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시골의 겨울은 유난이도 춥다.
12월이 지나면 농촌은 이미 겨울채비에 들어간다. 추수가 끝난 논과 밭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벼를 벤 논에는 벼줄기만 조금씩 남아있고 도랑의 물도 흐름이 멈춘다. 물이 흐르다 조금 고여 있는 곳은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겨울바람은 한번 불면 거침없이 마을과 농촌 들녘을 스치고 지나간다. 일기예보란 것이 별로 없다. 그냥 어르신들이 예측하는 대로 추워진다고 하면 그것이 겨울의 시작이다. 그래도 그때는 삼한사온의 변화가 뚜렷했다.
내가 살던 마을은 길 하나로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면사무소가 있고, 그곳을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정도 달린다. 평화여객, 삼남여객, 부안여객, 그리고 가끔씩 우리 면에 정차하지 않는 직행버스도 지나간다. 먼지를 자욱이 일으키며 울퉁불퉁한 신작로 길을 달리는 버스는 면사무소 정류장에 올 때쯤이면 도착을 알리는 경적을 울리고 서둘러 탈 신호를 보낸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바리바리 싼 물건들을 양쪽 손에 들고 차가 도착하여 문이 열리면 안내양의 도움으로 힘겹게 차에 오른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버스는 출발하고 시커먼 매연을 날리며 줄포를 향해 달린다. 그때 나는 떠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돈이 있어야만 버스를 탄다.
친척 누나가 서울에 직장 잡으러 상경했다가 설날이면 잠깐 고향에 내려온다. 나는 서울에서 오는 누나를 배웅하려 소복이 쌓인 눈길을 헤치고 걸어 면사무소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무슨 서울 말씨를 쓸지 기대하며 추위에 누나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항상 설렘이고 희망이다. 누나의 서울생활 이야기, 그리고 포장지에 싸서 가져올 내 선물을 생각하며 정류장을 지키던 그때 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상서면 소재지는 면사무소, 국민학교, 농협, 상점, 이발소, 미장원, 주점, 대폿집, 파출소, 행정사사무소, 그리고 버스 정류장이 있다. 지석리마을로 가는 길에는 피란민 마을이 있고, 마을중간에는 종탑이 있는 조그만 교회 예배당이 있다. 멀리 산 위에 하얀 의상봉이 보인다.
면은 각 동리에서 온 사람들로 늘 활기차며 서로 어른들의 안부를 묻는 인정이 있는 곳이다. 볼일을 보며 부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오거나 면사무소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어른들이 면으로 갈 때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며 십리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걸어서 가기도 했다. 면에서 여러 동리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고, 안부도 물으며, 살아가는 모습과 서울 사는 아들딸들 이야기로 많은 이야기 꽃이 핀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가오마을은 40여 가구쯤 있으며, 황토로 벽을 지은 초가집들이 많고, 조금 잘 사는 집안은 콘크리트로 집을 지었다. 파란 함석지붕으로 개량한 집은 비가 오면 지붕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을 수 있다. 마을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어린이들이 있고, 아침 동이 트고 해가 떠오르면 아침밥을 서둘러 먹고 보자기로 싼 책가방을 가슴에 멘 채 하나둘씩 집을 나와 꾸불꾸불 신작로 길을 걸어 학교로 간다. 같은 반 친구, 앞. 뒤집 친구들은 먼저 나와 기다리다 동네 어귀쯤에서 함께 출발한다.
학교 가는 길은 큰 신작로길 하나로 언제 출발해도 이 길에서는 누구든지 만날 수 있다. 가끔은 빨리 가려고 논을 가로질러 좁은 길을 가는 친구도 있지만 학교 정문쯤 도착하면 거의 모두를 만나게 된다.
고향의 봄은 따뜻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시작된다.
마을 초입에는 큰 당산나무 하나가 버티고 서서 우리 마을을 든든히 지키고, 여름 더위에 지친 어른들이 잠시 누워 잠을 자는 모종도 하나 있다. 마을 앞에는 꽤 긴 개울이 흐르고, 소나기가 많이 오는 여름에는 이 개울은 무섭게 물이 흘러 파도 같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뒷마을 쪽으로 흘러간다.
마을 중간쯤에 물펌프장이 있는데 이곳을 기준으로 앞동네와 뒷동네로 나눈다. 앞동네보다는 뒷동네에 사람들이 더 많이 산다. 마을 길을 따라 삥 둘러 이어지는 길 앞쪽에는 낮은 밭들이 있다. 겨울에는 여기에 심어놓은 당근이랑 무가 눈이 많이 내리면 하얗게 눈 속에 덮여 있다가 햇볕이 비추고 눈이 녹으면 조금씩 뿌리가 흙 위로 올라온다. 여름에는 마을 뒤에 키 큰 수수밭이 있고,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꽤 많은 가지로 풍성하게 녹음을 만들어 우리는 그늘밑에서 시원하게 뛰며 놀았다.
뒷동네 마을 끝을 지나면 다시 차가 다니는 큰길이 나오고 다른 동네로 가는 길이 된다.
학교 가는 길에 이제 막 겨울이 지난 밭에는 달래, 냉이, 나물들이 어린잎으로 올라오고 동네 누나들은 캔 나물들을 바구니에 가득 담고 있다. 여기저기 울긋불긋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멀리서도 볼 수 있다. 밭에는 보리잎이 추운 겨울 눈얼음을 뚫고 올라오며 조금씩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자운영 꽃이 온통 울긋불긋 만발하고 어느새 여기저기 봄을 알리는 벚꽃이 핀다. 학교 가는 길은 울퉁불퉁 자갈길로 바람이라도 불면 하얀 먼지가 날리며 회오리를 일으킨다. 봄비가 오고 나면 움푹 페인 곳에는 물이 고이고 학교 가는 길에 친구들과 장난치며 뛰어가다가 웅덩이에 빠져 흙탕물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학교 가는 길 거의 다 오면 옹달샘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그곳을 안양샘이라 부른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그 고인 물속에서 붕어와 송사리, 소라, 다슬기가 잔잔한 맑은 물을 마시며 잘 자라고 있다. 이 샘은 늘 물이 마르지 않고 물색깔도 플랑크톤이 많아 녹색이다.
여름에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과 이 샘에서 세수하고 손. 발을 씻으며 샘에 비친 내 얼굴도 쳐다보았다. 샘 주변가 물풀에는 송사리가 몇 마리 숨어 있다가 우리가 물 가까이 가면 놀라서 금방 쏜살같이 도망간다. 안양샘은 우리가 학교 가는 길에 늘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왔던 내가 태어난 도리미 마을은 앞동네, 뒷동네 합쳐 겨우 열 집 정도가 모여서 살고 있었다. 마을 앞은 넓은 논이 있고 멀리서 장절마을이 보인다. 그 뒤에는 논에 물을 공급하는데 쓰일 담수호 사산지 저수지가 있다. 우리 마을 뒤에는 조그만 산이 있고, 우리는 뒷산에 올라가 나무도 꺾고 고사리도 따며, 대보름날 쥐불놀이 하는데 쓸 소나무 관솔도 여기서 땄다. 친구들과 영화배우 놀이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지붕 위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뿌였게 올라올 때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나면 각자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가을에는 친구들과 벼를 베고 난 논에 들어가서 축구놀이도 하고 볏짚을 친구 삼아 숨바꼭질 놀이도 한다. 여름밤에는 집마당에 모기향을 피워놓고 어른들은 오손도손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면 우리들은 친구들과 함께 몰래 앞마을 밭으로 가서 어른들이 심어놓은 수박서리를 하다 주인한테 들켜 수박이 달린 줄기를 뿌리째 뽑아 가지고 도망치다 큰 담배나무속으로 숨는다. 한참 후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옷에 흙이 잔뜩 묻힌 채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면에 갈 때 내가 간다고 하면 자전거 앞쪽에 나를 태우고 다녔다. 길이 울퉁불퉁하여 오랜 시간 타고 가기에는 불편하고 엉덩이가 아팠다. 논옆 도랑에는 늘 송사리와 붕어들이 놀고 있다. 소낙비라도 내리고 나면 물고기가 한꺼번에 몰려와 도랑에는 고기가 많아진다. 엄마 몰래 어레미를 가지고 나와 붕어를 잡다가 엄마한테 혼 난 적도 있다.
겨울이 오면 날씨는 춥고 바람은 매섭게 분다. 거칠 것이 하나 없는 마을에는 새벽부터 하얀 눈이 펑펑 쌓여 길이 보이지 않고 텃밭에 심어 놓은 무, 배추가 눈 속에 파 묻힌다. 마을길도 눈으로 덮여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해 가끔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모든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인다.
설날이 오는 날은 항상 눈이 쌓여 있다. 설날에 우리 식구는 이웃마을 전 씨 집안의 제일 큰 어르신 할아버지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간다. 엄마가 사주신 새 양말을 신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함께 큰 할아버지 댁으로 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복에 마고자를 걸쳐 입었다. 다른 동네에 흩어져 살고 있던 할아버지 형제 자녀들이 한 가족으로 모인다. 여자들은 부엌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며 전을 부치고, 남자들은 과일과 밤을 까며 그릇도 잘 씻어 차례상에 올릴 준비를 한다.
우리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반가워하며 놀기에 여념이 없다. 준비가 되면 상위에 음식을 올리고 술도 따르며 차례상 앞에서 어른들 순으로 서서 순서에 맞춰 절을 올리고 선조들에게 감사의 예를 표한다. 우리들은 세 번째 줄 뒤에 서 있다가 차례가 되면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차례차례 절을 한다. 조상에게 절을 하고 나면 가장 어르신부터 차례로 세배를 받는다.
나는 세뱃돈을 은근히 기대하며 공손히 절을 하면서도 눈은 항상 앞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세배를 마치고 나면 다음은 마을 어르신을 찾아 세배를 드리는 일이다. 윗동네부터 내려오면서 어른들이 있는 집을 찾아 세배를 올리면 어른들은 동전이나 곶감, 대추, 그리고 박하상 과자를 세배 선물로 준다. 세배를 마치고 끝날 즈음에는 날은 어두워지고 우리들 바지 양 주머니에는 선물들이 가득 찼다.
나의 어린 시절 설날 이야기였다.
그때 책가방 메고 함께 학교 다니며 줄지어 세배하던 친구들은 이제 칠십을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되었다. 가족 따라 고향을 떠난 지도 거의 50년이 흘렀다. 지금은 모두 도시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받았던 어린 시절 세뱃돈과 곶감들을 이제는 손자에게 돌려주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하염없이 쌓이는 함박눈을 바라보던, 가끔은 초가지붕 아래 햇살이 비추는 돌담 옆에서 고드름 따먹고 장나치던 그 친구들은 지금 옛 추억을 그리며, 설날의 풍경을 마음속에 그린다.
좁은 집에서 어머니가 힘들게 준비하시던 음식과 설 차례상은 자식들에게서 받는 세배보다 더 큰 고생이었다. 설 명절날 음식준비로 고생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아들들에게 설날에 호텔 뷔페에서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였다. 여러 음식과 깔끔한 식탁, 남산이 우러 보이는 뷰가 있는 자리에 앉아 조금씩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먹는 재미는 가족모두의 즐거움이 된다.
이제 세배를 할 부모는 없다. 내가 세배를 받고 있다. 어린 기억 속에 함께 보냈던 시골 친구들의 모습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세월이 흐르고 사는 모습이 바뀌어도,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달라도 가끔 생각나는 것은 고향의 추억이고, 그 집에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우리 가족 식구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의 겨울이 기억나고 그리워지며, 설 명절의 풍경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