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0
건축은 단순한 기술학문이 아니다. 건축은 철학을 품고, 사상을 이야기하고, 삶에 봉사한다. 이러한 건축이 실무 기술만 배운다고 가능한 것인가? 이론에 어느 정도 충실했던 과거의 건축교육에서는 실무교육이 다소 부족하여도 대부분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여 현장에서 실무다운 실무를 배우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사회는 현실이기에 회사에서는 실무능력이 바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회는 학교에서 취업을 위한 실무에 필요한 기술을 완벽하게 배워서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제값을 다하지 못하는 능력 없는 신입에 고문관으로 찍혀 버린다. 학교에서 실무적인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학생들은 사회에서는 싫어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지금의 우리 대학에서의 건축교육은 바로 현장에 투입될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이는 학교에서의 건축교육을 18,19세기 유럽의 건축교육처럼 도제식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는가 하면, 어떤 학교는 5년 동안 기술교육만 중점적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 건축사무소들의 분위기는 건축과 학생들의 취업난을 기술교육에 충실하지 못한 학교교육을 탓하면서 기술적 인재의 부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자기중심적인 주장과 사고는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왜냐면 지금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취업만 되면 된다는 경제논리와 실적달성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은 취업만이 교육의 목표이고, 취업률만이 대학의 가치기준이 되어 있다. 지금 우리의 대학교육은 학문의 깊이야 어떻든 말든, 취업실적이 제일 중요하다. 때문에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숙련된 기능공을 양성하고자 기를 쓰고 있다. 건축분야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건축교육이 더 심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누구나 실감하는 일일 것이다. 사실상, 지금 대학에서의 건축교육은 '생각하는 건축인'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말 잘 듣는 기능공'을 길러내는 전문기술교육이 되어 버렸다.
일부 대학의 건축학과에서는 학문의 요람에서 실무중심대학을 표방하며, 기초적 또는 학문적 이론을 무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래서 모든 교수, 외래교수를 포함하여 모두가 실무교수로 채워지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철저한 기능공을 키워낼 생각인가? 그럴 바에 전문대학이나 기능대학이라고 하지, 왜 역사 깊은 4년제 대학이라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대학에서는 교육의 질이 아니라 취업의 양이 강조되어, 배웠다는 교수들조차 지식이 아니라 취업률이라는 목표로 다들 엉뚱한 짓만 하고 있다. 연구실적 보다 입학률과 취업률이 그들의 실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쩌면 사회가 건축가들을 설계사라고 부른다 해서 굳이 예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창조적 사고를 하여야 하는 건축가 지망생들에게 한낮 책상에 앉아 단순 반복 작업만 시키고 있으니, 그리고 학교에서는 건축 전공서적 이외의 교양서적 한 권 보는 학생 한 명 보이지 않으니, 누가 창조적 디자인을 고민해 낼 수 있겠는가? 나아가 누가 창조적 디자이너라 불리겠는가? 그들은 단순작업에 익숙한 기능공일 뿐이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 건축디자인을 하면서 표절을 하던 카피를 하던 우리는 그들을 욕할 수 없다. 원죄는 철학과 사상을 배제한 건축교육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건축학과의 대부분의 외래교수는 건축사이다. 이들은 자신의 업과 연관되어 어떡해서든 학교 강의를 하고자 애를 쓴다. 그 이유는 굳이 자세하게 설명을 안 해도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건축행위의 주체와 건축공모의 심사자가 한울타리에서 살게 되면 뭔가 작은 이득이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줄을 서서 기다린단다. 교육을 위해 교육의 장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나의 영광을 위해 교육의 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교육은 실무중심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현상은 실무중심을 내세우는 대학들도 반긴다. 학생들을 인턴이나, 취업으로 바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실무자들 즉, 건축사무소 소장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뛰어난 실무현장에서 익힌 훌륭한 경험으로 실무교육을 하더라도 그것은 기술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초적이고 깊이 있는 학문적 이론은 누가 가르칠 것인가? 물론 실무를 가르치는 이들 중 분명 폭넓고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분들도 있다. 그리고 인문학적 사회학적 통찰로 무장하여 자신의 뚜렷한 철학을 가진 이들도 많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소수에 불과할 뿐, 대부분은 지나치게 편협한 실무지식만 들고 교육현장에 나서는 것 같다. 역사보다 기술을 중시하고, 인간보다 건물을 중시하고, 철학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실무교수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우리들의 건축교육현장에서는 실무교육도 중요하지만 이론교육이 더 중요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인간을 위한 것이기에 인간의 요구를 배우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사회학을 반드시 습득해야 한다. 지금 교육현장에 교육자로 나선 실무자들이 건축의 기초적 전문적 이론에 완벽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론에 충실한 교육자들이 지금의 교육현장에선 절실히 필요하다. 건축은 공시적 예술이며, 통시적 역사이며, 총체적 철학이다.
건축의 교육은 개선되어야 한다. 아니 개혁되어야 한다. 학생들을 위대한 건축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위대한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