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인문학이다

건축사유 ㅣ 땅과 사람의 교감 11

by 정로각심

예전에 한 신문기사의 칼럼에 불편한 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축을 전공하는 한 기고자가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라는 타이틀로 글을 하나 올렸었다. 글의 핵심은 '건축의 대가 중에 인문학에 정통한 이는 없다.', '한국 건축계는 어설픈 인문학 과잉시대이다.', '지금 건축에 필요한 건 손재주(craftsmanship)이다.', '건축가가 모든 것을 다 안다(the architects know it all)는 태도는 우리의 지속가능해야 할 인조 환경에 쓰레기 하나 보탤 뿐이다.' 등의 내용이었다. 당시 이 글은 SNS에 공유되었고, 다수의 건축인들이 이 글에 대한 찬반의 의견을 두고 분분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 '건축은 인문학만은 아니다.'도 아니고, '건축은 기술학문이다.'도 아니고,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떠한 이유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그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건축가들은 인문학을 모른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기술공학인 건축을 어설픈 인문학으로 포장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근거가 타당한가? 이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인문학의 명확한 범주와 건축이 인문학이고자 할 때 건축가들이 갖추어야 할 인문학적 소양이 무엇이며, 그것은 건축가에게 없어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는 근거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며 그로 인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건축은 인문학을 벗어날 수 없음을 하나의 신념처럼 지켜온 나에게는 건축 실무자들의 이러한 마인드가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 건축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난처하기 짝이 없다. 당시 나의 의견을 급하게 정리하여 그의 주장에 반박했던 내용을 수정보완하였다. 나는 지금도 건축은 인문학이 기반되어야 하는 분야이며, 기술적 마인드만으로 대응하는 자세는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건축은 무엇인가? 인문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기술은 무엇인가? 건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개념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분명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는 생각은 함부로 할 수 없다. 아니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나만의 개인적 생각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혹시라도 글쓴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축가들이 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은 한 개인이지만 건축을 고민하고 있는 학자의 마인드와 현장에서 실무를 하고 있는 건축기술인의 마인드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현실적 입장에서 봐주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당장 인문학적 마인드로 무장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왜 건축이 인문학인가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과학기술과 손재주는 당연히 분리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의 산물이며,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또한 역사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반면 손재주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예술의 영역에서 다루어져 왔으며, 이는 인간 사고의 표현양식이며 인간을 위한 기술이다. 따라서 인본을 그 바탕함으로 볼 때, 그곳에는 인문학과 방법론을 배제할 수 없다. 기술(ars, 근대 이전에는 기술과 예술은 통일된 개념이었다.)은 예술의 근원이며,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과학기술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어원적인 논리보다 차라리 인문학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인문학이란 말 그대로 '자연과학에 대립되는 영역으로 인간의 가치 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언어·언어학·문학·역사·법률·철학·고고학·예술사·비평·예술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이 이에 포함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즉 인간을 위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인문학이다.

여기서 인문학이 자연과학과 대립된다고 해서 과학기술과 대립된다고는 생각하면 그것은 치명적 판단 오류이다. 자연과학과 대립된다는 것의 의미는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의 이분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인간의 사고에 의한 산물은 생산의 근본 원인인 형이상학의 틀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과학기술 또한 형이상학이 그 바탕이 되어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그들의 활동에 대한 제약을 벗어나고자 형이상학적 접근을 거부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공학도들이나 과학도들이 그들에 의한 산물을 형이상학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형이하학적 유물론으로 자신들을 합리화시킨다면, 결국 그들은 인간의 의지와 의식을 배제하는 또 다른 함정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과학기술도 인문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건축이 인문학이든, 과학기술이든 어느 분야이든 역사·예술·고고학· 예술사·비평·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즉 인문학적 범주를 벗어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이제 인문학과 과학기술은 완전히 반대의 개념이 될 수 없음이 더 뚜렷해졌다. 그래도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서로 융합할 수 없는 분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예를 들어주고 싶다.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과학기술자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학기술만을 평생 익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자 및 기업가가 되었는가? 그는 살아생전 수많은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빠지지 않고 했던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과학기술을 하는 사람들은 인문학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그 자신도 평생 동안 인문학과 사회학적 지식을 섭렵하여 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또한 미국의 메이저대학들에서는 특히 공학 쪽 신입생들에게는 의무적으로 인문학 서적 100선을 추천하여 졸업 때까지 다 읽도록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천문학자이자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과학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찰학과 윤리와 문화 등의 인문적 결합이 필수적임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더 있겠지만, 대표적 과학기술인인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굳이 과학기술이 인문학의 범주 밖에서 존재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고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처럼 과학기술 분야에서 인문학과의 관계성과 필요성이 강조되어 있는 시점에서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는 주장, 과연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을까 싶다. 수많은 건축의 대가들이 인문학을 모르고 대가가 되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건축 거장들의 예를 들어 그들의 인문학적 지식과 건축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예로 들어보고자 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인문학적 철학 세계를 운운하기보다, 그들의 인문학적 사고와 철학적 고뇌를 더 분명하게 해주는 몇 가지 근거를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에게 대가라 불리는 건축의 거장들,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해 건축을 하였는가? 국가인가? 자신의 명예인가? 아니면 돈인가?'


르꼬르뷔제는 기능주의 건축의 기초가 된 '근대건축 5원칙'을 마련하였고, 철저한 계획도시인 '빛나는 도시'를 계획하였다고 해서 그는 인문학을 무시한 철저한 건축기술인이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가 가장 중요시하였던 공간·빛·질서 등의 개념은 결국 사람을 위한 그의 건축철학이었다. 뿐만 아니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모태 예술로의 건축(The mother art is architecture.)'이라는 개념은 건축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는 포괄적인 인문적 실천임을 말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이들의 건축의 삶 전체를 관통하며 그들의 사상에 인문학적 사상이 뿌리내리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건축의 대가들은 그들만의 분명한 인문학적 기준만은 가지고 있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현대의 건축가들 특히 오늘날 우리의 땅에서 건축의 예술을 행위하는 이들은 과연 자신만의 인문학적 기준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있다면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라는 발상은 아예 불가능할 것이며, 없다면 건축가가 아닌 기능공이나 잡부에 불과할 것이다.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다면 아래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시기 바란다. 이는 내가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다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대가들 중에 인문학(인간)을 무시했던 이가 있는가?"

"인간의 근본을 모르고 건축 대가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손재주와 과학기술이 같은 것인가?"

"공간적 감동과 편의성, 지속가능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상상력이나 아이디어가 기술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건축을 너무 돈벌이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간을 근본으로 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 인문학이며 그 중심에 철학이 있다. 건축이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이야기하면 쓰레기학문이고 개똥철학인가? 건축이 기술(손재주)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발상, 결국 이는 건축은 인간을 무시한 기술만능이어야 한다는 사고인데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건축이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죄악'이라면, 건축이 기술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살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세상은 인문학 과잉시대가 아니라, 세상에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인문학의 틀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 필요가 있다. '건축은 인문학이다'라는 명제가 그렇게 불편하다면, '건축은 인문학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어떤가?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기술의 뿌리는 결국 '인간'이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은 '대립'이 아닌 '포섭'의 관계이다.", "거장의 건축은 '인간'이 먼저였다." 등으로 정리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