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예술인가?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2

by 정로각심

건축교육에서 쫓겨난 예술


건축은 예술인가 아닌가에 대한 기본적 상식마저 가르치지 않은 대한민국의 건축교육은 각성하여야 한다. 건축이 가지는 학문적 범위를 무시하고 기술만을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건축교육은 개선되어야 한다. 지난번에 건축에서의 이론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번에는 건축의 예술성과 기초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최근 SNS의 발달로 인해 아무리 먼 곳에서 떨어져 있어도 세계적인, 그리고 전국적인 건축의 동향은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교육을 받던 30~40년 전에는 정보의 취득은 건축 관련 잡지나 단행본을 직접 구해서 얻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건축의 동향을 파악하기란 너무 힘들었었다. 그 또한 오프라인이라는 시스템의 한계에 의해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가지는 시간적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하는 지식은 물론 먼 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의 정보교환도 현장성 있게 실시간으로 공유가 가능하다. 즉 지식과 정보의 취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과 거리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과 정보의 시공간적 거리 축소는 우리에게 큰 장점도 가져다주지만, 단점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장점이야 주지의 사실이기에 단점의 예를 들면 풍부한 정보나 지식의 양만큼이나 엉터리 정보와 지식 또한 무작위로 실시간 공유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증되지 못한 정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걸러지고 수정되어 올바른 지식으로 취합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한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배우는 학생들의 경우 부정확한 지식의 습득에 대한 가치판단의 능력이 떨어져 무분별한 지식의 습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더 큰 문제는 검증 안된 정보를 흘리는 사람들이 학생들이 믿고 따르는 전문가나 교수자들에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접하는 그릇된 정보들은 이미 그들을 통해 흘러나온 것을 확인 한 바이다. 교육의 현장에서 잘못된 정보와 지식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건축의 예술성에 대한 오류이다. 내 생각은 우리의 건축교육의 현장은 건축의 예술성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1학년 건축개론 시간의 1주 차 정도의 시간만 건축의 예술성에 대해 다루어질 뿐이다. 그리고 끝이다. 이후에는 없다. 나는 건축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는 건축을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건축은 예술인가?


건축이 예술로 취급된 것은 이미 고대부터이다. 물론, 고대에는 '예술'이라는 단어도 명확한 개념도 없었다. 다만 예술과 기술의 개념, 창작과 제작의 개념이 합쳐진 'Ars'라는 개념이 존재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대의 예술이라고 할 때는 이 'Ars'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를 편리 상 예술로 통칭할 뿐이다. 고대의 ars는 'Fine Ars, Beaux-Ars'로 인간이 수행하는 많은 활동 가운데 사물의 창조와 같은 특수한 활동을 지시하는 개념이다. 즉 여기에는 'Technique'의 개념이 포함된다.

고대의 예술(Ars)은 Mechanical Arts, Liberal Arts로 구분이 되었다. 전자의 Mechanical Arts는 기술적인 것에 속하는 예술로 직조, 병기, 농업, 의약, 연극, 수렵 등이 포함되었으며, Liberal Arts는 정신적인 것에 속하는 예술로 3과(문법, 수학, 논리학), 4학(대수, 기하, 천문, 음악이론)이 포함되었다.

고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대표적인 예술로 구분하는 회화와 조각은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로 인간의 정신성이 결여된 손기술로 취급되었다. 그렇다면 건축은 어디에 속하였을까? 고대인들은 건축은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수학적 질서의 모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회화와 조각처럼 모방이라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모방이 아니라 정신적인 예술인 수학의 질서를 모방하였기에 건축을 정신성이 담긴 고귀한 예술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중세는 예술이 종교의 범위 안에서 다루어졌다. 따라서 초기와 중기는 예술이 종교적 도구로 전락되었으며, 후기에는 그나마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 중세예술의 지위를 구축하였다. 로마네스크와 고딕예술을 주도한 것은 건축이었다. 이 시기 교회건축은 중세 예술의 꽃으로 비유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세를 '예술 암흑의 시대'로 일컫는 것은 르네상스인들의 우월감과 자만에 의해서였다. 그렇다고 중세예술이 종교사에서는 모르겠지만 예술사에서 엄청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예술의 큰 틀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학문적으로 제대로 확립된 시기는 근대에 와서이다.


르네상스시대의 예술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에 의해 확립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가이자 건축가이기도 하였던 그는 르네상스 미술사를 창조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인물로 알려진다. 1550년에 출간된 <뛰어난 화가·조각가·건축가들의 생애>에서는 '미술(beautiful Arts)'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그는 회화·조각·건축을 미술로 분류하고, 이들을 이념(idea)을 구현한 아름다운 기술로 정의를 내렸다. 즉 이들 미술을 이념적 활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근대의 예술은 프랑스 철학자 샤를 바뙤(Charles Batteux, 1713~1780)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의 예술에 대한 핵심 사상은 "모든 예술은 모방이다"로 집약된다. 음악·시·회화·조각·무용 등 모든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순수한 예술((Beaux Arts)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기능술(Mechanical Arts)에 공예·기술적 제작 활동 등을 포함시켰으며, 즐거움과 실용성 모두를 특징으로 하는 건축과 수사법은 중간적 예술로 분류하였다. 예술과 기술이 독립적으로 분리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 이다. 바뙤는 빈켈만, 바움가르텐과 동시대의 사람이다.


바뙤 이후에 나타난 사진·그래픽·영화 등은 기계적인 예술로 분류되었다. 최초의 사진은 1827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의 <르 그라 집 창에서 내다본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는 기계적 기술로 정신성이나 이념이 결여된 저급한 기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사진은 구도와 내용을 통해 회화적 기법을 끝까지 주장하여 힘겹게 예술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사진이 정식 예술로 인정받은 시기는 1897년 영국왕립예술아카데미의 승인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대의 예술은 전통적 예술(회화·조각·건축·음악·시·무용 등)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복잡하게 분류되어 다루어진다. 즉 현대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된 시대이다.


예술사와 미술사를 통틀어 건축의 위치를 봤을 때, 건축은 고대에서부터 정신적 예술로의 지위를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건축이 위대한 기술(Archi+Tectura)되었는가는 역사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건축은 예술이다.


오늘날 건축을 행하는 이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건축가·건축사·건축디자이너·건축엔지니어 등 건축의 사회적 기능이 어디에 맞추어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건축이 예술이라면 예술가의 호칭은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 '건축가'이다. 한국건축가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여기에 회원으로 가입되면 자동으로 한국예술인협회에 소속된다. 즉 예술가로 인정되는 셈이다.


그러나 다수의 건축인들 중 예술가로서의 건축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도 있는 것 같다. 라이선스를 취득한 건축사들 중, 다수는 건축사협회에만 가입되어 있고 건축가협회는 미가입된 경우도 있다. 스스로 예술가임을 부정하는 것일까?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술을 하면 너무 사회적 제약(독창성과 모방 등)에 얽매 일까 봐 그럴까?


아마도 우리나라 건축의 교육은 공학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건축은 대부분 건축공학과라는 이름으로 공대에 소속된다. 일부 대학에서만, 예술대나 독립 단과대로 운영이 된다. 아마도 가장 기초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대학교육 기간 동안 공대 마인드 속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예술가적 마인드의 습득은 어려웠을 것이다.

기술자는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예술가는 태어나는 것이라는 지침은 예술의 천부적인 자질의 숭고함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공학도를 예술가로의 이름을 거부하게 끔 한다. 그나마 합의가 가능한 지위가 예술과 기술의 영역이 애매한 디자이너이다. 디자이너로 남아야지만 그들의 행한 기술상의 오류를 예술의 이름으로 합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기능과 디자인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지만,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예술이라 말하지 않는다. 첨단 기술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기술은 앞장서서 나가는 문화에 발만 맞추어주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작은 요구만 충족시켜 줘도 대박이 난다. 기술은 문화를 주도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건축은 예술이 이어야 할까? 아니면 기술이어야 할까? 암묵적으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후자이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왜 대박을 꿈꾸니까. 시대의 문화 현상에 부응하는 좋은 건물을 디자인하면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 건축가들은 예술가들의 배고픔에 익숙해 있지 않다.


이제는 건축이 문화여야 한다. 건축이 기술에만 머무르면 문화를 이끌지 못한다. 건축이 예술이어야 문화를 주도할 수 있다. 건축은 예술이다. 건축교육도 예술 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