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13
'어느 승려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 마리의 새가 날기 위해서는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지혜와 자비심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1992,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에 나오는 문구이다.
'지혜와 자비심이 함께하지 않으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오래전에 읽은 '오래된 미래'인데, 아직도 이 문구가 나를 놓지 않고 있는 듯하다. 아니,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오로지 지혜만을 좇아왔다. 책 속에서, 대화 속에서, 수많은 매체 속에서 나는 나의 빈 머리를 채워 줄 지식만을 갈구하였으며, 또 그렇게 얻은 지식을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남용하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스스로 자비로움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지식과 지혜만이 내가 깨달음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했다.
잠시 다른 이들의 무지를 통해, 아니, 그들보다 많이 안다는 자만에 의해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착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깨달음도 아니었고, 깨달음이었다 해도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었다. 자비가 없었기에 진심이 아니었으며, 진심이 아니었기에 자신에 대한 기만이었다.
오늘 갑자기 진실된 자비심에 대한 극심한 갈증이 솟구친다. 원래부터 내 인생에는 자비라는 그런 선량한 심성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한때, 흉내 내듯 누군가를 위해 아까운 내 시간을 잠시 내어주기도 하였으며, 배고픈 이를 위해 내 밥그릇을 기꺼이 내어 준 적도 있었다. 일부러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의도적으로 찾아내어 우연인 척 살려주며 알량한 관대함을 베풀기도 했다. 내 눈에 안 띄었으면 더 안전했을 벌레들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은 자비심이 아니라 의도적, 계산적 희생(시간 낭비)이었다. 당연히 그 의도된 계산이 전혀 예상과는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눈먼 행운이 내 거짓 자비라는 엉성한 그물에 실수로도 걸려주지 않았다. 마지막엔 작은 복권이라도 하나 당첨되겠지 하는 엄청난 희망적 착각도 했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될 일이 없지 않은가. 아마 이때는 잠시 자비, 선행 따위는 도덕 교과서용이지 일상용어는 아니라고 우기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내려놓은 것들이 있는지 한결 홀가분하지만, 아직도 나의 좁디좁은 본성으로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는 자비심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생긴다. 욕심으로 될 일이 아닌데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했었던 희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거짓 희생이었다. 희생과 자비는 다른 것이다. 희생은 의도될 수도 있으며, 돌발적일 수도 있으며, 강요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비는 심성에서 은연중에 눈치챌 수 없게 배어 나오는 '뭔가'이다.
'자비', 지혜로운 자비심을 가지고 싶다. 오늘은 누군가 길에 의도적으로 흘린 자비를 하나 주울 수 있을까? 제발 그 자비는 섣부른 동정도 아니며 기만된 적선도 아닌 지혜로운 공감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