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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Apr 26. 2023

지키는 劍

요즘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더는 이렇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뛰어나가 달리고 걸었던 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나는 비가 종일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대체로 1시간 이상 운동했다. 처음에는 걷고 달리고 걷는 것으로 채웠다면, 그다음은 근력운동을 추가했다. 하체는 상체에 비해 튼튼했던지라 상체 운동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일직선으로 펴진 어깨선, 둥글고 단단한 어깨 근육, 팔꿈치에서 손목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의 근육을 갖고 싶었다. 배에 11자 근육을 넘어서서 王자를 새겨 넣고 싶었다. 운동하는데도 이렇듯 욕망이 필요했다. 조울증 정병인인 내게 부족한 것은 바로 삶을 움직일 욕망이 아닌가, 며칠을 두고 생각했다.


근력운동을 갑자기 시작해서인지 근육통이 거의 매일 따라왔다. 몸을 이완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어 들었다. 해서 요가를 추가했다. 다른 스트레칭이 많았지만, 굳이 요가 세트를 추가한 이유는 마음을 다스리고 호흡에 더 신경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가를 추가할 무렵에는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중증 우울증이 제어가 잘 되지도 않았다. 거듭되는 무기력과 싸워나가면서 달리면서 울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었다. 호흡부터 고르고 제대로 자리 잡아야 했다. 내게 요가는 단순히 스트레칭을 넘어서서 마음 수련과 닿아야 했다. 요가의 원래 목표대로 심신을 단련해야 했다. 뿌리내리듯 발 끝에 힘을 주고 어깨와 목과 등에 힘을 풀고 단전을 단단히 하고, 호흡 호흡으로 이어지는 동작 동작을 물처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곧잘 멈추고 싶었고 자꾸만 등과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발은 흔들거렸다. 둥치 크고 넓은 나무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바람에 부대끼는 갈대처럼 흔들리고 파르르르 떨렸다. 그런데도 나를 움직인 축은 역시나 뫄뫄를 하고 싶다, 뫄뫄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있었다.



자칫하면 욕망은 지독하게 기능하여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리기도 하기에
 욕망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나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한 채로도 욕심을 부리는 순간, 욕망은 그 자체가 독이 되어 심신을 망칠 터였다. 그런데도 마음이 너무나 힘든 어느 날들엔 무리해서 몸을 움직여 나를 괴롭히고서야 울음을 멈출 수 있었고 그러고서도 울음을 놓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고 나면 꿈에서도 괴로웠다.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손에 잡히지 않게 펼쳐두고 손으로는 칼끝을 내게 겨누곤 했다. 그렇게 자해하는 시간을 보내고서야 지독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벌해야만 잠시라도 덜 아플 수 있었다.


다시 욕망을 들여다본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보니 눈앞에 선명해야지만 욕망이 발현되는 무력한 자신을 알기에 옷으로 덮였어도 선명히 온몸에 울퉁불퉁한 근육이 드러나는 운동선수의 사진과 배우의 사진과 애니의 사진을 애플워치와 폰 배경 화면으로 채워두고, 자신을 끌어올리기 위해 비트가 강한 음악들을 거의 종일 열어두었다. 그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서둘러 커피를 내리고 잠시 쉰 후 요가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이틀째 요가 아침이지만 야외 운동을 쉬는 날에도 요가는 매일 이끌어 가기로 다짐해 보았다.






내 욕망이 추구하는 단단한 몸과 단단한 마음을 다지기 위해 나의 하루는 매일매일 벼려져야 한다. 나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곁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과욕이고 자만이었다. 이 당연한 사실이 새삼 낯설게 다른 쪽 문을 열었다. 초점이 잡히며 선명해지는 욕망은 언젠가 애니메이션 <은혼>에서 보았던 “지키는 검”과 닮아 있었다. 검을 지닌 사람이되 그 검은 반드시 지키는 검이 되어야 한다, 대상이 누구가 되든 반드시. 부러워하며 바라보기만 했던 욕망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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