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감정표현 왜곡으로 잘못된 내가 된다.
인간에게서 감정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억지로 맞춘다는 것이다. 과거의 감정 왜곡이 현재 사회의 모순덩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억지로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표현이 서툰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왜곡된 감정 어휘란 무엇일까?
인간의 감정은 사고로 하여 인지되고 감정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사고와 인지 방식에서 어떤 교육을 받는가에 따라 감정 표현도 왜곡된다.
예를 들어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이게 모두 내 잘못이야’라고 생각하면 부정적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을 왜곡한다면 감정 표현이 왜곡되고 반복된 왜곡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이러한 왜곡은 개인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 환경이 중요하다. 어릴 적 부모가 어떤 교육을 주고, 어떤 정서적 환경을 마련해주는가도 중요하다. 또 사회적 및 문화적 요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표현되기도 한다.
어떤 감정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이라는 판단은 그 사회나 문화에서 어떻게 감정을 다루는지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체사상과 김 씨 삼부자(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숭배 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사상과 업적을 중심으로 정치와 사회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국어, 수학, 음악, 체육에도 사회주의 이념과 수령 숭배, 충성으로 세뇌 교육을 받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보다도 김 씨 삼부자의 이름을 외워야 했고, 내 생일과 생파보다도 김 씨 삼부자의 생일을 외우고 생파를 축하해주어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북한의 집단주의와 유일한 체제를 통해 감시와 통제를 받았고, 정보의 자유, 알 권리, 표현의 자유 등 자유를 박탈당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인적인 성향과 가치관 형성이 아닌 김 씨 삼부자를 통한 집단주의에 종속이 되어야 했기에 인간의 삶 주체는 본인이 아닌 김 씨 삼부자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철저한 통제와 세뇌 교육으로 불만, 고통, 슬픔, 감사, 사랑, 희망 등 감정들을 왜곡하여 인식하였고 억제당했다. 틀에 박히고 정해진 사고에서 감정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행동이 어색하게 되었고, 남한에서는 오해도 받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에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그러면, 북한은 왜 왜곡된 감정 어휘를 교육했을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려는 압박감이 클수록 왜곡된 감정이 표현된다. 북한에서는 김 씨 삼부자의 체제 우월성을 보여주고 지속해서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줘야만 했다. 그 희망과 기대를 보여주려고 하려니 왜곡된 감정을 표현하도록 교육을 체계적으로 주었다. 북한에서 ‘위대, 존경, 친애, 장군, 어버이, 자애’ 등의 어휘는 일반인에게 표현할 수 없는 용어로 지정하였다. 김 씨 삼부자에게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통제하였고 복종하게 하였다. 그래서 북한 주민은 이와 같은 어휘의 중요성과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선택하여 감정을 배운 것이 아니기에, 당시 오해를 받을지라도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은 없다. 감정 자체는 왜곡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표현의 방법을 왜곡하여 배운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다. 그때 나는 선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