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15
나는 가끔 뜬금없는 상상을 한다. 일상에 전혀 필요가 없는, 또 생산성이라고는 일도 없는, 그리고 의미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는 망상을 자주 한다. 다른 말로는 멍(청)함을 즐긴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현실의 힘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질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도 쓸데없는 망상을 한다. 뜬금없이 전생의 존재 여부가 궁금하다. 완전히 뜬금없는 생각은 아니다. 방송에서인가 유튜브에서인가 전생 이야기가 나온 것이 나의 뇌리에 박혀있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다. 사실 나는 철저한 과학이성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전생이나 내생, 귀신이나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도 문화가 흥미 위주의 소재를 자주 다루다 보니 어쩌다가 나도 엮여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신을 과학으로 풀어보자.
전생이란 게 진짜 있을까? 전생이라는 말은 이번 생 이전의 생이라는 의미인데, 그래서 드라마 등에서 현대인의 전생은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로 이미지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전생이 꼭 시대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이전이어야만 할까? 만약 전생이 진짜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과거일 이유는 없지 않을까? 10세기나 15세기에 죽었던 사람이 21세기에 후생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30세기에 죽은 사람이 21세기에 후생으로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안될 이유는 아직까지 없다.
우리가 가끔 천재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아마도 미래를 전생으로 가졌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 시간이 미래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은 오산일 수 있다. 시간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다 흐를 수 있다. 이는 최근 양자역학과 동시성에 몰입된 물리학에서 가끔 나오는 이야기이다. 즉 시간이 미래로 흐를수록 과거의 시간은 축적된다. 축적은 그쪽으로 시간이 쌓인다는 의미이다. 시간이 과거로 흘러서 '채워진다'로 바꿔 말할 수 있다. '흐른다'가 의심스럽다면 시간은 미래로도 팽창하고 과거로도 '팽창한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과거는 현재가 누적된 것이지 미래가 현재를 거치지 않고 과거로 팽창되어 축적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가정은 거짓이 된다. 다시 과거로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을 과거로의 방향이 아닌 누적된 시간의 양으로 바꿔보자. 재미있는 것은 시간의 양이 많아지면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시간을 사건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간이 미래로 흐를수록 미래의 사건은 줄어들고 과거의 사건은 확률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미래는 현재를 거치지 않고 과거에 축적될 수 있음이 대충 증명되었다. 가정은 유효하다. 실증만 하면 된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미래에 일어나야 하는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발전하는 동력은 이러한 사건들 때문일 수 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 같은 이들은 전생이 미래였던 사람들일 수 있다. 미래가 과거에 나타나 현재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러한 비상식적 이야기를 그럴싸한 논리로 풀어내는 것을 궤변이라 한다. 그리고 이를 말하는 자를 궤변가라 한다. 요즘 너무 쉽게 궤변을 말하는 자와 너무 당연하단 듯이 혹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정치에서 더 그렇다. 우리는 정치경제에서 발생하는 궤변(가)을 사기(꾼)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