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는 폭력이(었)다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06B

by 정로각심

2026.02.02 SBS 뉴스 기사에 이런 기사가 떴다.


<전현희, 서울시장 출마..."DDP 해체하고 '서울 돔' 짓겠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9회 6.3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선언을 했다. 그의 출마의지는 단호했다.


"강남과 강북을 아우르는 서울시장이 되겠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10년간 무능 그 자체였다", 그리고

"DDP는 동대문 일대의 패션의류 상가들과 단절돼 유령도시처럼 상권을 죽게 만든 전시성 행정의 대표사례이다",

"그 자리에 글로벌 최대 규모의 '서울 돔'을 세워 명실상부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라고 공략을 제시했다.


그가 주장하는 DDP에 대한 주장은 나의 생각과 일부 일치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DDP의 존재와 이유에 대한 의견에서 일부 일치한다. 그러나 DDP뿐 아니라, '서울 돔' 등과 같은 다른 시설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온다 해도 건축의 계획과 접근 방식은 지극히 서울이라는 도시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는 그의 공략이 다소 염려스럽다. 단순하게 'DDP' 대신 '서울 돔'이 아니라, DDP가 말아먹은 서울이라는 도시성, 동대문이라는 장소성과의 도시맥락 회복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DDP가 건립될 당시(2013년) 오세훈 시장의 의지와 자하 하디드의 건축 계획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B.C 1세기경 로마의 비트루비우스는 그의 저서 <建築十書>에서 건축의 조건으로 ‘Firmness(견고함), Commodity(편리함), Delight(기쁨)’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이는 20세기가 흐른 지금, 건축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상의 메달 뒷면에도 새겨져 건축의 교리적 지침이 되고 있다. 이후 이 지침들은 ‘구조적 안전함, 기능적 편리함,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재해석되어 지금까지 우리 건축인들에게 실천적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건축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며, 반드시 지켜야 할 전문가적 의무와 책임이 되었다. ‘거주자를 위한 안전함’, ‘사용자를 위한 편리함’, ‘감상자를 위한 기쁨’은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건축가들의 지상명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안전함’과 ‘편리함’은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실천윤리로 자리매김하였지만, ‘기쁨’만은 그렇지 못하였다. ‘기쁨(미)’이 예술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었다는 객관적인 고전적 미학이 근대 이후 ‘기쁨(미)’은 인간의 인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주관적인 근대적 미적 기준으로 주객전도가 일어남에 따라 건축의 실천에서는 전혀 엉뚱한 오류가 발생하게 되었다.


즉 구조적인 측면이나 기능적인 측면의 기준은 건축의 사용자에 의해 규정 지워진다는 것은 불변하고 있지만, 예술적 측면은 사용자나 감상자가 아니라 건축가의 자신의 기준에 의해 규정되어 버리는 역사적 오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건축의 ‘기쁨(미)’을 이끌어내는 예술성은 건축의 사용자나 감상자의 관점이 아니라 예술가라는 이름의 건축가 자신의 관점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오류는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 시점에서 한번 고민해 보자. '건축은 누구를 위해 안전해야 하는가? 건축은 누구를 위해 편리해야 하는가? 건축은 누구를 위해 아름다워야 하는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대가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건축의 예술성을 건축가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건축의 예술성은 건축가 자신의 예술적 자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감상자의 기쁨을 논하는 것이다. 즉, 사용자가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와 감상자가 얼마나 즐거워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건축에서 요구되는 예술성을 자신의 예술적 능력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미적 기준으로 지구 곳곳에서 독단적인 예술폭력을 휘둘러 왔다. 반드시 무력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인터넷 시대를 지나면서 언어폭력과 마찬가지로 감성적 인식의 도구인 예술을 통한 폭력 역시 무력적 폭력 못지않은 정서적 충격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DDP는 한국땅에서 자행된 서구문화의 폭력이었다.


"전통을 지키는 것과 현대적 건축을 조화시키는 것은 모든 도시의 숙제다. 하지만 서울의 오래된 건물은 궁 밖에 없고 그런 것들을 지금 다시 지을 수는 없지 않나." - 자하 하디드


"여기서(동대문) 지역 문화랄 게 뭐가 있나" - 자하 하디드


"공모에 당선된 이후 7년 동안 열심히 건물을 지었다. 그랬더니 지금 나를 불러 놓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정치가들이지 내가 아니다." - 자하 하디드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건축가로서 가장 조심하여야 할 독단적 폭력을 행사하였으며, 전문가적 윤리에 위배된 정치적 책임회피를 스스럼없이 자행했다. 나는 DDP의 준공 시점에서 자하 하디드의 적절한 해명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해명이 아닌 자신이 행한 폭력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래의 글은 한참 전 로버트 베번의 <집단기억의 파괴(2012)>라는 책을 읽고 써본 개인적 견해의 일부분(DDP 해당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왜 집단기억의 파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기록했던 내용이다. 당시에는 내가 보기엔 분명 ‘DDP는 한국에서 자행된 집단기억의 파괴였다.’


베번은 ‘집단기억’을 ‘구성원 사이의 교환 작용으로 합쳐진 건축기록이 공동서사로 발전하는 개인기억들의 묶음’으로 설명한다. 어떤 국가나 도시에 존재하는 건축유산은 역사와 함께 개인의 기억을 넘어 민족적 공동의 기억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가끔은 민족적 자존감으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 기억의 파괴는 국가 또는 민족에게 집단기억이 되는 건축물과 같은 흔적을 말살하여, 그들의 기억 속에 만들어진 공동의 민족성을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 장소의 집단기억의 파괴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환유의 풍경’ 환유? 동대문운동장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아니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인데, 아직 준공도 하지 않은 건축을 비판대에 올리기가 좀 그렇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곧 비판대에 가장 많이 오를 가능성을 내재한 대상이기에 아주 살짝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대문운동장은 1925년 5월에 착공하여 1926년 3월에 준공을 한 운동장으로 준공당시에는 현대적 스탠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단일운동장이었다. 1929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스포츠대회인 전조선종합경기가 개최되었으며, 1961년 운동장에 스탠드가 설치되어 본격적인 국민 스포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시민들에게는 동대문운동장은 1988년 잠실종합운동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아마도 가장 친절한 문화시설이었을 것 같다. 일제강점기, 전후재건기, 그리고 경제발전기 등을 거치는 동안 동대문운동장은 힘들고 지친 시민들에게 다양한 스포츠와 문화행사 등이 열리는 장소로써, 한자리에서 하나 되는 민족적 유대감을 고취시키는 장소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것이다. 2003년 풍물시장과 주차장으로 전용되었으며, 2007년 12월 운동장은 철거되고, 2009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이름하에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거 동대문운동장은 서울 시민들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있었을까? 서울 시민들에게 집단기억으로 남아 있었을까? 글을 쓰는 본인이 서울 사람이 아니니 서울사람들의 정서적 측면을 읽어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원론적인 접근만 잠시 해야겠다. 거대도시 Metropolitan에서 Open Space가 가지는 의미는 참으로 거대하다. 바쁜 삶과 복잡한 도심에서의 정신적 육체적 휴식과 시각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기본적 기능 이외에 빽빽한 빌딩 숲 속의 물리적으로 열린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백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년 중 개최되는 문화체육행사는 그들만의 특권이며, 자존감으로 기능하기가 충분하다. 따라서 거대도시의 대형운동장과 같은 시설은 시민들에게 문화적 가치와 정신적 자존감의 현전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집단기억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서울시민의 집단기억을 오세훈시장과 이라크 출신 여류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주제가 ‘환유의 풍경’이란다.)의 ‘환유’를 내세워 시민들의 집단기억을 환유시켜 버렸다. 환유란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어떤 하나의 사물 또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과 관련이 깊은 다른 사물을 이용하는 방법’(네이버사전)이란다. 그렇다면 하디드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였을까? 그녀는 과연 서울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분석하였기에 지금의 DDP의 모습이 서울과 그리고 기존의 동대문운동장과 관련이 깊은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것이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하다.


사실 용도로 봐서는 이미 문화시설과 문화공간으로 사용이 되어 오고 있었기에 큰 변화가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준공을 앞둔 이 건축물이 세간의 이목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바로 형태적인 이질성 때문이다. 과연 이 장소에 이러한 형태가 지역적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장소는 개별기억이 한 곳으로 모여질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집단기억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당연히 건축물뿐만 아니라 장소도 집단기억으로 공동서사화 된다. 그러므로 한 도시의 역사적 장소는 역사의 순환고리의 한 고리로써 이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단기억의 파괴자들은 장소를 무시하고 역사적 기록을 무시하고 외국의 건축가를 불러 전혀 형태적으로 전혀 연속성을 가질 수 없는(본인의 생각이다.) 이질적 건축물을 재건하였다. 이러한 형태가 과연 최선의 형태일까?


우리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이 우리의 단편적 기억으로 누적되어 집단기억화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할지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든 우리에게 집단기억이 되기 위해서는 돈이 되던, 기념비가 되던 뭔가 분명히 역사의 한 획을 그어야 한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극적 반전이 가능할까? 이왕 세워진 것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미 세워진 건축에 대해서는 함부로 파괴를 운운하면 안 된다. 이제 우리의 몫은 끝났다. 나머지의 국가와 서울의 몫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지금 하디드가 ‘환유의 풍경’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서울시민의 집단기억을 유린하였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역사와 지역적 장소성의 환유...’ 과연 어디에서 나온 자신감인지 궁금할 뿐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대해서는 그만 글을 줄여야겠다. 섣부른 비판은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 선다. 일단 이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차후로 돌리도록 한다. 그리고 준공식 때, 하디드는 과연 어떠한 변으로 서울시민들을 설득시킬지가 기대가 된다.(2013)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 세계건축을 선도하는 건축가에서 기억해야 할 건축의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가 남긴 건물 DDP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시민들은 자신만의 신문화와 일상의 특별한 장소로 DDP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당시 도시의 맥락적, 역사적 측면에서 비평의 도마에 올라 난도질당했던 DDP는 시간이라는 엄청난 안정제의 약효에 의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치유되고 있다. 도시맥락에 관심 없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장소와 공간의 자연스러운 흔적으로 녹아들고 있다.


그렇게 도시의 역사문화는 지워지기도 하고, 그 자리에 이식된 이질적 문화는 새 시대가 요구하는 신문화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역사'란 책 속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박제된 기록'으로 강요되어 간다.


수정이 필요하다면 그때 했어야 했다. 이제는 아니다. DDP는 이미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화가 되어 가고 있다.


#건축,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자하하디드, #집단기억, #파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건축의 공명(현장에서 느끼는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