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발견되어야 한다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6

by 정로각심

건축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건축디자인은 사용자가 필요한 건축의 형태와 공간을 기획하고 계획하여 실체화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행위를 담아내는 공간을 만드는 창조적 활동이라는 좀 더 거창하고 고상한 정의가 있겠지만, 과정과 결과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의 방법이다. 디자인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조적 행위이자 사고과정이기에 어렵다. 수학적 공식이나 물리적 법칙 같은 것이라면 규칙을 따르면 되겠지만, 디자인은 그렇지 않다. 디자인은 창조적 사고 과정을 통한 독창적 결과물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래서 규칙 같은 것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까?


관점을 조금 바꾸어 보자. 없던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 디자인이라면 창조적 결과란 발명에 가깝다. 발명은 쉬운 게 아니다. 어렵다. 그래서 발명가는 위대하다. 발명이 어렵다면 발견을 어떨까? 발견은 적절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면 발명보다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현재를 여전히 발견이 이루어지는 시대로 보고 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은 현대를 여전히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행운아라고 말하였다.


발견과 발명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발견은 기존에 주어져 있었으나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발명은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일이다. 따라서 둘 다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 행위이지만 발명은 필요에, 발견은 우연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 우연도 필요에 기반한다. 필요하지 않다면 우연은 무시되거나 폐기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경험되었다면 발명이 더 많고 수월할 수 있겠지만, 아직 경험되지 못한 것이 많다면 발견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 더 많다. 지구 밖의 세상이 그러하다.


현대물리학이 우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상 발명보다 발견이 더 확률적으로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잠시라도 그 눈을 지구로 돌리면 지금의 시대는 발견보다 발명이 더 많은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구의 인적이 닿지 않은 지하와 해저에서 여전히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수많은 발견된 것들을 기반으로 하여 더 많은 발명품들이 쏟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발견은 쉬운 것이 아닐지 모른다. 발견은 세상을 탐구하는 눈과 분석하는 두뇌와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이러한 에너지 낭비가 심한 실천을 기피한다. 따라서 과학의 발달에 발맞추어 발견되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발견은 그 확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분야에서는 위대한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발명을 과학에 양보한 많은 분야에서는 발견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매일매일 해나가고 있다. 물론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건축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건축은 기술과 디자인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기술에서는 발명이 발견에 비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었다.(아니 어렵지만 100% 독창을 주장하는 디자인에 비해서 말이다.) 구조, 시공, 재료 부문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신기술의 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건축 분야의 발견을 예로 든다면, 역사적 사건이나 흔적의 발견이라 하겠다. 즉 과거의 유적, 기술, 양식 등이 있다. 따라서 발명은 현재 지향적이라면 발견은 과거 지향적인 개념에 가깝다. 발명은 과거에 없었던 것을 현재에 만들어내는 창조적 일이고, 발견은 과거가 숨겨 놓은 것을 현재에 찾아내는 우연에 가까운 일이라서 늘 발명의 그늘에 가리어져 있었다. 건축에서는 발견보다 발명이 가치가 있었다.

디자인도 그러했다. 디자인에서는 기술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발견한다는 개념 자체가 용인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왔다. 왜냐하면 건축은 위대한 예술이기에 디자인은 발명에 가까운 독창적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철저한 교조적 가르침이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건축 양식 역사는 언제나 앞선 시대의 극복이며, 지난 시대의 계승의 역사였다. 계승의 방법은 역사의 참조였다. 참조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 그러므로 디자인은 창조적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어야 한다. 디자인은 발견되어야 한다.


창조적 사고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건축뿐 아니라 모든 디자인의 기본은 개념을 찾아내는 일이다. 찾아낸 수많은 개념들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걸러내어 다시 목적에 맞게 조합하는 일이 디자인이다. 제아무리 디자인이 창조적 작업이라고 주장하여도 창조는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즉 신의 영역이다. 니체가 100년 전에 이미 신을 죽여버렸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그저 신이 만들어 놓은 모든 환경, 대상, 관념 속에서 필요한 개념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은 개념들을 잘 조합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디자인의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능력 밖의 일인 창조를 하겠다는 욕심은 부질없다.


인간의 역사에서, 도시의 사람에서, 모두의 장소에서, 우리의 미래에서, 내 의식 속에서 디자인은 발견되어야 한다. 발견은 발명보다 앞선다. 그동안 우리가 말해온 창조적 디자인이라는 말,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에 가깝다. 디자인에서 100% 발명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아니다. 디자인은 참조이다. 역사, 사람, 자연, 기타 학문 등에서의 발견된 수많은 개념의 참조적 변형이다.


디자인이 발견이라고 하면 창작을 해야 하는 이들은 다소 부정적 견해를 가질 것이다. 이미 선구자들이 좋은 발견을 다해버렸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발견은 별로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발견은 수많은 개념들의 참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 뜻은 시간이 흘러 발견된 개념이 축적되고 많아지면 참조할 개념도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온전한 결과물을 거저먹을 생각이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맞겠지만, 대상들에서 수많은 개념을 발굴하여 새로운 디자인으로 참조와 조합을 하려면 발견된 개념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발견은 시간이 흐를수록, 역사가 누적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건축디자인은 개념에서 개념을 발견해 내는 개념이다.


AI가 1초에 수백 개의 그림과 개념을 만들어 내는 시대이다. 하지만, 아직 개념의 개념의 개념을 읽어 내는 AI는 없다. 디자인이 발견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