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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Jun 15. 2019

희망은 당신의 얼굴로 찾아온다

영화 <갤버스턴>에서

※ 브런치 무비패스로 소중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 글 속에 결말에 대한 묘사가 조금 들어있습니다.






희망은 당신의 얼굴로 찾아온다




  삶의 벼랑으로 몰리는 사람들. 더 이상 뒷걸음질 칠 곳 없어, 그들은 몹시 외롭다. 희부윰한 안개가 땅 아래로 자욱하게 깔리고, 귓가에 이명이 가득 울리는, 그 파리한 세상에서, 그들은 짊어진 외로움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가만한 마음으로, 천천히 자신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며. 간절하게, 누군가의 아늑한 품을 그리워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그렇게 일평생 외로움의 하중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갤버스턴>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폐가 상할 대로 상한 로이(벤 포스터)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줄로 알)고, 무장괴한에 납치되어 목숨을 잃을 뻔했던 록키(엘르 패닝)의 삶은 이전부터 지옥과 같았다. (‘지옥은 존재한다’라는 표지판이 록키의 집인 오렌지의 길목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록키의 여동생인 티파니(애니스턴, 티슬턴 프라이스)는 포악한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다. 요컨대 이 셋은 저마다 제 몫만큼의 고통을 힘껏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영화 <갤버스턴>



  자신의 인격에서 일말의 긍정이나 희망 같은 것이 거세된 사람의 표정처럼, 벤 포스터는 시종 얼어붙은 얼굴로 캐릭터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벤 포스터의 얼굴에 비해 엘르 패닝의 얼굴은 양가적이다. 험한 일을 일찍부터 겪었던 사람처럼, 때로 모든 일에(설령 자신의 목숨이라도) 체념 섞인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활짝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4살 티파니보다 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어린 티파니를 연기한 아역 배우들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극 중 어린 티파니 역은 사실 한 명이 아니라, 쌍둥이(애니스턴 프라이스, 티슬턴 프라이스)가 번갈아 가면서 맡았다. 쌍둥이 둘은 모두 실제 친언니를 대하는 것처럼 엘르 패닝에게 안온함을 느끼며,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 화각도 특기할 부분이다. 주로 카메라는 인물을 구석에 몰아넣고, 45도 각도에서 대각선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되면 소실점(시각을 기준으로, 화면 모서리에서 가상의 선들을 그었을 때 두 선이 만나는 지점)에 따라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공간이 탁 트인 곳이라면, 자연스럽게 광활하고 드넓은 듯한 느낌이, 실내에 있으면 어딘가 갇혀있는 것처럼 답답한 느낌이다. 영화는 이런 기법을 적극 사용해서, 때로 숨이 턱턱 막히는 인물의 갑갑함과 때로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한 시원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로이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보스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그곳에서, 그는 피투성이인 채로 온몸이 묶여있는 록키를 발견한다. 그는 그녀를 결박한 밧줄을 풀고 함께 탈출한다. 그녀를 구한 사람이 로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로이)이, 앞으로 살 날이 훨씬 많이 남은 사람(록키)을 구한 것이다. 마치 나이 든 부모가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 같다. 이후 둘의 관계가 남녀 간의 이성적인 관계로 발전되지 않고, ‘유사 부녀’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흐름이다. “내 인생은 이미 망했어요.”라고 자조하는 록키에게, “기운 내. 어쨌든 살았잖아.”라고 말하는 로이의 대사는 둘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 <갤버스턴>



   아닌 게 아니라, ‘유사 부녀’ 관계인 둘은 사실 서로 닮았다. 이제 오갈 데 없는 처지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렇다. 갤버스턴에서, 로이는 이전에 미래를 약속한 전 여자 친구를 버린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오렌지에서, 록키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사랑하는 동생 티파니를 두고 혼자 도망쳤다. 이미 누군가를 버린 적 있던 로이는, 이제 위기에 처한 록키를 못 본 척할 수 없다. 그는 그녀를 구하고, 앞으로 안전하게 지켜주겠다고 약속까지 한다. 그러니, 버림받은 티파니를 건져야 하는 사람은 록키가 되어야 한다.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로이와 록키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담배를 입에 문다. 그리고, 서로를 비스듬히 힐끔 쳐다본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둘을 포개어 놓는다.


  극 중 인물들의 삶은 위태롭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균형을 잃는 평균대 위에서 걷는 것처럼, 그들은 좀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하지만 영화는 시종 어두컴컴한 절망의 웅덩이에서, 기어이 바닥에 가라앉은 희망을 길어 올린다. 지금까지 잘 못 살아온 것 같아서, 금방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뿌옇게 짙은 안개 때문에 앞길이 보이지 않아서, 내내 울리는 이명 때문에 정신 차리지 못해서. 죽어야 할 무수한 이유들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 영화는 살아야 할 단 하나의 당위를 우리에게 건넨다. 아주 단호하게. 그래도 살아라. 살아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이 세상에는 아무 대가 없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는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슬픔이 기쁨보다 전염성이 강하다. 관객의 눈물을 훔치겠다는 얄팍한 의도가 보이는 영화를 우리는 신파라고 조롱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중 영화가 신파의 형식이라는 점은, 슬픔이 (기쁨보다) 더 많은 관객의 마음으로 전달된다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우리는 슬픔을 나누며, 자신의 존재를 공유한다. 그러니 삶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로이와 록키, 티파니가 함께 가족을 이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함께 있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삶의 출발선이 그어진다. 그들이 함께한다면, 얼마든지 재출발할 수 있다. 슬픔을 나누는 게 더 쉽다는 점에는, 아무리 처참한 슬픔이라고 할지라도 그곳에서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심어놓은 조물주의 배려가 담긴 것 같기도 하다.



영화 <갤버스턴>



  영화 속 숱한 절망을 마주하느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는데, 몇몇 장면에서 잠깐 환해진 적이 있다. 다른 투숙객이 4살 티파니를 돌보는 장면에서다. 그들은 티파니를 보며 환하게 웃음을 짓는다. 어떤 관계도 없는 타인이, 또 다른 타인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장면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환대를 받은 사람은 티파니 만이 아니다. 극 중 많은 인물이 그런 환대를 받는다. 록키를 구해준 로이가 그랬고, 로이를 구해준 그의 전 여자 친구가 그랬다.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김현경 교수는 환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절대적 환대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다. 우리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를 맞이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따뜻한 환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존재하던 누군가의 절대적인 환대 덕분이라고. 


  김현경 교수의 또 다른 구절을 가져와보자. 

  “태어난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 생명이 살 가치가 있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 철학의 전통에서 사람은 지극히 가치 있는 존재라기보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존재임을

   여기에 부기해두자.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이기에 가격을 갖지 않는다.” 

-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그러니까, 인간은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애초에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나 아닌 타인을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인간을 이런 태도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재인 나, 그리고 당신. 



영화 <갤버스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태풍을 뚫으며 걸어가는 로이의 뒷모습이 화면 한가운데로 나온다. 그 화면과 교차해서, 빛이 환한 갤버스턴 해변가에 우뚝 서있는 록키의 옆모습이 나온다. 처음에 두 화면은 천천히 교차되다가, 점점 속도를 빨리하더니 마지막 록키의 웃음으로 영화는 마무리한다. 이 장면에서, 티파니가 즐겨했던 ‘I spy- 놀이’(술래가 눈에 보이는 사물의 첫 알파벳을 말하면, 다른 아이들이 나머지 글자를 추측해 내는 놀이)를 대입해보자. “I spy ... 환한 록키의 웃음”(‘ㅎ-’). 이제 우리가 나머지 글자를 채워넣을 차례다. 그 답은 “함께”, 그리고 “환대”라고, 나는 믿는다. 이 영화에서 희망은 당신의 얼굴로 찾아온다.






영화 정보




제      목 : 갤버스턴 Galveston

감     독 : 멜라니 로랑 Melanie Laurent

국     가 : 미국

제작년도 : 2018년

러닝타임 : 94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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