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당하는) 사람들 1(과 강박)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12

by 정로각심

일상에서의 소소한 변화가 있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3자 적인 것이지만, 개인의 일상에서 규칙적으로 관찰되던 항상성을 가진 대상에게 생긴 변화이기에 작은 변화지만 의식적으로 관측된 상황이다.


집 앞에는 둘레가 약 1km 정도 되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거실창을 통해 저수지의 전경은 전체가 조망이 가능하다. 그렇게 많은 주택이 밀집된 주거지는 아니지만, 아파트 단지 두 곳과 기타 공동주택과 단독주택들이 느슨하게 밀집된 동네라 저수지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


그중 새벽녘이면 유독 눈에 띄는 산책자 둘이 있다. 지긋한 연륜이 드러나는 여성과 덩치가 조금 있다고 느껴지는 20살 전후의 남성으로 그들의 관계는 어머니와 아들로 보인다. 그들은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해 뜰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란히 저수지 둘레를 오랫동안 몇 바퀴 걷는다.


특이한 것은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걷는 동안 둘은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안 볼 때 짧은 대화는 할 수 있기에 아예 없다고 단정하지 못하지만, 내가 볼 때는 둘은 언제나 대화 없이 다른 이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앞뒤로 나란히 서서 빠르게 걷는다. 엄마가 두세 발자국 뒤에서 걷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산책 속도는 거의 매일 일정하다. 다른 산책자에 비해 조금 빠른 편이다. 그리고 산책을 하는 방향도 시계가 도는 방향으로 지난 2년이 넘도록 변화가 전혀 없다. 다른 산책자들은 중간중간에 풍경을 구경한다던지 아니면 스트레칭을 한다고 잠시 멈추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불규칙적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가끔 신발끈이 느슨해지거나 풀릴 경우 규칙적인 행동패턴에 변화를 잠시 줄 뿐이다. 그것도 무심하게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조치된다.


이들 말고 또 한 팀의 모자로 구성된 산책자가 있는데, 좀 더 젊은 엄마와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거동이 불편한 남자아이로 구성된 팀이다. 그들은 앞 팀만큼 규칙적이지 않다. 그리고 아이가 발랄하여 대화도 많이 한다. 엄마는 뒤따라가며 거동이 불편한 아들의 운동에 대해 연신 코치를 해댄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가끔 볼 수 있다. 그들의 산책패턴은 규칙적이지 않기에 변화를 감지하기도 쉽지 않다. 변화가 없거나 적을 경우 관측대상에서 자주 밀려난다.


하지만 전자의 그들은 지나치게 규칙적 일뿐만 아니라 산책 내내 유지되는 말없이 경직된 분위기에 의해 나의 관심을 크게 끌고 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일찌감치 내린 나만의 분석은 스펙트럼장애(자폐)를 가진 아들과 엄마의 산책으로 엄마가 아들의 건강과 조금이나마 자폐증상의 개선을 바라는 마음으로 새벽마다 아들을 데리고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에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인 규칙적 행동패턴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산책의 처음 시작은 엄마가 주도하여 반강제적으로 잠을 좀 더 자고자 하는 아들을 이끌고 나왔겠지만, 이후 크게 부담 없고 무리가 가지 않는 규칙적 산책에 아들이 적응하며 산책을 자신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일상 규칙으로 인정한 후에는 엄마가 아닌 아들에 의해 주도되는 산책운동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한번 무언가에 꽂혀버리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특성이 스펙트럼장애의 특성 중 하나이다. 자신의 세계에 한번 갇히며 주변의 어떠한 자극도 차단시켜 버리는 특성이 이들을 대화 없는 산책자로 만든 원인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새벽 산책은 일 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강박적 규칙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런 그들의 규칙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산책의 방향이 바뀌었다. 항상 시계방향으로 돌던 것이 오늘은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 무슨 일일까? 둘이 싸웠나? 왜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지? 어제도 이 방향이었나? 가끔 반대방향으로도 돌았는데 내가 보지 않을 때 만이었나? 내가 왜 놓쳤지? 내일도 이 방향으로 돌까? 그냥 일상의 변화를 줘본 것이라면 진작에 더 자주 변화를 줘도 될 일이지 싶은데 왜 2년 넘도록 한 번도 바꾸지 않던 방향을 지금 바꾸는 것인가? 이건 그냥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시간이 긴 게 아닌가? 2년이면 세상의 모든 습관이나 물리적 운동이 고착되어 함부로 바뀌지 않아야 하는 세월 아닌가? 내가 당신들의 작은 변화에도 이렇게 크게 궁금해하고 의문을 가지고 머리를 굴리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만큼 변화가 함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시간의 길이가 아닌가?


갑자기 저들의 강박이 나의 강박이 되어버렸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아침부터 남의 일을 나의 강박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이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패턴 변화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만 저들이 끌어들인 나의 강박에서 풀려날 수 있다. 아마도 엄마의 꾸준한 노력 덕에 아들의 장애증상이 조금 나아지고 있다는 결론으로 합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완치는 없다지만 자신의 변화는 일도 용납되지 않던 세상에 변화를 인정한 아들의 큰 용기가 그들을 규칙적 산책패턴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 생각하자. 사실일 수도 있다. 대화를 하는 걸로 생각하자 엄마의 거리가 한보 가까워져 있다. 그냥 지속적 관찰이 가져온 소소한 변화에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작은 지혜로 생각하자.


작은 세상뿐만 아니라 넓은 세상도 똑같다. 한나라의 정치외교, 사회경제, 도시문화 등, 또한 오랜 시간 꾸준한 관찰을 통해 변화를 감지하고 변화에 대응할 방법을 눈치챌 수 있다. 길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4~5년의 기간 동안 매일 관찰을 하다 보면 작은 변화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고, 또 그 변화가 바른 지 그른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도시는 이러한 관찰에 의해 디자인되어야 하며, 우리의 사회는 관찰을 통해 관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는 진보와 보수는 일정한 사이클(진보가 2보 전진하면 보수는 1보 후퇴하는 규칙성.. 우리나라에는 진보가 없다. 보수를 사용하기 위한 차용이다)을 가지고 있기에 관찰을 통해 통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모든 규칙적이든 불규칙적이든 관성을 가진 것은 관찰 대상이며, 긴 호흡의 관찰을 통해 오류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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