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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May 03. 2023

눈부신 세상

오랜만에 체육복이 아닌 외출복을 입었다. 오랜만에 민낯 위에 곱게 화장을 얹었다. 오랜만에 가방을 바꿨다. 오랜만에 내 활동명과 같은 향수를 뿌렸다. 오랜만에, 이 모든 것을 오랜만에 실행했다. 오래전부터 상상하던 자세를 인제야 실천했다. 변명하자면 많겠지만 언제나 그 결론은 지독한 조울증을 따라오는 무기력 때문이었다.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몸은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오랜만에 거리에 나서면 거리는 이세계처럼 낯설었고 길은 공중에 5cm는 뜬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병원에 갈 때 외에는 길로 나서는 게 무서웠다. 의사는 그럴수록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약을 먹어도 각성과 긴장이 유지되는 나로선 실천 불가능 영역에 가까웠다.


심신이 모두 무너지는 기간은 불규칙적이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무 먹거나 너무 먹지 않거나 너무 자거나 너무 잠 못 들거나 너무 울거나 너무 웃거나. 기본이 중증 우울증으로 세팅된 인생이라 감당할 수 있다 여겼지만,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진단받은 조울증은 평생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던져놓았다. 약간만 업되어도 며칠에 한 번씩 잠드는 기간이 몇 달이 되고 어떨 때는 냄새조차 맡기 어려워 며칠씩 식사를 거부했다.



상승하였던 기운이 추락할 때는 상승한 만큼의 거리에 따라 가속도가 붙은 채 마음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때는 그저 숨을 쉬는 것만이 생존을 확인해 주었다.



나는 다양한 내 시체의 환영을 지나치며 집안을 배회하고 수시로 잠들었다. 가끔 환후나 환청이 오면 서글펐다. 이 모든 고통의 시간을 장식하는 마지막은 메니에르였다. 가만히 기대어 있어도 지독한 어지러움, 귀속에서 매미가 사는 듯 고막을 찢을 듯 들리는 이명. 간간히 어지럽다가 본격적으로 메니에르가 작동하면 서 있기도 괴로워졌다. 다행히 이것은 몇 시간 버티면, 하루 정도 버티면 나아져서 예측 가능 영역이라 불안감은 낮았다.


지독하게 앓고 나면 안정적인 기간이 찾아온다. 헐렁해지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나아졌다는 것을 인식하며 흐트러진 스스로를 위해 창을 열어 오래 환기하곤 했다. 고통받았던 시간에 일어났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두렵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저 불어오는 바람에 다 실려 날아가고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맑은 기운이 들어차기를 간절히, 몹시도 간절히 바랐다. 마주한 다양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했다. 뜨악할 만큼 카드를 긁어 댔던 것, 뜨악할 만큼 엉망이 된 집안 곳곳, 내 감정과 생각에 취해 벌린 많은 실수, 그런 나 때문에 상처받았을 사람들. 무엇도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그간 경험으로 잘 알아서, 그저 오해받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해도 구차해지곤 했다. 미안하다. 내 재정 상태든 집이든 사람이든, 혹은 나 자신에게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저 단어 하나였다.


송곳눈을 뜨고 거울을 봤다. 아늠이 홀쭉해지고 윗아귀힘조차 들어가지 않게 약해져 있다. 애플워치는 손회목이 더 가늘어진 바람에 살갗에 밀착되지 못하고 빙빙 돌다가 계속 비번을 요구한다. 초라해진 상태가 지금 내 상황이라고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저 지긋지긋한 고통이 반복된다. 정도의 크기가 차이 나고 기간이 조금 차이 날 뿐, 반복한다는 것은 변함없다. 그러니 내가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무엇 있겠는가. 실소를 흘리는 날카로운 내가 우는 것 같았다.






지금 나는 화장을 하고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카페에 왔다. 마치 연인을 만나기 위해 미리 서두른 사람처럼, 향기 하나까지 신경 쓰고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순한 눈빛일 것이다. 낱낱이 나를 이루는 조악한 파편들을 얼기설기 이어 붙인 듯한 모습이 아파 보이긴 해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다. 글을 쓰고 글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감상하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이 모든 순간순간마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소박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잘 차려진 밥상을 선물하는 게 자신을 아끼는 방법이라는 풍문처럼은 살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자신을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는 그 시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어리석게도 그 시간이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다.


하여 나는 내 작업에 대해서라도 예의를 차리기로 했다. 단정하고 바르게 자세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음전한 모습을 유지하기로 했다. 지독한 조울증의 기간과 간격을 알지 못해 여전히 불안하지만 지금 나는 통제되지 못해서 쩔쩔매던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지금 당장, 지금, 이 순간에 애정을 가득 담아 살아내기로 한다. 심호흡하고 노트북을 펼친다. 무릎 꿇고 절하는 심정으로 여백을 바라본다. 갈라진 틈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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