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1(권력이 만만한가?)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05

by 정로각심

아놀드 토인비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아마도 <역사의 연구>라는 책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권력은 사람을 밝혀준다.' 즉,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본성(인간 됨됨이)이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의미이겠다. '밝혀준다'는 긍정적 느낌인데 토인비는 권력을 아주 좋게 본 모양이다.


서양의 역사적 사고방식에서는 권력이란 게 엘리트주의에 근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권력의 의미에는 '애민', '봉사', '박애', '자비' 등의 긍정적 개념이 포함된다. 물론 가끔 변형된 권력의지가 변태적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기본 베이스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사회나 국가가 움직여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암묵적 합의가 잘 구축된 사회였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일본만 해도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잘 지켜지는 것 같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의 민족성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 인정하는 민족이라고. 사회적 합의라고 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본능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철저한 경계 구분, 귀족과 평민의 신분 질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권력자(집단)와 민중의 주종관계에 불필요하게 도전하지 않는 그러한 본능적 삶이 그들의 방식이자 의지라고 하였다.


근대에 접어들어 서양은 소수에 의한 엘리트주의를 민중혁명을 통해 사회적 민주주의로의 혁명적 쟁취를 이루어냈다. 아마도 이러한 투쟁을 통한 전환이 서구에서는 소수 엘리트에서 민중으로 권력의 근원과 도덕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양과 정착을 가져온 것 같다. 권력이 무엇인지, 힘이 무엇인지, 민중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권력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그들은 직접 경험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역사상 단 한 번도 민중이 주체가 된 혁명을 성공한 적이 없다. 홍경래의 난이나 동학농민운동 등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후대에 이들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졌으나 실패는 실패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에서 권력이 민중에게 있음을 직접 체험한 바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이론에는 완벽하다. 민중혁명이 있었어야 할 시기, 일본강점기를 거치면서 외압에 의해 이상한 방법으로 조선의 봉건주의가 막을 내렸으며, 또 한국전쟁을 통해 신탁통치라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는 민중의 쟁취가 아닌 개인의 권력투쟁의 결과로 전락했다.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교과서로 배운 민주주의인 것이다.(사실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우리의 정치는 준비도 안 된 이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래서 항상 시끄럽다. 국민을 위한다는 거짓 아래 개개인의 욕망이 이끌어가는 막장정치가 된 지 오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우리 근현대 정치사를 이끌어 왔다. 개천을 뒹굴던 각설이도, 평생 논밭을 일구며 살아온 일용이도, 도시의 공장에서 노동헌장을 외치던 덕팔이도 국민에게 있다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권력'을 꿈꾸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매스컴을 탄 의인, 국제대회 금메달리스트, 심지어 TV에 잘 알려진 탤런트까지, 우리의 정치는 권력에 대한 무한한 기회가 열린 사회가 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어설픈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개개인이 권력을 만만하게 보고 끊임없이 권력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태어나 지도자 교육이나 정치교육을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권력을 꿈꾼다. 어설픈 민주와 자유를 외치면서 권력을 통한 힘의 쟁취를 꿈꾸고 있다. 심지어 똥개들도.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지침을 오독하지 말아야 한다. 무지한 권력은 곧 폭력이다. 지금 당장 현장에서 생생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군주에게 바친 <군주론>에서 가지지 못한 자가 권력을 얻으면 안 된다고 했겠는가? 못 가진 자가 권력을 잡으면 본전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못 가진 자란 없는 자도 되지만, 한 번도 정치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자도 포함된다. 권력이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수 없어 권력이 내 앞에 뚝 떨어져도, 내게 맞지 않으면 그 말로는 뻔하다. 권력은 아무나 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권력을 탐하여 권좌에 오른 사람치고 됨됨이가 바르게 드러난 사람 또한 드물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기지 않았는가. '권력은 사람을 부패시킨다.' 필연적으로.


하루에 많으면 수십 번 문자와 전화가 온다. 선거철인가 보다. 잘들 생각하시라. 내가 꿈꾸는 권력이 내가 가져도 될 권력인지. 수백만 번 생각하시고, 수천만 번 고민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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