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07
지난 글에서 건축의 유기적 특성에 대해 개인적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글의 내용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안토니 가우디의 유기적 건축에 대한 내용도 짧게 언급하였다. 그들의 건축세계는 세간에 워낙 잘 알려져 있어 언급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었지만, 우리 건축인들조차 잘 몰랐던 이름이 있어 잠시 이야기를 할까 한다. '훈데르트바서'라는 인물이다. 당연히 유기적 건축에 관련된 인물이며, '곰팡이 선언문(1958/1959/1964 : https://www.hundertwasser.at/english/texts/philo_verschimmelungsmanifest.php)'과 '건축 보이콧 선언문(1968)'이라는 재미있는 텍스트를 남겼다. 건축 보이콧선언문은 곰팡이 선언문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가 남긴 이 건축 선언문이 나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이들 선언문은 발표 당시에는 건축계에 큰 파급효과를 남기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건축의 비판적 담론이라는 입장과 생태건축 및 유기적 건축의 경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얻고 있다.(곰팡이 선언문의 정확한 명칭은 '건축에서의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곰팡이 냄새 선언문'이다. '곰팡이 냄새 나는 합리주의 건축 반대 선언문'으로 정리가 되겠다.)
일단 훈데르트바서는 누구인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 본명은 Friedrich Stowasser이며,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환경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어머니가 유대인으로 혼혈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위장하고 히틀러 유스 등에 가입을 하였지만, 어머니 쪽이 유대계라는 이유로 탄압을 당하자 그의 사상에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반권위주의적 세계관과 개인의 자유주의 사상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변화가 그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 빈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으며,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등을 여행하며 자신만의 예술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그가 자주 사용하였던 '나선(spiral)'은 그만의 상징이 되었다. 30대에는 파리, 밀라노, 빈 등에서 화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트랜스오토마티즘(Transautomatism : 화가의 무의식적인 표현을 넘어, 감상자의 상상력과 능동적 해석을 핵심 요소로 삼는 예술 사조)'이라는 독자적 예술 이론을 발표한다.
건축가로 본격적인 활동은 1958년 당시 유행하였던 합리주의 건축을 비판한 '곰팡이 선언문(Mouldiness Manifesto against Rationalism in Architecture, 1958)'과 기능주의 건축의 직선을 거부한 '건축 보이콧 선언문(Architecture-Boycott Manifesto, 1968)'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훈데르트바서하우스(Hundertwasserhaus, 1985, 빈), 쿤스트하우스빈(KunstHausWien, 1991, 빈), 로그너 바트 블루마우(Rogner Bad Blumau, 1997), 발트슈피랄레(Waldspirale, 2000, 다름슈타트)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뉴질랜드 등 폭넓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2000년 2월 19일 퀸 엘리자베스 2호 선상에서 7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10여 년 전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로, 당시 강의준비를 하다가 그의 '곰팡이 선언문'과 ‘건축 보이콧선언문’을 처음 접하면서부터이다. 그때는 그냥 합리주의와 기능주의적 현대건축을 대한 또 다른 시각으로써의 비평이구나 싶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의 건축이, 아니 우리의 시대가 당신을 크게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하게 되었다. 왜 한국 사회에서는 당신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아니, 왜 한국의 건축계는 당신의 이름에 무관심했는가? ('곰팡이 선언문'의 첫 문단은 건축도 회화와 조각처럼 누구나 창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마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의 건축계에 환영을 받지 못할 만한 주장으로 보인다. 특히 구조와 안전에 대한 세 번째 문단은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가 그를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건축인들이 의도적으로 몰랐던 것뿐이다. 이미 오래전에 그에 관련된 책들이 출판되었다. 가장 먼저 나온 책 중의 하나가 2010년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된 <훈데르트바서(다섯 개의 피부를 지닌 화가왕)>이다. 그후 그의 미술작품과 집에 대해 다룬 책들이 다수 출간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 책을 통해 그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듯하다. 환경운동가로서의 예술적 접근과 화가로서의 건축적 접근, 건축가로서의 인간적 이해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중심사상인 듯하다. 이 ‘다섯 개의 피부’란 책에 있는 실린 삽화로 잘 설명된다.
출처 : https://www.hundertwasserartcentre.co.nz/about/hundertwasser/the-painter-king-with-the-five-skins/
그가 말하는 다섯 개의 피부(Five Skins)'는 사람을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확장되는 다섯 단계의 외부와의 관계시스템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회의 유기적 조화를 설명하는 그의 핵심 철학이다. 제1의 피부 표피(Epidermis), 제2의 피부 의복(Clothing), 제3의 피부 집(House), 제4의 피부 사회적 환경(Identity, Family, Social), 제5의 피부 지구 생태(Nature, Earth). 건축은 제3의 피부에 포함된다. 이 다섯 개의 피부 개념이 그의 생태주의 및 유기적 건축 철학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는 단지 그의 건축 경향이 아니라, 합리주의와 기능주의 건축에 대한 적극적 저항 의지로 발전되었다.
'다섯 개의 피부'는 비록 우리에겐, 아니 나에겐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한 채 묻혀버릴 뻔하였던 그의 예술적 건축 개념이지만, 그것은 충분히 작금의 시대정신에 대한 동시성으로서의 부활과 재현으로써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2011년 초 국내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예술세계를 접하였고, 또한 그의 건축철학을 이해하였다. 비록 서울이라는 지리적 제한으로 일부만이 가질 수 있는 특혜였었지만 말이다.
전시회를 통해 그는 친환경 개념을 이끈 화가이자 유기적 건축가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의식적으로 직선을 비도덕적으로 규정하고 철저하게 거부하는 그의 회화와 회화적으로 표현된 건축은 가우디 이후 기존 건축에 대한 새로운 구축형식과 건축의 회화성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자연의 유기적 형태에 집중한 가우디와 다른 점은 시대의 건축에 대한 저항, 합리적 기능주의 건축의 획일성에 대한 반발을 그의 예술세계를 통해 실천하는 의식 있는 건축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그의 회화와 건축은 가우디의 건축보다 많은 이념적 동조자를 이끌어 내는 듯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그의 건축세계는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나에게는 단지 회화적이고 조형적인 예술적 건축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었다. 그의 건축은 형식과 구성의 자유로움이 지나치게 디오니소스적인 환영에 힘입어 시각적 화려함이 정신의 착란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듯한 가우디의 건축의 혼란스러움만큼이나 어렵고 어지럽게 느껴졌다. 나는 건축을 처음 배우던 시기, 가우디의 건축을 보며 '인간(작가)의 내면의 어떠한 기질이 나의 기존 관념을 벗어난 저렇게 자유롭고 현혹스러운 건축물 만들게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동경과 호기심으로 열광한 적도 있었다. 그때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도 나의 상상을 자극하는 몇 안 되는 환상적 건축가의 자격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우디의 건축도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도 나에게는 큰 열정적 호기심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우리 시대의 예술성은 사회적 현실적 타협 아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더 이상 일반인이나 예술가이기 전에 현실적 건축가에 좀 더 가깝기 때문일까? 그래도 조금 다행스러운 것은 나의 시대정신이 그의 건축이 아니라 그의 건축철학에 때늦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누구나 건축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건축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오늘날 계획 건축은 결코 예술로 간주될 수 없다. 우리의 건축은 소련의 회화처럼 검열에 굴복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것은 양심 없는 사람들이 자로 선을 긋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타협의 결과물일 뿐이다.' - 곰팡이 선언문(1958)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집을 지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건축은 소련에서 회화가 당하고 있는 것처럼 검열된다. 모든 사람에게 그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만 하며, 또한 그들은 그 지어진 것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건축은 죄를 범하고 있다 할 정도로 아주 메말라 있다. 그 이유는 건축주가 그의 집에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에 건설이 시작되고, 인간 유기체의 피부처럼 성장하여야 하는 데, 그 반대로 그 순간에 건물은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건축의 보이콧 선언문(1968)
그는 곰팡이 선언문과 건축 보이콧선언을 통해 건축가들의 일과 특권은 사용자, 즉 대중에게 넘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을 위한, 그리고 대중에 의한 건축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한 번쯤은 생각하고 넘어가도 좋을 그의 주장이다. '건축, 과연 예술인가'. '건축문화, 대중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현시점에 그의 사상은 새롭게 대중에게 이해될 필요가 있으며, 모든 현대건축은 대중에게 검열될 필요가 있다.
나는 가끔 어려운 건축(?)은 한 시대에 한 명만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두 명이 되어서도 세 명이 되어서도 안되고, 단 한 명만이 시대의 건축적 기인으로써 우리의 눈과 정신을 즐겁게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떠난 지금 아마도 또 한 명의 기인적 건축가가 어디선가 씩씩하게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교훈을 하나의 윤리적 실천의지로 이해하고 자신의 건축적 삶에 의식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건축가는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