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의 힐링을 느끼다
한 달에 한 번, 첫째 주가 되면 동아리 참석 여부 투표가 진행된다.
열심히 사내 게시판에도 공지하고 단톡에도 올려 회원들의 참석을 독려한다. 늘 보는 사람도 있고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보통은 익숙해지면 무관심할 수 있다. 동아리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수고를 한다. 이런 모임은 음식 맛으로 비유하면 매우 싱거운 맛이고 특별한 임팩트는 없다. 모두 다 그러려니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발은 驛에 사람들이 다 모이면 10시쯤 시작하여 걷기를 진행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동아리는 그러한 수고와 기대에 부응하여 살짝 돈독하고 끈적한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한 번에 많은 신입회원들이 들어오고 또 드물게 두 분의 섬세한 여성분이 우리 회원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더 빨리 동아리를 시나브로 변화 시킨다. 매월 행사 때마다 애정과 정성으로 달달한 과일 에너지를 준비해 주는 분께는 늘 감사할 따름이다.
거의 20~30년을 공단, 은행 등 전문 영역에서 일하다 퇴직 후 재단으로 입사한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여러 곳도 살피며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한다. 운이 좋은 경우는 5년까지도 일할 수 있다. 입사는 같아도 상황에 따라 퇴직 일자는 서로 다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여 함께 일하는 회원들은 왕년에 최고의 실력자다.
친구들이 쉼을 즐기고 더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길 때 우리는 정해진 규칙과 출근시간을 지키며 총총걸음으로 직장에 달려간다. 헝클어진 머리와 옷을 단정히 살피고 한 번 더 거울을 보며 웃는 얼굴도 만들고 새로운 하루아침을 맞는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어떤 대우를 하든, 환경과 조건이 어떻든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그전에 늘 그렇게 해왔던 모습으로 묵묵히 지원 업무에 열중한다. 우리가 수행하는 일의 품질과 역량은 직장에서도 중요한 평가요소가 되며, 그러한 가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걱정하고 동행하며 확인하고 수행하는, 더 많은 봉사를 하면서 우리 직장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찾아가면 설렘이 있고 내 좁은 생각도 바꾼다.
주말에 4시간의 시간을 걷기와 점심까지 해결한다는 것은 좀 빠듯한 하루 일정이다. 그것도 여러 형편으로 사정이 있어 이 걷기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안산, 남산, 고궁, 능, 공원 등 익숙한 곳은 거의 한 번씩은 다녀왔다. 1년에 열두 번 간다 해도 특별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고 여러 사정의 제약도 따른다.
이번에는 뭔가 다른 곳으로 가볼까? 고민도 하였다.
옛 추억을 기리며 경의선 기차를 타고 남양주 「물의 정원」으로 가면 어떨까? 기차여행은 추억을 더듬고, 생각을 정리하며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서로를 쳐다보며 순수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또 필요하면 간단한 음식도 먹으며 스치는 창밖의 풍경과 멋진 집, 시골 풍경, 시원한 팔당 댐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어 모두 다 외출을 많이 하였다고 생각하여 이 계획을 잠시 접었다.
도시 한복판으로 이어지는 철길과 도시의 만남, 경의선 숲길을 선택한 이유는 이보다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의선 숲길은 경성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철길로 1904년에 용산에서 개통되어, 1951년 한국전쟁으로 운행이 중단되었다. 2008년에 경의선 지하화 작업을 하여, 2011년부터 철길을 숲길로 조성한 1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총 6.3km의 숲길로 효창 공원 역에서 새창고개 공덕역 구간, 공덕 역에서 대흥역 염리동 구간, 대흥 역에서 홍대 앞 와우교 구간, 홍대 역에서 연남동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구간별로 길, 화단, 고개, 철길, 건물 등 서로 다른 특징이 있고 도시의 변화를 걸으며 한눈으로 볼 수 있는 레트로 감성이 있는 곳이다.
1구간 효창공원 역 주변에는 효창공원과 용문 전통시장, 그리고 용마루 길이 있으며, 6번 출구를 따라서 꾸불꾸불한 경사가 있는 공덕역방향 고갯길로 걸어가면 자연 암석과 군데군데 쉼터, 새창고개 다리 밑에 테라스가 설치되어 여름에는 이곳에서 시원한 그늘을 즐기며 가족과 함께 더위를 식힌다.
2구간 공덕역은 교통의 요지로 큰 빌딩과 호텔이 있고 차도를 건너면 염리, 대흥동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숲길가에는 큰 커피점, 개인카페, 고깃집, 주점, 해장술집등이 철길을 따라 쭈욱 늘어선다. 봄이 오는 3월 말쯤이면 벚꽃이 커다란 동굴을 이루어 온통 꽃밭을 만들고 저녁 불빛아래 늦게까지 힐링을 만끽할 수 있다. 군데군데 나무의자와 녹색 쉼터도 잘 준비되어 있다.
3구간은 서강대를 향해 올라가면 약간 가파른 황톳 길이 나오고 우측 아파트 담 옆에 군락을 이룬 대나무 숲이 보인다. 곧게 쭉쭉 뻗은 금강송 대열이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서있다. 우물도 있고, 철길 위에 엎드려 귀 대고 기차 소리를 들으며 뛰노는 어린아이의 조형물도 보인다. 서강대 앞에는 여름에 긴 개울이 흐른다. 물 위에는 부레옥잠, 물수세미, 생이가래 등이 둥둥 떠 있고 그 위를 소금쟁이들이 쏜살같이 떼 지어 지나간다.
4구간은 서강대 역에서 홍대역으로 넘어가는 도보 육교 길을 건너간다. 숲길에는 메타세쿼이아와 단풍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아름다운 숲길 책거리로 시작된다. 참새 방앗간 사거리에는 철도 승무원이 기차를 세우며 손 짓으로 신호를 하고 있고, 머리에 바구니를 인 아낙네가 한 손으로는 어린아이 손을 꼭 잡고 등에는 갓난애를 업고 기찻길을 건너고 있다.
바로 그 옆 세탁소 집 마당에는 하늘을 안 보고 땅만 바라보며 노랗고 풍성하게 많은 꽃을 피우고 있는 천사의 나팔꽃(angel trumpet)이 우리를 반긴다. 긴 트럼펫 모양으로 길게 늘어 뜨려 진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그 아래 어스름한 골목길에 옛날 오래된 빛바랜 분홍빛 간판이 보인다.
일본 소화 63년(1988년)에 일본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한 제과점 주인이 1996년에 개업하여 현재까지 이 자리에서만 30년 이상 식빵을 만들고 있다. 홀 안에는 누렇게 색 바랜 졸업증서가 붙어 있다.
담백한 우유식빵은 뜯어먹는 재미와 빵 속에서 나는 발효 향기, 부드럽고 촉촉한 맛이 일품이다. 정성스럽게 손으로 직접 반죽하여 만든 빵으로 늦게 가면 벌써 팔고 문을 닫는다.
홍대역으로 가는 길은 책거리와 음악거리, 놀장, 기념품점, 마포 홍보관, 경의선 역사관 등이 군데군데 가건물로 지어져 있고 김대중 도서관 가는 길도 보인다. 이 길부터는 레드로드길(Red Road)로 젊음 이들이 자유분방하게 문화를 즐기고 체험하며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거리이다.
외국 여행객들이 공항철도를 타고 이곳에 내리면 캐리어를 밀고 다니며 제일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하다. 어디서나 음식점마다 젊은이들로 넘쳐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핫 플레이스다.
연남동 사거리 주변에는 홍대 주변을 관광하거나 음악 기획사를 찾는 외국 젊은이들을 항상 볼 수 있다.
특이한 복장, 짧은 치마, 흔들거리는 패션, 와이드 팬츠, 머리까지 뒤집어쓴 검정 후드티등 너무나도 재미있어 여기저기를 쳐다보는 데도 정신이 없다.
오늘 하루 함께한 경의선 숲길 여행은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 도심과 숲을 잇는 레트로 감성이 있는 행사가 되었다. 따뜻한 감자탕은 진한 풍미와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된장과 우렁이로 버무린 쌈밥은 시골밥상으로 풍족한 포만감을 더 하였다. 복잡한 연남동 핫플레이스를 걸으며 찾아낸 카페에서 따아, 뜨라, 아아를 먹으며 마음 편한 이야기와 우리 동아리 역사, 입사. 퇴사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곳에서 우리가 상권 에너지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듣고 뮤지컬을 볼 때 내 감정의 작은 울림이 일어나는 변화를 『감동』이라 한다. 그것도 예상치 않게 받은 감동은 그 크기가 더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핸드폰을 보는 순간 커피 쿠폰 2장이 와 있었다. 보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큰 감동을 받는다.
영화 「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연주하는 하틀리 4인조 악단, 물이 배 안에 차고 있는 순간에도 선실에서 조타키를 놓치지 않는 스미스 선장의 모습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 오늘 나에게 선물을 보낸 분의 고소한 커피 향기는 내 감정의 변화를 울리는 선장과 악단의 가슴 뭉클한 감동보다도 훨씬 더 크다.
오늘 아침 출근길, 아파트 입구에 여름내 피어 있던 채송화, 봉숭아, 글라디올라스가 어느덧 꽃잎이 다 떨어져 줄기만 남아서 바람에 흩날린다.
계절이 바뀌고 3월이 오면, 온통 벚꽃으로 아름다운 동굴을 만드는 경의선 그 숲 속 길을 다시 걸으며,
고소한 감동의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