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카페에서
"겨울이 길어지면 산그늘 아래
작은 카페는 불을 밝히고,
흰 눈이 군데 둔데 서로 다른 색을 띠고 있네
잔잔한 음악과 산새 노랫소리는
커피에 녹는다.
생각도 쉬어가는 곳, 자기들의 이야기를
담아 또 다른 길을 향해 떠가겠지."
시원하게 뚫린 문산 가는 길 자유로는 한강을 끼고 달리는 기분과 여러 모양 건물들로 드라이브를 하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옛날에는 이 길로 문산 가는 길은 하나였는데 지금은 제2자유로가 생기면서 한꺼번에 많은 차량이 달려도 크게 막히지 않는다.
파주는 면적이 넓은 곳으로 오래전부터 옛 시가지와 새로 조성되는 교하신도시, 운정신도시가 생기면서 젊은 층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고 인구도 크게 증가하며 동네가 한층 밝아졌다. 파주는 북한과 가까운 접전지역으로 날씨는 서울보다 보통 2~3도 더 춥고, 대부분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들이 여행하기에는 쉽지 않다.
정치 상황에 따라 한때는 북한과 친했다가 또 다른 상황이 되면 긴장과 대립으로 변한다. 보호구역이다 보니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민통선 최전방까지 가서 농사를 짓는 원주민들은 큰 걱정 없이 오랫동안 이곳을 터전 삼아 북한을 이웃으로 일상생활을 해 오고 있다.
나는 자주 이 길을 달려 통일대교를 지나 최전방 마을이 있는 통일촌마을에서 민통선 지역에서 수확한 장단콩으로 만든 장단콩정식과 고소한 두부전골을 먹는다. 미리 예약하면 통일대교 검문소까지 식당 사장이 차를 가지고 나와 우리 일행을 에스코트하며 음식점으로 데려간다. 한참 직장 근무할 때는 차로 이 시원한 자유로 길을 달려 쇠꼴마을, 반구정, 갈릴리농원, 벽초지수목원등을 찾아다니며 배꽃도 따고 유럽정원과 고딕 성당 조형물도 보며, 민물장어를 먹곤 했다.
우연히 일산 호수 공원 근처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지나다가 내부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게 잘 지어진 W 아파트 견본주택을 보고 아내가 흔쾌히 마음에 들어 은퇴한 후 조용한 곳에서 전원생활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여 교하신도시에 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자주 파주를 방문하고 주변도 나들이 삼아 구경할 겸 교하지구와 심학산 아래에 있는 한식집 산 들레, 헤이리마을 프로방스를 자주 방문하였다. 파주는 나와 더 친해지기 시작하였다. 가끔 여름이 되면 배꽃이 활짝 핀 배밭 사이를 꾸불꾸불 올라가 심학산 정상에(194m) 도착한다.
팔각정에서 내려다보면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저 멀리 북한 개성 땅이 약간 흐리게 보인다. 잘 뚫린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 시원한 바람에 팔각정을 에워싼 나무들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 파주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계속된다.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고, 타운하우스가 지어지면서 심학산 아래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도시생활을 떠나 자연과 함께 농촌 생활을 즐기며 살기 위해 새로 짓는 전원주택에 입주한다.
SBS 전원주택단지, 노을애 전원마을, 연꽃단지에서 끼리끼리 모여 살기도 한다. 출판 단지 1,2가 생기고, 커다란 출판사 건물 사옥 1층에는 넓고 웅장한 카페와 쉼터, 올리브나무카페, 고급가구점들이 입점한다. 파스타, 스페셜 커피, 디저트 등 유럽 음식을 파는 점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롯데 아울렛 근처 심학산 가는 길에는 봄에 꽃 양귀비가 활짝 피어 이곳에서는 봄맞이꽃 축제를 열기도 한다. 그 길 따라 심학산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양쪽에 많은 음식점들이 새로운 간판을 걸기 시작한다. 조그만 주거단지 전원주택도 보이고 아직도 분양 팻말이 붙어 있다.
여기서는 바로 앞에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토요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뭐 하세요?" 오늘 파주 카페 가지 않으실래요?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 아내는 가야지!라고 한다. 집에서 출발하여 아들 차를 타고 복잡한 마포시내 도로를 지나 시원한 자유로 길로 향해 힘껏 달린다. 심학산 밑에 있는 여러 카페를 쭉 돌다가 차가 이곳에서 멈춘다.
심학산 올라가는 큰 도로 아래로 꾸불꾸불 돌아서 주택과 음식점 사이를 빠져나오면 열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작은 마당 주차장이 나온다. 옆집은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들로 담 없이 마당을 서로 개방하여 공간을 서로 공유하며 사용하고 있다.
이 카페는 면적이 그리 크지 않아 1층 공간은 겨우 2명의 직원이 커피와 빵을 준비할 수 있는 바리스타실과 그 앞에는 고객용 소파들이 놓이고, 2층은 벽 쪽으로 나무와 철판계단을 걸어 위로 올라가며, 좁은 공간을 통풍과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유리창과 나무에 매단 전구 등을 달아 분위기를 연출하며 "천천히 쉬어가는 콘셉트"로 구성했다. 구석에는 2~3인용 의자, 5인 정도 가족도 앉을 수 있는 나무 식탁과 의자도 여러 곳에 준비되어 있다.
이야기를 하면서 커피 마시고 잠깐씩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군대 군데 벽장에 책을 비치하고 지하에는 화장실과 서고가 있다.
뾰쪽한 건물에 통유리로 지은 이 카페는 높은 건물과 뾰쪽한 첨탑이 특징인 고딕 양식 건축물을 연상케 한다. 계단 올라가는 오른쪽 구석에는 열대식물인 키 큰 선인장이 쭉쭉 뻗어 자라고 있고 한 두 개 빨간 꽃도 핀다. 예쁘게 천으로 걸쳐있는 커튼이 사이사이로 가끔씩 따뜻하게 비추는 햇빛을 가려주고 있다.
연인들은 의자에 걸 터 앉아 커피 마시며 앞을 주시하고 있다. 서로 같은 방향을 쳐다보거나 서로 마주 볼 일도 없다. 미숫가루 라때와 잠봉 토마토 샌드위치, 산미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따스한 햇살이 식탁 위까지 내려와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한다.
심학산 팔각정 오르는 등산길 마지막 집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이노스, 마당 입구 주차장에는 아이노스를 알리는 큰 문주가 서있고 식당 들어가는 입구에는 연두꽃 수국이 한참 피다가 이제는 시들어 그대로 낙엽 되어 가지에 붙어 있다.
장독대, 눈사람, 여름에 많던 이국적인 꽃들이 그윽한 정원의 향기를 아직도 풍기고 있다. 널찍하고 꾸불꾸불하게 생긴 매장에는 세월의 흔적과 시간의 변화를 알리는 많은 조각품, 용품, 기구, 커피메이트, 인형등이 엔틱 하게 진열되어 있고 중후한 멋을 자아낸다. 원목 테이블이 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앉으면 곧바로 갓 구운 따뜻한 식전 빵과 발사믹 오일을 가져오며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다.
이벤트로 청포도 에이드도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비스마르크 화덕피자, 한우갈비 매콤 크림 파스타, 돌문어 푸타네스카, 화덕 잠봉파니니를 시켜 맛보며 저녁 식사를 한다. 어느새 해가 지며 창밖에는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있다.
커피는 맛에 따라 선택하며 무료로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음식 가격은 비싸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이탈리안 음식은 소소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직접 화덕에서 피자를 넣고 굽는 모습도 볼 수도 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많은 사람들로 주말은 매장이 꽉 차 있다. 출입문 입구에 큰 다육식물 하나가 오랜만에 꽃을 피워 신기하게 보인다.
어두워지면서 식당들은 하나둘씩 불을 밝히며 눈 위에는 길이 군데군데 또렷이 보인다.
밖을 내다보면 언덕 위에 있는 나지막한 어느 유럽 마을동네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런 풍경과 기분이 내가 파주를 자주 찾는 이유이다.
겨울이 조금씩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