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는 도시의 골목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5

by 정로각심

오랜 시간 기억의 한 켠으로 밀려나있었던 고향을 찾아 나선다.

세월이 흘러도 옛 모습을 간직한 고향의 골목,

저 골목만 돌면 어릴 적 내 어머니 손잡고 자주 들르던 허름한 짜장면집과

다리가 불편하신 아저씨가 해주시던 뽑기 전문 구멍가게가 옛 모습 그대로 있겠지.

동전 몇 푼 생기면 총알처럼 달려가 쪼그리고 앉아 오락기를 두드리던 문방구도 있겠지.


고향의 골목. 이미 머리에선 희미한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그 장소는 몸이 기억을 하고 있다.

유년의 시간 동안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기억들.

눈을 감아도 딴생각을 해도 몸은 좁디좁고 복잡한 옛 골목을 아주 익숙한 듯 찾아나간다.

저 모퉁이만 돌면 나를 반겨줄 옛 추억들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아서니 눈앞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눈부신 유리장벽,

구름에 가려 높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콘크리트유리성이 나타난다.

연장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낯섦이 눈앞에 가득 찬다.

추억과 충돌한다.

여기가 아닌데,

아닌데...


유리에 반사된 빛에 눈이 적응할 즈음,

익숙하지 않은 거대함은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분명 다른 세상의 모습을 그 안에 담고 있다.

빛바랜 추억은 절대 아니다.

유리에 반사된 오래된 도시의 풍경 또한 결코 아니다.

유리 너머로 희미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고급차들,

질서 있게 차도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

잘 구획된 지붕 있는 거리(아케이드)를 거닐면 집과 시장을 오가고, 학교를 오간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도시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 유리벽을 넘지 않는다.

유리성으로 들어가는 성문에는

무섭게 생긴 수문장과 날카로운 송곳을 가진 바리케이드가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절대 열릴 것 같지 않던 바리케이드는 고급승용차만 통과시킨다.

어느 누구도 걸어서 저는 성문을 통과할 수 없을 듯이 보인다.


그것은 분명 도시였다.

오래된 도시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시였다.

그동안 도시는 건축을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도시를 잉태하고 있었다.

현대의 도시는 눈에 보이지 않던 사회구조계층의 분리를 눈에 보이는 실체로 재현시키고 있었다.

오랜 세월 공동체적 사회관계라는 이름으로 형성된 도시는 현대에 와서 붕괴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거대한 유리성들이 도시를 도시로 침식시키고 있다.

그 유리성은 초고층아파트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오래된 도시와는 철저하게 격리된 낯선 자들이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도시이다.

새로운 도시의 거대함은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내었으며,

그 그늘은 오래된 도시의 일부를 가리고 있다.

그리고 그 그늘아래에서는 익숙한 오래됨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아무도 유리성 밖의 세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도시는 새로운 도시로 인해 양극화되고 이기심의 표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나 또한 도시를 변질시키고 있는 방조자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이기심이 도시의 공간구조를 이상하게 변질시켜 버린 '마닐라'가 연상된다.

분명 그때 당시는 '이것은 아니다, 이래선 안된다'라고

많은 생각과 우리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지금은 방조자이자 방관자 일뿐이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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