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8
건축에서 '창조적 사고' 아직도 유효한가?
건축뿐만 아니라, 창작적 행위가 요구되는 디자인 분야 전체를 살펴보면 항상 강조되는 용어가 몇몇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용어는 바로 '창조성' 또는 '창조적 사고'와 같은 용어일 것이다. 앞선 디자인에 관련된 글들에서도 이 창조성과 창조적 사고에 대해서 언급하였지만, 딱히 이것이 창조성이고 창조성을 위한 사고는 이것이다라는 결론은 내릴 수 없었다. 다만 디자인에서 창조성은 어렵고 힘든 것이므로 어려운 창조적 디자인을 대신할 방법론으로 다른 방안을 제시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창조적 사고’는 학교나 사회에서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 또는 실무자들에게 여전히 강요되고 있는 디자인 방법론의 핵심 개념이다. 특히, 학교는 과거나 지금이나 창조적 사고를 통한 창조적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법을 교육의 최우선에 두고 있는 곳이다. 학생들이 지금도 학교 설계실에서 밤낮을 안 가리며 열심히 고뇌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창조적 건축디자인이다. 우리가 교육을 받던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건축디자인에서는 여전히 카피나 모방은 죄악시되며, 무조건 완벽한 독창성 도출만이 허용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건축 교육에서 과연 최선의 방법일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결과는 완벽하게 창조적이지 못함에도 과정은 철저하게 창조적이어야 하는 우리의 건축 교육은 정상인가?
건축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디자인 분야에서 배움의 과정에서나 실무에서 최우선으로 강조되고 있는 창조적 디자인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까지가 창조이고 어디까지가 모방일까. 나는 창조적 디자인, 창조적 사고가 무엇이며, 우리가 그것의 방법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가 항상 궁금하다. 그래서 가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작업들이 정말로 창조적 작업일까?"
"만약 이것이 창조적 작업이라면, 수도 없이 만들어진 디자인의 결과물들은 왜 위대한 창조물로 칭송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창조적 디자인이 아니라면, 굳이 교육에서 창조적 사고를 그렇게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학교에서 배움을 실천하는 학생들은 지금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작업들이 세상에 없었던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아주 신중한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모습에서는 창조라는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고통스러움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 현장에서 20년을 넘게 디자인 관련 교육을 했던 나에게도 '창조적 사고'는 그리 쉬운 게 아니며, 또 제대로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직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오죽할까 싶다. 학생들의 창조적 사고에 대한 의무감과 교수들의 요구가 어떻게 보면 자유로운 사고에서 나와야 하는 아이디어를 역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제 디자인에서 특히 건축디자인에서 '창조'라는 용어는 사라지면 어떨까?"
말이 '창조'이지 사실은 '우연'에 가깝다.
창조성은 무엇이며, 창조적 사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참 답 없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면 한번 고민해 보자. 창조성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목적 달성을 위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로또처럼 어느 순간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막연한 기대나 노력만으로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창조성은 세상을 보는 눈이기 때문이다. 눈이기는 한데 사람의 눈이 아니라 신급의 눈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쉽게 보지 못하는 세상의 숨겨진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며, 역동적인 패러다임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들은 선택적 필요성을 가진 개념들이라 노력보다 우연에 좀 더 친하다. 어찌 보면 스치는 우연을 나와 관계시키는 능력이 진짜 창조력일 수 있다.
100번 이야기하지만, 100%의 독창적 아이디어나 창의성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분명 새로운 트렌드, 패러다임을 바탕에 두고 있다. 모방일 수도 있지만, 그냥 모방이라기보다는 참조하는 응용력이며 적응력이다. 귓가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 하나하나에서, 누구에게나 스쳐 가는 바람결 하나하나에서 필요한 것을 걸러내는 능력, 그것이 창조력의 원천이다. 노력을 많이 하면 필연도 되겠지만, 세기적 창조성은 우연에 가깝다. 그런 우연을 잡는 것도 노력이다.
하지만, 이 우연은 아직 내적 필연성을 가지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라는 결과적 조건에 필연을 관계시킨다면, 난해한 변증법적 관계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변증법적 관계란 서로 대립하면서도 그 대립을 통해 발전하는 관계를 말한다. 즉, 필연이 어떤 일이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법칙·본질이라면, 우연은 그 구조에서 일어나는 개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될 수 있다. 건축이라는 필연은 우연이라는 창조성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 헤겔은 '필연은 우연을 통해서만 현실화된다'라고 했다. 이들의 변증법적 사고를 통해 우연을 필연적 창조라는 거창한 개념으로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우연은 창조의 한 방법이라는 당위성이 성립될 수도 있다.
교육은 매일 창조적 사고를 하라고 강조하는데, '창조적 사고'란 게 배우는 입장에서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또 다른 필요에 의해 창조적 사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까라면 까야하는 세상이다. 이 나라, 아니 어느 나라에서든 디자이너는 신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꿰고 있어야 하며, 그 필요한 뭔가를 요구하면 즉시 만들어 내어야 한다. '창조'를 삶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 하루하루 바쁜 신을 대신해 그의 업무를 대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신은 우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필연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창조는 신에게 주고, 우연은 우리 인간이 가지면 어떨까? 필연 보다 우연이 세상을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뭔가 있어야 한다면 '발전적 사고'라 하자
창조란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창조 :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서 명료하게 설명이 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신도 아닌데 창조가 말이 되나? 신만이 필요를 알고, 신만이 적재적소에 행하는 창조를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따라서 신만이 행하는 것이 창조라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가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용어로 대체되어야 할 수도 있겠다. '우연적 사고'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가치가 상실되는 느낌이다.
만약 대체되어야 한다면 가장 적합한 단어로는 '발전'이 있다. 수백 년 내려온 용어의 사용이 이게 어디 누구 하나의 생각만으로 변화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발전'이란 용어는 변증법적 유물론자들이 참 좋아하던 용어였으며, 우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보다 낮은 질에서 보다 높은 질로 이행하는 것'의 뜻을 내포한 상승적 의미로서의 '발전', '발전적 사고', 참 듣기에 괜찮은 용어이다. 우연보다는 백배 낫다.
갑자기 왜 대체용어를 들먹이냐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창조인데, 사실 우리 인간의 행위를 표현하는 수많은 용어 중 창조라는 용어는 제외하여야 한다는 조금은 급진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세상에는 우리가 창조라는 이름으로 만든 것 중에서 진정한 창조의 개념을 붙일만한 업적은 거의 없다. 있다면 지금 우리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일 수 있겠다. 수레바퀴 혁명, 불의 혁명, 산업 혁명, 인터넷 혁명, AI 혁명 등이 될 것이다.
이들도 현재에 와서 결과를 시간적으로 단편만을 봤기에 창조적 혁명으로 보이겠지만, 당시 해당 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보면 창조보다는 지난한 발전에 더 가깝다. 과거를, 역사를, 전자를 한 단계씩 시간을 두고 발전시킨 결과인 것이다. 발전은 인류사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서사적 용어이다. 발전은 더 나은 향상이나 진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철학적으로는 방향성을 가진 변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근대철학에서는 '진보'라는 용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진보는 혁신적 의미도 가지므로 발전적 사고는 진보적 방향성을 가진 혁신적 사고가 되는 셈이다. 혁신은 기술과학이 주도하고 있으니, 다자인은 가장 무난한 발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현대에 들어 인류의 발전이 가져온 인간 소외, 환경 파괴, 불평등 심화 등과 같은 부정적 견해도 있지만, 그 책임은 혁신을 주도한 과학기술에게 떠 넘기고 디자인은 진보적 변화를 위한 조화로운 발전으로 생각하자. 인간 소외, 환경 파괴, 불평등 등은 건축디자인의 발전적 사고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건축에는 그만한 잠재력이 있다.
건축디자인에서 창조적 사고라는 말은 이제 발전적 사고라는 말로 바꾸자. 이제 건축디자인에서는 '창조', '창조성', '창조적 사고' 등의 용어는 사용하지 말자. 건축가들에게 사고의 자유를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