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Jeongseon Apr 28. 2023

쏟아지는 축복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흘러가 버렸다. 어제까지 들끓던 몸의 열처럼, 들끓던 더위가 가시고 볕이 온화하게 내리쬐는 건조한 봄날의 오후는 평화로웠다. SNS를 훑으며 보았던 숱한 죽음의 소식으로 망연해진 시간을 보내고선 지금 카페에 앉아 오늘의 일정을 인제야 더듬는다. 계획한 것 중 대부분을 실행하지 못하고 지금 카페에 왔다는 것에서나 안도하고 있다. 그래, 적어도 볕 아래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통증을 이겨내고 조금 헐렁해진 몸과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 것에 우선 만족하자. 만족을 모르는 마음이 일으키는 온갖 자책을 잠시 덮자.


카페 2층 층계를 오르며 위태로울 만큼 가득 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면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원하는 좌석까지 이동하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카페는 이층 테라스 모든 문을 열어서 조금은 서늘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구석구석 밀어보내고 있었다. 들숨 날숨으로 바람이 오가며 카페는 크게 부풀었다 쪼그라드는 폐처럼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그 느낌이 좋아서 텅 빈 공간을 바라보다 나도 크게 숨을 들이켰다. 천천히, 그러나 단전을 단단히 하고 내뱉는 숨 속에는 무엇이 담겨 나올까. 들숨은 분명 신선한데 날숨에서는 어떤 다양한 삿된 것들이 쓸어 담겨 쏟아낼까. 예수는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은 깨끗한데 나오는 것은 더럽다고 했었나? 성경을 멀리하고서는 어린 시절 기억에 기대어 왔다 보니 정확한 게 없다. 그러나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런 걸로 정리하고 나의 삿됨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카페는 그다지 삿된 것을 내뱉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따라 2층 모든 사용자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모습들이 흩어진 이미지로 나뉘어 쓸려 내몰리더라도 카페의 숨은 평안한 거 같았다. 이미지가 밀려나갔다가 밀려 들어오는 환상을 보면서 거기에서 무슨 선악을 구별해 보겠나. 게다가 카페에 흐르는 음악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 한들 이어폰을 꽂고 내가 선곡한 음악을 듣는 이 시점에서, 사거리 도로에서 불어오는 티끌 가득 섞인 바람이 다양한 날벌레들과 함께 밀려 들어온다 한들 그것이 삿될 이유를 찾을 만큼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은 잘 개어서 어딘가 던져놓고 한가하게 먼지 냄새를 맡고 먼지 섞인 햇살을 보고 그 빛살에 선명한 사람들의 날숨을 구경한다.






가방을 정리해서 나가야 하는데도 머뭇거리는 이유를 떠올려 본다. 오늘 해야 할 영어와 일어 학습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오늘 해야 했을 요가를 하지 않았고 오늘 찾았어야 하는 은행에 가지 않았다. 운동을 이틀 동안 못했기 때문에 몸이 더 굳어지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데 오늘도 운동 따위는 모른 척하고 싶은 걸까 싶은데 우습게도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바를 모르겠다. 다만 너무 늦게 움직인 탓에 내 계획을 실행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과 그런데도 멈칫거리며 머뭇거렸다는 것. 그러니 지금 역시 그 머뭇거림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싶을 뿐이다.


갖고 나온 물통에 물을 채워 넣고서야 카페에서 나갈 결심을 한다. 집에서 나올 때도 대체로 이유가 필요했는데 이젠 카페에서 나설 때도 이유가 필요해져서 혼자 웃었다. 내가 앉은 가장 어두운 구석 자리에서 사선과 직선들로 이어지는 모든 원뿔형 공간을 다시 훑는다. 마침 새로운 손님이 들어와 공간을 흔들어 놓는다.



모두가 혼자인 이곳의 정경을 눈에 담으며
왜인지 나는 서그러워진 마음을 느낀다.


그저, 다들 괜찮았으면 싶다. 내가 그러하듯, 당신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제각각 각자의 여러 이유로,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해져서 기도한다. 어쩌면 축복은 느닷없이 이름조차 모르는 타인에게서 쏟아지는 따사로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기록한다, 잊지 않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지키는 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