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학문적 융합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09

by 정로각심

예전부터 우리 건축의 교육 방식에 대한 회의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었다. 특히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가고 있던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강단을 떠난 지금은 그때만큼의 의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건축교육의 변화가 극적으로 일어난 것도 아니니 다시 한번 고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축, 당연히 전문성과 기술성에 대한 교육이 절대적인 분야이지만, 건축이 기술뿐만 아니라, 예술 및 이론 학문의 틀에서 교육되고 있는 이상, 지금의 건축교육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지방 건축교육의 현장은 전문성과 기능성 중심의 실기위주의 교육에 몰입되어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21세기 들어 모든 학문 분야에서 전문기술형 인재보다 유연한 사고의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의 건축교육은 제대로 적응을 하고 있는가가 궁금하다.


지금의 건축교육은 융합적 교육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 수준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단계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다. 그나마 디지털 분야와 결합하여 BIM 등의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이 또한 전문기술형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그래서 자주 생각 하는 것이 교과목의 다양성을 통한 교육의 확장인데, 현재의 대학시스템에서는 교과목의 확대가 쉽지 않다. 졸업학점이나 해당 전공의 교수 확보 등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학문분야 간 융합이다. 쉽게 말해 기존의 개설된 타 분야 학과의 커리큘럼을 공유하는 방법이다. 이 융합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특히 미래형 인간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학문 간의 융합이 아주 효과적인 개념이다. 공학과 인문학, 기술과 예술, 기능과 사람 등등 현재 대학에서 이루어 개별학과의 교류와 융합이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AI 분야는 거의 모든 학문과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건축분야에서 다소 부진한 느낌이다. 건축은 인간의 창조성이 특히 강조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적정선에서의 합의(AI에게 명령을 얼마나 잘 주입시키는가도 건축가의 능력이라는)를 이루어 내려는 시도도 있다.




최근 대학교육에 있어 확고한 신교육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학문 간 융합’, 사회는 학문 간 융합교육에 의해 강력한 위기 대응능력으로 무장된 신세대 인재들을 요구하고 있다. 또 그들을 길러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일부대학에서는 국가적 패러다임을 이끌어 나갈 인재 양성의 목적으로 IT분야, 에너지분야, 그리고 AI분야에 까지 확대되어 학문 간 융합교육시스템들을 도입하고 있다. 또 일찍이 의과학 분야에서는 물리학과의 학문적 연계를 통해 큰 성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 뇌공학 분야는 융합교육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


그동안 대학에서 한 가지 학문에만 몰두했던 학생들(지금의 기성세대)은 사회에서 일하면서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면 쳐다도 안 본다. 아니 쳐다볼 시간도 없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맡은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하며, 최고는 한 우물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나 회사는 융합형 인재보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협업을 중시했다. 하지만, 한 가지 전공에 몰입한 결과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일과 업무에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거나, 직장에서는 처음 시작한 보직을 퇴직할 때까지 지키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고인 물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스템이 지금까지의 구조였다.




융합학문은 전문분야별 협업의 시스템이 아닌 한 명이 다양한 지식의 습득을 통한 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하는 새 시대의 요구에 의해 등장하였다. '융합학문에 의한 인재상'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재가 가장 필요한 곳은 인재의 부재에 가장 큰 위기의식을 느끼는 기성사회분야는 건축분야이다. 건축은 예술창작의 전문성과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분야로 애초에 협업시스템이 불가능한 분야이기도 하며, 건축프로세스에서 구조, 전기, 설비, 재료, 인테리어 등의 세부 전문분야의 컨트롤타워 역할이었기에 협업보다는 주도적으로 독립된 판단시스템이 절대적인 분야이다. 그래서 ‘학문 간 융합’이 건축에서 가장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건축은 예술이기 전에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시스템, 도시의 기능을 유지하는 기반시스템, 사회와 경제를 뒷받침하는 산업시스템, 등으로 작동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 존재이다. 이러한 건축을 창조하는 이들의 전문성과 정보 수준이 과연 지금의 건축교육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습득이 가능한가?

무엇 보다도 건축이 필요로 하는 '냉철한 이해력과 논리적 사고, 그리고 광기 어린 추리력을 겸비한 그러한 인재', '첨단 과학기술과 IT기술, 생명공학 기술 등의 기초상식 정도는 습득한 인재', '거기다가 고전 속에서 선현들의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회적 도덕적 양심을 뼛속까지 새겨놓은 인재' 등 이러한 인재의 배출이 지금의 교육에서 가능할까?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어떠한가. 4년이나 5년 동안 죽으라고 설계만 하는 학생들. 철학도, 윤리도, 인문도, 사회도, 예술도 선택이 되어버린 건축교육. 또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자조차 예전에 학교에서 죽으라고 설계만 배웠으며, 사회에 나와 취직해서는 애기 분유 때문에 죽으라고 설계만 하고, 또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죽으라고 설계만 하던 사람들이다. 건축의 교육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인가?

그나마 좀 깨어있는 건축가들 일부는 사회활동을 하며, 다양한 학문적 성취를 통해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이름을 가끔씩 들려오곤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건축디자인 이게 어디 방만 그리고 모양만 만든다고 되는 것인가. 그 방에 철학을 담고, 사용자의 행동을 담고, 또한 그들의 건강을 담아야 하고, 또 모양에서도 역사를 담고, 도시를 담고, 사회를 담고, 시대의 미학을 담아내어야 하는 게 진정한 건축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가 건축역사 속에서 배웠던 진정한 건축가의 모습이 아닌가.

결국 다양한 학문의 융합적 경험을 하지 못한 건축인들은 사회가 원하는 창의적 디자이너로서의 한계를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기성세대들이 건축학도들을 폭넓은 학문적 지식을 가진 융합적 건축인재로 길러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지금의 나와 같이 짙은 담배 연기 속에 한숨을 숨기려는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 건축의 미래는 우리 기성세대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이라도 건축의 ‘학문 간 융합’ 제대로 한번 고민해야 한다. 특히 지방 건축교육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최근 독특한 건축융합 개념이 하나 나왔다.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으로 '뇌과학 + 건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새로운 학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공간이 인간의 뇌와 감정,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건축과 도시에 적용하는 분야이다. 뇌공학은 '건축의 공간'과 함께 새 시대의 창조적 이론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뇌공학 분야가 전기·전자공학, 생명과학·신경과학, 컴퓨터공학·AI, 물리학, 의학 등이 융합된 분야인데, 이제 건축과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건축이 날로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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