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와 싸우는) 의지 1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1

by 정로각심

상식 밖의 일들이 상식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상식은 내 삶의 범위이자 사고의 한계이다. 이 범위와 한계는 나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그런데 이 범위 밖에 존재하는 상식들이 내 상식의 울타리를 넘본다. 그건 내 상식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는 건지? 내가 변하는 건지?


어려서는 지식이 좁고 물정을 몰라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없었다. 그냥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듯하였다. 혹여 익숙하지 않은 세상의 모습은 내 것이 아닌 양 무시해도 큰 탈은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지식이 쌓이고 보는 눈이 넓어지니, 책에선 식견이라고 하는 좀 있어 보이는 능력이 내게도 조금씩 생겨나더니, 그때부터 이 복잡하고 분주한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처음 보는 거대한 기계처럼, 톱니바퀴 가득한 무서운 장치처럼 기괴한 굉음을 내면서 돌아가는, 철저하게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될 수없도록 프로그램된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세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처음엔 없었다가 새로 생겨난 듯 하지만, 사실 내가 볼 수 없었을 뿐 원래부터 존재해 온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통제불가능의 힘이었다. 그 기계가 내 앞에 토해놓는 것들은, 그것의 대부분은 상식 밖의 것들이었다.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내 상식 밖의 상식들이었다.


아마도 특정 나이가 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도록 장치인 것 같다.


살아있다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 앞에도 이 기계가 나타나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보도 못했던 새로운 상식을 막 뱉어내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만큼 든 지금, 기존의 상식과 새로운 상식이 내면에서 충돌과 융합을 일으킨다. 정의와 힘, 자유와 불평등, 권력과 조직, 범죄와 윤리, 진실과 왜곡, 경륜과 아집, 거짓과 친절, 고집과 노망...


지금까지 내 상식 안에서는 도저히 동행 불가능했던 개념들이 나타나 내 속에서 나와의 타협을 시도한다. 타협을 너머 투쟁이 되기도 한다.


이 싸움에서 지면 현실과 타협한 꼴통이 될 것이며, 이긴다면 혁명투사가 될 수도 있다. 이 투쟁에서 지면 군중 속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이긴다면 죽을 때까지 힘든 고난의 삶이 될 수도 있다.


선택과 결과는 불확정적이다. 그렇다고 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상식은 변화무쌍하니 상식적인 지식이 아닌 절대적인 지식을 배우자. 지식의 양이 상식의 범주를 확장시킨다는 말은 사실이다. 또한 어설픈 지식은 죄악을 낳는다는 말 또한 사실이다.


최악인 상식들이 존재한다. 이를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내 전두엽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일이 최우선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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