 없다는 말이다.

북한에서 주체가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북한 주민이 지녀야 하는 사상 정신이 바로 ‘주체사상’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라는 주체사상이다.

여기에서 주체는 누구일까?

‘자기 자신’이 주체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자기 자신’은 김 씨 삼부자이다. 이 ‘주체사상’을 ‘김일성, 김정일 주의’로 내세워 ‘인간철학’으로 만들었으며, 이 철학만이 인간의 사상을 개조하고 혁명화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의 주체사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체사상’으로 북한은 북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전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북한 주민은 ‘내’가 없기에 감정 또한 ‘내’ 감정을 가질 수 없으며, 철저히 학습된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집단과 김 씨 삼부자에 종속되어 그 ‘집단과 김 씨 삼부자’의 감정이 곧 개인의 감정으로 되었다.

2004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신문과 소설, 수필, 교양서적을 분리하여 북한 사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명사를 살펴봤다고 한다. ‘생활, 놈, 건설, 동무, 집, 통일, 통일, 동지, 사상, 요구, 민족, 수령, 전투, 전사, 주체’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모두 사회나 집단을 위한, 김 씨 삼부자를 위한 명사들로 구성이 되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제일 힘든 것이 바로 ‘느낀 점’을 쓰는 것이다. 책을 읽은 것이나 공부 배운 것 중에서 느낀 점을 작성하는 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 힘들었다. ‘느낀 점’에 ‘배운 점’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행동에서의 배운 점이다. 그 행동은 개인 사고의 행동이 아닌 집단이나 김 씨 삼부자, 당의 방침에 따른 행동이다. 수필 하나에도 ‘나’가 없다. ‘나’는 분명히 있으나, 그 나는 김 씨 삼부자에 따른 ‘나’였다. 그렇게 북한에서 ‘나’는 없었고, 당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생활하는 ‘맹종맹동’한 삶을 살아간 것에 가슴 아프고 억울하다. 그렇다고 하여 원망하기보다는 현재는 여기에 있고, 여기에서 온전한 나를 위한 희망을 품고 살고 있다.

남한 사회에서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눈물, 슬픔, 놀람, 두근거림, 웃음’ 등의 감정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기에 느낄 수는 있다. ‘행복, 배려, 자유, 충만, 용기, 용서, 개성, 신뢰, 공감, 만끽, 풍요, 사랑’ 등은 내가 못 느낀 감정이다. ‘감사, 미안, 분노’ 같은 감정은 내가 느꼈지만, 왜곡된 표현이었다.

나는 남한에 와서 하나원에서 사회 적응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 교육 내용에 ‘심성 수련’ 활동이 있었다. ‘심성 수련’이라는 용어도 낯설지만, 이 수업에 모두 울었고 그 뒤로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웃었다. 진로 교육으로 성격유형검사를 받았다. 나는 재미있었다. 나의 성격과 적성을 알아가면서 다양한 어휘들을 습득하게 되었다. 또 왜곡된 감정표현 어휘와 생소한 어휘를 사전적 의미로 찾아봤다. 그리고 어떤 때에 그런 어휘를 사용하는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관찰하였다. 반복된 과정에서 나는 차츰 감정을 이해되었고, 감정표현에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감정에 따라 나의 감정도 좌지우지되었다. 내가 없으면 내 감정도 없었다. 관계에서 나의 감정이 없으면 나도 없었다. 분노를 느끼는 것도, 슬픔을 느끼는 것도 주체는 나였다. 상대방은 왜 분노를 느끼는지, 슬픔을 표현하고 화를 내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 감정도 다른 상대방도 함께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었다. 이런 ‘나’의 분노와 슬픔은 감정의 주체자이고 원인 제공자인 ‘나’를 괴롭혔다. 그 괴롭힘을 잘 다스리는 주체도 ‘나’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주인, 감정의 주체는 바로 ‘나’이다. 그러니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도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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