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따윈 개나 줘 버린) 시대정신 4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4

by 정로각심

가지지 못한 자들의 삶이 이토록 처절하고 고통스럽다면, 가진 자들의 삶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못 견디게 행복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왜 가진 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거나 행복해하지 못하는가? 그들의 모습에선 만족과 행복의 모습을 읽어 낼 수가 없다. 못 가져 부족하고 행복하지 못해 오는 고통이 이 정도라면 다 가진 자들의 행복은 뭔가 특별하게 달라야 한다.


다 가진 자들의 얼굴엔 오로지 채워지지 않는 탐욕의 그림자만이 짙어져 갈 뿐이다. 그림자가 다 그렇듯 탐욕의 그림자의 이면에는 빛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 빛이 최상의 행복인 줄 안다. 어쩌면 진짜 행복일 수도 있다. 그들은 탐욕의 그림자를 넓게 드리워 가지지 못한 자들이 빛을, 행복을 취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은 태양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을 착각한다. 그리곤 너무도 당연하게 인간은 스스로 빛의 힘을 이용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망각한다. 태양의 힘은 가장 낮은 곳을 거쳐야 가장 높은 인간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이 식물처럼 광합성을 한다면 모를까. 태양의 에너지는 땅을 거쳐야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욕망으로 가려버린 빛이 가장 낮은 곳에 다다르지 못함을 깨닫지 못한다. 진실은 그렇게 망각된다.


그들은 스스로가 만든 삶의 논리 중, 가장 잘못된 논리에 길들여져 행복의 의미를 착각한다. 때문에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행복추구라는 삶의 논리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은 결국 모든 인간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모두에게 허상이 되어버린다. 가진 자는 무지해서, 못 가진 자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해서 목적에 다가설 수 없다. 결국 타협하지 못한 두 질서는 하나의 사회 울타리에서 공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질서에서는 혼자라는 것이 없다.


곧 끊임없는 질서 잡기가 그들 내부에서 시작된다. 여럿이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되고, 마지막 하나가 반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 반이 또 반이 될 때까지... 그 반의 반이 또 반이 될 때까지... 결국 사라질 때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논리는 질서 잡기를 통해 성립될 수 없음이 필연적으로 증명된다. 하지만 의식이 있는 한, 욕망은 절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설령 그 목적이 행복이 아니더라도 질서 잡기는 가진 것에 대한 유희적 수단이 충분히 될 수 있기에...


그들에게 질서가 존재하는 한, 행복 따위야 전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랄 같은 세상에선 행복 따위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가진 것'에 대한 단순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실체가 아닌 허상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개념이 텅 빈 껍데기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의 대립 상황이 아닌 상태를 행복으로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우리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고대 귀족의 종교였던 불교는 이생의 곤고한 중생들을 극락과 내생으로 기만했다. 중세교회는 무지한 백성들을 속여 천국에 행복이 있다며 천국행 티켓을 팔아먹었다. 아무도 무엇이 행복인지, 또 행복이 현실에 있음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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