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한국적인 건축인가?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4

by 정로각심

장소성이 대중성으로 묻혀버린 건축

지역성을 보편성으로 가려버린 건축

시대성을 정치적 타협으로 오인한 건축

전통성을 오래된 것으로 착각한 건축

익숙한 것을 새로움으로 포장한 건축

이러한 건축이 대한민국을 대표하거나 한국 건축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금 불편하고 거칠고 촌스러워도 한국 건축은 한국적이어야 한다. 지금 이 땅에 세워지고 있는 많은 건축이 한국적인가에 대한 회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아직도 무엇이 한국적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기에 그 어느 누구도 진정한 한국적인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 있게 답하거나 당당하게 주장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건축의 한국성과 전통성


그동안 한국 건축계는 건축의 한국성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해왔다. 한국성이란 말은 전통성이란 말과 같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전통성이 한국성일 수는 있지만, 한국성이 반드시 전통성일 필요는 없을 수 있다. 건축계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전통성의 기준조차 마련되지 못한 건축이 한국성을 이야기해도 될까? '이것이 한국성이다'라고 주장하였을 때, 전통성의 계승의 문제는 아무런 이의제기도 없이 얌전하게 있을까?


지금 한국의 건축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제기와 고민을 하는 동안 정체성이 불분명한 건축에 의해 세계화의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는 듯하다. 매년 국가와 광역지자체, 각종 건축단체에서는 우수한 건축에 대해 다양한 이름으로 시상을 한다. 수상작품은 형태 및 공간 디자인의 우수성, 주변 및 환경과의 맥락, 사회적 연결성, 기타 등등의 평가 기준을 통해 선정한다. 한국적 전통성은 평가 기준의 주요 항목은 아니다. 전통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셈이다. 선정기관의 잘못은 아니다. 아직 우리에겐 한국성이나 전통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건축전문가들이 기준을 제대로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의 건축계는 아직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세대 건축가로 잘 알려진 김중업과 김수근 두 사람도 평생을 노력한 것이 한국건축의 전통성을 찾고자 한 일이다. 결국 그들도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종언을 고했다.


전통성이란 앞선 시대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현시대의 노력이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은 유구한 5천 년의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대정신의 도전과 변화를 겪었다. 신라시대부터 도입된 유교문화와 지루할 만큼 반복된 일본문화의 유입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시대정신과 문화의식을 변질시켰다. 이는 한국의 전통은 이미 그 뿌리에서 동아시아 문화와 희석된 문화임을 크게 부정할 수 없다. 지난 반세기 건축에서 한국의 전통 찾기가 그렇게 반대와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이 지금 우리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한국성과 전통성이 기준을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한국성을 찾기 위한 노력들


건축의 한국성에 대한 의미 있는 논쟁은 그동안 몇 번의 시도가 있었다. 한때 한국건축의 전통성에 대한 논쟁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김수근(1931~1986)은 구) 부여박물관 등을 통해 한국적 전통성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건축잡지 SPACE(공간)을 창간하면서까지 건축의 공간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궁극공간'은 한국적 전통성을 외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지닌 '비움·여백·공동성' 같은 무형의 질로서의 공간에서 전통성을 찾고자 하는 개념이었다. 우리는 그의 전통성 논쟁에서 형태에 집중했지 공간은 무시했었다. 우리들 중 아무도 그가 청주박물관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궁극공간에 대해 전통성 계승이라는 이름으로 부각하지 않았다. 일단 그도 성공한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이상헌은 저서 『한국 건축의 정체성(2017)』을 통해 한국 전통건축은 많은 지혜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언어화(또는 어휘화)하거나 체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 한국의 전통성 찾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체계화된 서양건축의 언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한국건축의 평론계는 2015년 창간된 건축이론 비평지 『건축평단』을 통해 꾸준히 한국성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창간 첫해에 네 번째로 발간된 2015년 겨울호는 <건축의 한국성>을 타이틀로 한국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다. 물론 이렇다 할 명확한 해답은 제시되지 못한 채 고민을 해야 할 숙제로 남겨놓고 말았다.


비평적 논쟁 이외에도 작품을 통한 전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있어 왔다. 최근 한옥의 요소를 도입한 획기적인 다자인의 주택건축이 많이 소개된다. 건축잡지에서 소개되기도 하고 블로그에서는 연일 한국성의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이들 건축에서는 한국적 요소들이 재해석되어 나타나는 것은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한국적 요소와 한국성이나 전통성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시각적 즐거움과 심미적 만족감이 큰 차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대한민국 건축은 여전히 한국적이거나 전통적이다고 단언할 수 없다. 전통적이지만 뭔가 이질적이고, 친숙하지만 여전히 낯설다. 가끔 전통에 가깝게 익숙한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변칙스럽다. 몇몇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다고는 하나, 그 재해석을 누가 하였는가, 동의는 구하였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한국 땅에서 한국적이지 못한 건축에 의해 전통을 농락당하고 있다.


하다못해 한 세기 동안 잃어버린 전통성의 기준이 모호하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양식이 마치 자신이 한국성의 원래 모습인 양 왜곡하기도 한다. 지역성과 전통성의 상실을 세계화로 우리의 한국성은 원래 없었다고 우기기도 한다. 한국성이 중요하다고 주장은 하지만, 그래서 '어떠한 것이 한국성이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것인 한국건축의 특성이자 한국성의 실체이기 때문이리라.


기와 얹은 한옥만 전통이라는 착각


한국적인 건축, 전통적인 건축이라고 해서 반드시 옛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이란 우리의 눈을 통해 심상에 새겨지는 공통된 그리움이요, 우리 몸의 체험을 통해 전달되는 익숙한 친숙함이다. 이 그리움과 친숙함의 표현은 형태일 수도, 공간일 수도, 배치일 수도, 재료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한국적인 건축은 의식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먼저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적인 건축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알레고리나 왜상, 수수께끼와 같은 난해함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이보다 차라리 직설적인 은유나 모방이 더 솔직해서 좋을 수가 있다.


조선시대의 건축, 일본강점기의 건축이 아닌 제대로 된 한국건축의 태동은 이제 겨우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 시간적으로 무엇이 한국적인가는 그 평가가 이르다고 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건축의 평가는 당대에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전통성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던 김중업과 김수근의 건축도 아직 평가 중이라고 봐야 한다. 그들의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의 건축가들이 또 다음 세대들을 위한 한국적인 건축에 더 가까이 가게 된다면 김중업과 김수근의 건축 또한 한국적인 건축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건축의 한국성과 전통성은 한옥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옥은 우리나라 전통주거라는 분명한 정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한옥을 거대한 기와지붕과 질서 정연한 보와 기둥, 자연석을 이용한 기초와 이상하리만치 높은 기단, 그리고 내외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반상의 질서가 철저하게 지켜진 공간 등이 온전하고 완벽한 전통건축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건축은 기와집 한옥을 벗어나 이야기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한옥의 의미가 이상하게 정의되어 버린 것이다. 한옥 말 그대로 한국의 전통가옥이다. 우리의 전통가옥에는 반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가도 있다. 민가에는 초가집, 너와집, 굴피집, 새집, 투막집 등 지역과 재료에 따라 다양하며, 각 집마다 공간의 구성도 차이가 있다. 민가는 입지, 배치, 규모, 재료, 가구법이 반가보다 훨씬 자유롭다. 한국인의 심미적 여유가 만들어내는 자유로움이었다. 우리의 민가는 입지는 사회공동체가 우선이 되었으며, 배치는 가족구성원의 기능에, 규모는 현실성에, 재료는 지역성에, 가구법은 자연환경에 의지해 왔다. 반면 반가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무엇이 한국적인 건축인가?


'무엇이 한국적인 건축인가?', 사실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이 있다거나 정확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답변이 있다면 지금 이러한 글이 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이 한국적인 건축인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은 유효한 것이다. 아직 답이 없기 때문에 같이 고민해 볼만한 문제인 것이다. 그냥 쉽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편한 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도리는 아닌 것 같다.


명료한 답이 없다고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주는 답을 당장 얻으려고 하면 오류가 날 수밖에 없다. 건축의 역사에서 언제 창작과 평가가 동시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건축은 스스로 평가해서도 안되며, 평가가 즉각적이어서도 안된다. 평가는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와 시대에 맡겨야 한다. 현재의 우리가 전통성을 찾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앞선 시대가 상실의 시대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실된, 단절된 전통을 찾아 잇고자 노력한다면 지금은 힘들지만 분명 다음 세대는 우리들의 노력에서 진정한 전통성과 한국성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의 방향을 '무엇이 한국적인 건축인가?'에서 '무엇이 민족적인 건축인가?'로 방향을 돌려보자. '한국적인 것'은 '민족적인 것'과도 연결된다. 즉 한국성은 민족적 자긍심과 연결될 수도 있다. K-pop과 K-movie가 세계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린 사건이 우리에게 단지 즐거움만을 주었을까?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민족적 자긍심을 얻었다. 다문화시대에 민족 운운하는 것이 좀 그럴 수도 있지만, 한국이라는 민족성 기반 위에서 다문화가 지탱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한국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모두가 K-건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인 건축은 전통적임과 동시에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담은 건축은 100년의 미래를 이어 나간다. 지금 우리가 한국적이고자 하는 수많은 노력이 바로 가장 한국적인 건축일 수 있다.


어쩌면 전통의 원형, 그것만이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이라면 그 자체가 가장 한국적인 건축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가장 한국적인 건축은 건축가가 아니라 투박함과 불편함을 감내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지켜낸 대중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전통과의 동행이란 게 원래 어렵고 힘든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