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겨울사랑 이야기
"가도 가도, 봐도 봐도
이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워라.
불 위에 굴이 춤추고, 나풀거리는 눈을
친구 삼아 겨울을 노래하리.
천북항 어느 여자의 매력에 홀린 친구의
겨울사랑 이야기"
광천역에 도착하면 광천 토굴 새우 젓갈시장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김장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기차를 타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각종 양념젓갈과 김을 사기 위해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혼잡하다.
12월이 되면 사람들의 방문은 끊기고 가끔 겨울 바다나 낚시, 송년모임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역은 한산하다 홍성은 차로 약 20~40분 정도 거리에 보령, 청양, 예산, 서산이 인접하고 있어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둘러보고 서로 다른 여행지를 찾아 힐링하기에는 딱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역(驛) 근처 도심에서 벗어나 길게 뻗은 도로를 따라 마을 길을 달리다 보면 여름에 그렇게 푸르던 논들은 지금은 추수를 끝내고 황량하고 쓸쓸한 텅 빈 공간으로 변하고 하늘 아래 구름 사이를 헤치며 밝게 비추는 따뜻한 햇볕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영롱한 아지랑이를 만들며 새 봄을 기약하고 있다.
군데군데 모여사는 시골마을 집 마당에는 감나무들이 보이고 아직 따지 않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까치가 가지에 앉아 잘 익은 감만 골라서 쪼아 먹고 있다. 아직도 많은 감이 매달려 있다.
마을 입구에는 여름 내내 초록의 잎을 가지고 가지각색 꽃을 피워 연밥이 된 연꽃 정원에는 물이 빠지고 화려하게 피었던 흔적만 남아 애처롭다. 가끔 내(溪)가 흐르고 있는 옆길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인다.
항이지만 조그만 포구로 등대와 흔한 방파제 하나도 없이 배가 닳는 선착장도 보이지 않는다. 광천역에서 약 20분 정도 잘 뚫린 길을 달리다 보면 멀리 철새 도래지 천수만(淺水灣)에 접해 있는 천북항이 나온다.
이곳은 겨울에 낚싯배들이 출항하여 주꾸미와 인근 굴 양식장에서 키워 가져온 굴을 천북항단지에서 팔고 겨울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 굴을 맛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주말을 맞아 좁은 천북항 굴 단지는 며칠 전 축제 기간이 끝났어도 많은 사람과 차로 넘쳐나며 단지에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다.
간신히 차 키를 식당 주인에게 맡기고 우리는 가보세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벌써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2~4명씩 자리 잡고 앉아 천수만 양식장에서 키운 굴로 굴찜, 굴구이, 돌솥굴밥을 시켜 먹고 있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보았다. 홍성 친구는 천북 굴 단지 오기 전에 미리 식당 메뉴를 알아보고 음식 가성비까지 확인하였다. 잠시 후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화로 위에 석쇠가 올려졌다.
굴찜과 불판에 굽는 굴구이 2개 큰(大) 것을 시켰고, 딱딱한 굴을 익혀 까먹을 수 있는 장갑 한쪽과 집게, 굴을 벌리는 칼을 각자에게 사람 수만큼 나누어 주었다. 석쇠가 불 위에 올려지고 그 위에 큰 굴을 하나씩 집어 올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나무로 만든 그릇에 미리 익혀 찜해놓은 가리비, 조개, 굴도 가져온다.
그때 여자 종업원이 조금만 접시에 미나리와 무를 넣고 양념으로 새콤하게 버무린 굴무침을 가지고 와서 상에 올려준다. 나는 잠시 그 여자의 옆모습을 보았다. 크지 않은 키에 바쁘게 서빙하고 있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불 위에 올려진 굴이 하나둘씩 익어가고 찜통 안에 이미 익힌 굴들을 하나씩 집어 칼로 굴 껍데기를 까기 시작한다.
껍질 안에 잘 익어 짠맛이 베인 통통한 하얀 굴을 꺼내 초장에 찍어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 바닷가 천수만에서 화로에 잘 구워진 굴맛은 그야말로 천상(天上)의 맛이었다.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후 우리가 정신없이 먹는 모습을 보았는지 아까 굴 무침을 가져다주었던 그 여자가 다시 굴 무침 한 접시를 들고 서비스라며 가져다주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그 여자 뒷모습을 의미 있게 한번 살짝 쳐다보았다.
협소한 의자에 바짝 앉아 뜨거운 숯불 위로 굴은 잘 익어가고 우리들 얼굴은 빨개지며 토실토실한 굴맛에 한동안 말없이 먹기만 한다. 밖은 벌써 어두워지고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식당 안에는 불판 위에 딱딱 소리를 내며 굴이 익어가는 소리가 난다. 이곳 천북항 굴 단지에서 느끼는 겨울 어촌 풍경이 아닐까?
어두워지는 밖의 모습을 보며 식당을 나간다. 그런데 먼저 나간 관리소장 친구가 갑자기 나한테 “사장 딸 좀 나오라고 해라, 너무 예쁜데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해”라고 한다. 나는 문을 나가다 발을 멈추고 뒤를 보며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문 앞에 서있던 식당 사장님에게 “딸이 너무 예쁜데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싶으니 잠깐 나오라고 해 주세요”.라고 하니 사장은 그 사람은 딸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후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아니에요! 이분이 아니고 다른 여자분 말입니다”. 그때 우리가 하는 말을 홀에서 들었는지 잠시 후 한 여자가 정신없이 뛰어나와 우리 앞에 섰다. 옆에 있던 친구는 이분이 맞다고 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맺는다. 남자나 여자나 자기 취향에 맞는 이성을 만나게 되고 한동안 정신없이 좋아하다가 결혼도 하게 된다. 나와 인연이 없는 어떤 사람도 우연히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매력에 이끌리기도 한다. 여성은 보호본능이 있어 남자는 여성에 쉽게 끌리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분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모습, 태도, 걸음걸이. 매력에 푹 빠지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을 옆에 있는 친구는 느끼며 그 여성의 매력에 끌린 것이 아닐까?
나, 친구, 그리고 식당에서 정신없이 뛰어나온 아까 굴 무침을 2 접시를 내주던 그 여자 3명이서 굴수산 간판을 뒤로하고 셀카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친구는 어리둥절하며 방금 뛰어나와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던 이 여자에게 “당신은 보령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이 여자는 얼굴이 빨개지며 잘 가란 인사도 못하고 황급히 식당 안으로 뛰어갔다.
친구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걸어가다 잠깐 서서 아까 식당으로 돌아가던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함께 다음 일정을 위해 우리와 같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서해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1,650m의 석성으로 16년간이나 쌓은 성이며, 앞에는 조금만 몇 개의 산으로 빙 둘러싸인 바다 절경이 아름다운 어선 정박지가 보인다.
그 위를 내려다보고 있는 최고 절경의 정자 영보정은 조선시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쓰며 시문을 남긴 곳이다. 영보정 앞마당은 완만한 언덕으로 잔디가 아직 푸른색을 띠고 있으며 색깔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그 잔디에서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는 여섯 명의 어른, 아이가 섞여 손을 잡고 길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오스트리아 사운드 오브 뮤직 배경이 된 미라벨 정원이 연상되며, 마리아와 7명의 폰트 대령 자녀의 도레미송을 부르는 모습을 잠시 기억한다.
이응노 생가가 있는 바로 옆 창작스튜디오는 아담한 건물에 마당 조형물과 관람객을 배려한 고암 북 카페를 갖추고 따뜻한 커피와 차를 무료로 제공한다. 3개 공간으로 구성된 미술관은 조형물과 설치 무대, 역동적인 소(牛)를 묵으로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고, 홍성에서 태어나 일본과 프랑스를 거쳐 창작 활동을 하던 그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잘 정리한 프로필이 눈에 띈다.
우리는 미술관 공간을 쭉 돌아보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며 그의 활동들을 톺아 보았다. 한잔의 따뜻한 커피와 차는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차로 약 20분 달려 도착한 곳은 천수만이 뒤에 보이는 소나무로 둘러싸인 좋은 아침 PASTRY 카페, 입구 앞마당에는 거북선을 만들어 놓은 철재 조형물과 고기잡이 어선을 상징하는 조형물 2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캐러멜마키아토, 바닐라 아이스크림 빨미까레, 바나나빵, 타르트를 주문하여 푸짐하게 먹으며 오랜 시간 홍성 친구의 목장지키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듣는다. 카페 벽에 붙은 “좋은 아침, 참 좋은 당신” 불빛 싸인 액자가 특이하게 눈에 들어온다.
용봉산 중턱 올라가는 여러 음식점들이 즐비한 언덕에 가족, 연인들이 커피 마시며 잠시 쉬어가는 용봉산 K 카페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크리스마스트리가 대형으로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는 웅장한 계단 모양의 좌석들이 진열되어 있다. 진열된 많은 커피와 빵은 특별한 시그니쳐 상품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이곳 카페는 쉴 공간이 군데군데 많고 가족단위로 누워서도 즐길 수 있는 많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일하고 지금처럼 휴식기를 맞아 가족단위로 식사 후 이 카페에 올라와 커피와 빵을 즐기며 힐링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저녁 늦게 까지도 찾아온다. 따뜻한 수제 생강차와 토마토주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은 또 다른 홍성의 특별한 기억이 된다.
목장 바로 앞 빈집에는 주말에만 잠깐 와서 쉬어가는 노인 부부가 있고 집 뒤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몇 개 있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주렁주렁 열린 감이 잘 익었고 추운 겨울이 와도 그대로 따지 않아 가지에 대롱대롱 달렸다. 가끔 까치들이 배고프면 가지에 앉아서 큰 감, 작은 감을 맛보며 군데군데 파먹고 있다.
동네에는 먹을 것들이 많아 까치가 감을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 지금도 먹음직스러운 감들이 많이 매달려 있다. 높은 감나무에 달린 감을 따기 위해 4미터나 되는 대나무 감 장대를 들고 높이 가지에 달린 감을 하나씩 따기 시작한다. 바닥은 풀숲으로 땅이 얼어서 푹푹 빠지며 발을 삐끗하면 넘어지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딴 상태가 양호한 감은 친구가 바로 바구니에 담고 있다.
목장에서 소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소가 먹는 사료는 송아지, 임신 어미소, 초임 어미소 등 소 상태에 따라 먹여야 할 사료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사람보다도 더 신중하게 살피고 밥을 주어야 한다.
가을 들녘엔 추수가 끝나고 콤바인이 나락과 알곡을 털어낸 볏짚들을 한 줄씩 나란히 논 바닥에 눕혀 볏짚이 적당히 건조되면 이 짚을 돌돌 말아 압축시키고 첨가제를 섞어준 후 발효시켜 그것을 비닐 그물 끈으로 돌돌 말아 감는다. 이것이 소여물 볏짚 곤포 사일러지다. 겨울 들판 어디 가도 눈에 띄고 하얗게 논 가운데 세워져 있으며 언제든지 이것을 이동하여 소여물로 사용한다. 1개 무게는 약 500kg이나 나간다고 한다.
예당 저수지에 있는 어죽 맛집 본점「 대흥식당」의 내포리 분점으로 홍성역 가는 길에 있는 저녁 먹으러 이 식당에 들렀다. 내포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저수지에서 먹는 본점 그 맛, 메뉴 그대로 요리한다고 한다. 바싹하게 튀긴 새우와 추어 튀김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우리 입맛을 돋우고, 푸짐하고 걸쭉하게 끓인 어죽은 담백한 맛을 더 하였다. 처음에 다 못 먹을 것 같았던 어죽을 어느새 한 그릇씩을 모두 싹 다 비웠다.
9월과 10월에 두 번이나 방문한 홍성은, 시간이 지나서 다시 방문하여도 또 다른 풍경과 정서, 친구의 열정이 어우러져 여행의 기쁨을 더 해준다. 들판과 쭉뻗은 도로들, 군데군데 보이는 논 가운데 축사, 마을동네, 소나무 숲 속 카페, 강 주변의 맛집들 이들 모두 홍성의 조화를 이루며 사계절의 변화와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겨울의 홍성은 쓸쓸하며 텅 빈 시골이 된다. 논에는 쌓아놓은 하얀 사일러지만 여기저기 세워져 있고 일하는 농부들은 보이지 않는다. 추수가 끝나고 추운 겨울이 오면 동면에 들어가고, 굴 축제장에서 가서 굴도 먹는다.
숲 속 소나무정원 카페에 가서 커피와 빵을 먹는다. 축사에는 소들이 추위에 견디며 주인의 관심을 듬뿍 받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살찌고 우량한 송아지가 되어야 경매에서 제 값을 받는다. 홍성 친구네 축사에는 내년에 5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K카페에서 커피와 주스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열차시간을 확인하고 카페를 나와 홍성역으로 향했다. 내 뒤에 앉아 있는 소장친구는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며 오늘 여행을 정리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다. 잠깐 스친 가보세 굴수산집 그녀의 예쁜 매력에 푹 빠져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홍성친구의 배웅으로 역 안으로 들어와 출발홈 안에 있는 따뜻한 대기실로 들어갔다. 친구를 두고 떠나기가 아쉬웠는지 열차도 8분간 지연된다. 우리는 늘 역에서 만나고 역에서 헤어지는 그런 친구들이다. 내년에는 홍성목장도 송아지가 새 식구가 늘어난다.
아쉬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용산행 열차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열차가 떠날 때까지 친구는 손을 흔들고 있다. 의자에 서서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친구는, 내년 봄 3월이 오기 전에 가보세 굴수산집을 꼭 찾아가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