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알림]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을 펴내며
-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을 펴내며
1.
꼭 영화여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매번 영화관을 기웃거렸다. 가능하면 영화를 볼 때, ‘마주본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영화를 마주하는 것이 물리적인 위치에 달려있지 않다는 단순하고 빤한 사실을 나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나는 영화의 처음과 끝을 모두 봤지만, 영화의 ‘전부’를 보는 데에는 실패했다. 영화에 대해 생각할수록 내 생각에 전부 담기지 않은 영화의 잔여물이 내 머릿속에서 부유했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은 언제나 편견에 가깝다고 말해야 하리라. 나는 아직 영화를 마주본 적이 없다. 다만 모든 종류의 생각은 일종의 편견이라는 점, 영화를 만든 창작가가 아닌 이상에야 관람자의 해석은 어느 정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의지하여 나는 담대해지기로 했다. 가능하면 내가 본 영화에 대해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영화에 대한 명백한 오독이 이 책에 있다면 그것은 노력이 성취하지 못한 내 한계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영화에 대해 정직하려고 노력할수록 영화도 스스로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주었다는 것도 고백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이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꼭 글이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했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이 세상에서 무용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가까이 하지 않고 달리 살아갈 능력이 내겐 없었다. 이것은 글에 대한 내 자신감이라기 보다 내 한계를 글이 함께 견뎌준 것이라고 해야한다. 함께여야만 견딜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처럼 나는 그 대상이 글이었을 뿐이다. 한 시절을 건너는 동안 나는 행복과 수치, 성취와 좌절을 글과 함께 기우뚱거리면서 통과했다. 그러니 글은 내 자신감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이 글에 내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도 나는 나를 부인할 수는 없다.
2.
책에 실린 22편의 글은 ‘오마이뉴스’와 시각예술 인터넷 플랫폼인 ‘아트렉처’에서 과분한 공간을 내주어 쓸 수 있었다. 모두 2019년 한 해동안 쓰인 글을 모으고 가능한 수준에서 손 보았다. 글의 주제에 따라 사랑과 삶(1부), 예술(2부), 사회(3부), 윤리(4부)로 각각 배치하면서 나는, 올해 어떤 주제에 내 관심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모두 영화를 토대로 출발했지만 목적지는 그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 당도했다. 결국 새하얀 스크린은 투명한 유리창이었다. 존경하는 평론가는 비평에 대해 “나에게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다.”(신형철, «몰락의 에티카»)라고 썼지만, 내가 영화를 통과하여 본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만 있지 않았다. 추한 것마저 보는 일이 내게 곤혹스러웠지만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세상에 정직할수록 세상도 내게 정직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이 믿음이 정직할지언정 어리석은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가 본 세상을 쓰려고 노력했다.
3.
이 책 앞에는 언제나 수많은 작가의 글을 두어야 한다. 책이 쓰여지기 전에 나는 먼저 그들의 글을 읽었다. 먼저 내게 건너온 수많은 작가의 글. 나는 그것을 밟으면서 세계를 간신히 건넜다. 내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마다 나는 그들의 글을 내 앞에 둘 것이다. 세상에서 글이 내게 먼저 왔으므로,
나는 다시 글을 세상으로 보낸다.
2019년 겨울
이정식
△ 책 출간 소식을 알립니다. 2019년 겨울에 출간한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인데요. 벌써 나온지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알리는 이유는 제 성격의 소심함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결국 부끄러움의 조금 높은 벽을 뛰어넘어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디딤발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 누군가가 2019년은 어떤 해였나요? 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 책을 보여줄 거예요. 딱히 자랑스러운 것도, 그렇다고 수치스러운 것도 아닌 이 책에는 '저'라는 한 개인이 2019년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함께했던 사고와 정서, 그리고 사소한 성취와 실패가 상서로운 흔적으로 남아있거든요. 그러니 만약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그건 책만이 아니라 제 시간을 주는 것과 같은 의미일 거예요. 이 사실이 제게 무척 특별하게 느껴져요. 제가 가진 무엇을 '준다'는 점에서 먼저 기쁘고, 제 시간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꺼워요. 이렇게 저는 2019년을 지었습니다.
△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을 만나려면 아래의 온라인 서점을 이용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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